[사설] 무거운 멍에와 가벼운 멍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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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멍에와 가벼운 멍에의 차이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다 내게 오라”고 부르셨고, 주께 돌아온 자들에게 “쉬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마11:28-3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거운 짐”은 타락하고 무능해진 인간이 엄중하고 완전한 율법의 요구에 직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벌거벗은 채로 죄책과 부패를 지닌 채 그 본성을 따라 요구하는 율법을 직면하게 대면 정죄와 저주와 형벌을 선고 받게 된다. 박윤선 박사는 “무거운 짐”을 “율법의 부담”이라고 표현했다. 성경은 이 “무거운 짐”을 진 비참한 삶을 보편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마치 이 무거운 짐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큰 착각에 빠진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가 의롭고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과 보편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인본주의는 인간들에게 위험하고 헛된 낙관주의를 심어 놓았다. 많은 사람이 인간의 마음은 백지장일 뿐 하얀 백지에 어떤 그림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선하거나 중립적이지만, 환경이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다고 규정한다(롬 5:12-21). 우리 안에는 원죄(original sin)의 샘에서 끓어 넘치는 자범 죄(actual sin)가 존재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이 무거운 짐을 벗어주시기 위해 긍휼이 많으신 주님께서 오라고 부르신다. 이 무거운 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심이 구원이다. 주님만이 이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구속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온유하고 겸손”한 분으로 알려주신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만이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예수님께서 온유하시고 겸손하심은 인간의 유전을 잔뜩 만들어 무거운 짐을 진 자들 위에 메우길 즐기며, 율법으로 정죄하고 판단할 뿐, 죄 많은 인간을 고치지도 못하고 정죄만 일삼는 돌팔이 의사들과 대조된다.

의사가 병증만 진단하고 치료도 못하고 약도 처방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돌팔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드러내시고,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이 주님의 온유요 겸손이다. 이 죽음을 통해 부활을 이루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빌 2:8).

이처럼 죄 짐을 그리스도께 맡긴 자들은 쉼을 얻는다. 죄인이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면 쉼을 얻는다. 쉼은 죄책으로부터 사면을 받아 용서를 누리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성령님의 은총으로 거듭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시궁창 속에서 뒹구는 존재에서 성화하는 존재로 변화된다. 성도에게 여죄가 남겨져 있으나,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충족한 공로와 의(義)는 이들을 용서하며, 용서 안에서 성화의 길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다. 이들 속에서 날마다 부패의 제거가 나타난다. 죄의 지배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율법은 저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이정표가 되고, 엄중하고 완전한 율법의 요구는 그리스도의 용서와 은혜로 인해 성도가 일생 다가갈 수 있는 목표가 된다. 그래서 율법의 거룩한 요구는 ‘무거운 멍에’에서 ‘가벼운 멍에’로 바뀐다.

오늘날 급변하고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노예적 복종이 아니라 자녀요 자유자로서 사랑과 자유함 속에서 아버지의 명령을 따른다(요일 3:2). 이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성도는 구원받기 위해 자기 의(義)를 쌓고 공로를 쌓기 위해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과 용서 안에서 자유자로서 사랑과 감사의 동기로 순종한다. 혹여 넘어지더라도 일생 내주하시어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매일매일 순간순간 돌이키는 삶의 실재를 갖는다. 성도의 순종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신앙의 재확인이요 성도에게 주신 생명과 은총의 한 부분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양심과 마음의 쉼이 존재한다. 그들은 멍에를 메었지만, 무겁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의 멍에는 자유롭고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