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고향 풍경_권중분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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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풍경

권중분 권사(노원성도교회)

 

산과 마을이 단풍으로 물들고 거리마다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 고향으로 향했다. 차창 밖에는 노란 들국화 무리가 언덕과 산, 들판에 만발하고 있었다. 퇴색되어가는 가을 숲에 핀 수수하고 청초한 모습의 들국화는 생명력 있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고향 마을에는 들국화가 유난히 많이 피는 언덕이 있다. 호숫가를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면 산 복숭아들과 닥나무와 뽕나무들이 자라는 언덕에 산국이라고도 불리는 들국화가 만발한다.
가을 추수가 시작될 무렵 들국화는 동그란 꽃망울을 가득 달고 들판을 내려다본다. 벼를 추수하고 그루터기만 남은 논들과 고추나 참깨, 고구마를 거둔 빈 들판은 소슬바람과 새들이 드나든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다가 노란 들국화 무더기가 있는 언덕에 앉아서 꿈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쌓았었다.

고향에 며칠 머물며 90세가 된 어머니의 추수를 도왔다. 말린 콩 포기들을 밭에 쌓아놓고 잠시 농로를 걸어 들국화가 피는 언덕을 찾아갔다. 들국화는 단풍이 든 나무와 숲, 쌓여진 낙엽더미 위로 노란 꽃송이들을 잔뜩 달고 푸근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손수레를 끌고 호수 길을 따라 아로니아가 자라는 밭으로 갔다. 밭 아래에 펼쳐진 호수에는 낚시꾼들이 버드나무 사이에 앉아서 호수에 드리운 낚싯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밭 위로는 산이 시작되고 참나무, 소나무, 아카시 나무, 싸리 등의 나무가 있다. 밭둑과 이랑에서 영근 양대 대궁과 콩 포기를 손수레에 싣는다. 콩 포기가 머물던 자리에 콩알들이 떨어져 있어서 주워서 주머니에 넣는다.

아로니아 밭 한편에는 도라지가 자라고 밭의 경계를 이루는 산비탈에 노란 들국화 무리가 피어있다. 산과 수풀은 추위에 메마르고 황량해져 가는 때, 북데기들 속에서 돋아난 들국화의 자태는 처연하고 아름답다.

양대와 콩들이 실린 손수레에 바람과 햇살이 내려와 앉는다. 덜컹거리는 손수레를 달래며 길을 간다. 오후의 햇살이 호수와 산, 마을을 누비고, 마을의 농가들은 갈무리 중이어서 집집마다 채전에 심은 배추와 무를 살피거나 빈 밭에 나가 설거지를 한다. 버드나무 군락을 지나서 쇠락해가는 물망초와 갈대들이 나풀거리는 외로운 풍경들 사이에서 잠시 쉬었다. 아름답지만 쓸쓸한 가을 풍경들은 애수와 감동을 담고 있다. 자연을 보며 쉼과 위로를 받는다는 것, 창조주 하나님의 격려에 감사하며 다시 길을 걷는다. 

콩을 마당 한편에 차곡차곡 쌓는다. 꼬투리에서 튕겨져 나온 콩알들을 주워 담고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기른 푸성귀들과 마트에서 사온 재료들로 상을 차렸다. 소박한 밥상 앞에서 어머니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모녀는 사랑의 이야기들로 집안을 채운다.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