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7회 총회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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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회 총회에 바란다

할례를 비롯한 신학적 문제로 예루살렘 공회로 모였을 때, 사도들은 영감 받은 무오한 자로서 활동하기보다 다른 장로들, 일반 사역자들과 함께 발언했다. 성령의 감동 받아 주님의 뜻을 선포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영감 받지 않은 자들과 회의로 모여 주님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계시 종결 이후 보편교회가 어떻게 문제를 다루고 해결할지 그 전례가 되었고, 역사적 장로교회는 이런 모범을 따라 각종 현안을 다루어 왔다. 합신 총회는 이런 신학적 전통 위에 서 있다.

금번 107회 총회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 예배가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동안 신자들이 여러 교회들의 예배를 참관하며 마음에 두었던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로써 특정교회로 쏠림 현상이 노골화됐고 소형교회들은 전보다 더 어렵게 됐다. 모이는 회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등한히 하고 돌아오지 않은 채 교회 밖 신자로 남은 이들도 적지 않다.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을 회복한 지 수개월, 태풍이 지나간 자국처럼 치유 안 된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어떻게 무너진 교회를 세우는 성(聖) 총회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총회는 행정 처리와 상정된 헌의안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총회에서 건설적 논의가 이루어지려면 최우선으로 당회와 노회를 거친 건설적 헌의안이 상정돼야 한다. 안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수종들고 보편교회를 세우는 총회로서의 기능 수행이 어려워지고 비본질적 문제로 갑론을박하며 시간과 에너지만 소비한다.

총회는 당면 문제나 헌의안 처리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교단이 나아갈 큰 방향을 모색, 논의하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작금의 한국교회 상황을 반전시킬 정책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황만 헤아리는 근시안적 결정이 아닌 미래적 혜안으로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총회 구조와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오래 길들여진 잘못된 관행들도 철폐돼야 한다.

총회에서 많은 시간 논의하는 궁극적 이유는 마련된 방안을 실천하기 위함인데 논의만 있고 실행이 없는 일들이 생긴다. 수 년 전 결정한 노회 지역조정안 실행이 없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노회 대표들이 모인 총회의 결정을 노회 자신이 어기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불변하는 원인은 우리 안에 있다. 다름 아닌 인간의 죄성이다. 이는 거룩한 공회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은밀한 사전 선거운동, 법적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을 명분으로 내세워 잘못된 일을 시행하는 일, 공교회성을 상실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들이 그런 예이다.

총대는 위임된 권위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주님의 뜻이 드러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해야 한다.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유보적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한다. 변해가는 시대정신과 대세를 이유로 오래 주의 뜻이라 믿어온 것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의 일을 이루시기 위한 통상적 방편으로 사용하시는 총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세와 태도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모든 사안들을 성경과 헌법을 올바로 해석, 집행하는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다른 총대의 발언을 경청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주의 뜻을 구해야 한다. 대세와 형편을 따르기보다 자기 의견과 결정들이 그리스도의 뜻과 의지에 일치하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 상식과 이치를 넘어 성경과 헌법 정신에 맞게 의견 개진을 해야 한다.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 총회에서 날카로운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말이 줄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일반적으로는 다수 의견으로 결정하지만, 소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모든 회의가 주님의 뜻이 드러나는 과정으로 작동돼야 한다.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위그노들은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총회로 모여 교회가 나아갈 방안을 모색했다. 장로교도들은 잉글랜드 내전 중에도 웨스트민스터 총회로 모여 장로교회가 믿고 고백해야 할 신앙의 내용들을 작성했다. 이번 합신 총회를 통해서도 교회가 나아갈 바가 제시되고 우리가 고백한 신앙고백에 맞는 결정들이 내려지길 바란다. 어려운 교회와 목회자들이 나아갈 구체적, 실천적 방안들이 나와서 코로나 이전 상황을 넘어서는 교회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