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혁신보 창간 40주년에 부쳐
“말은 날아가고 글은 남는다”(Verba volant, scripta manent). 카이우스 티투스가 로마 원로원에서 연설한 일부로 알려진 이 명구는 때로 여러 의미로 달리 해석되지만, 입 밖으로 내놓은 말은 쉬이 사라져도 종이에 기록된 글은 오래 보존된다는 것이 본래 뜻이었다. 다양한 녹음 및 녹화장치에 이어 지금은 무한 재생할 수 있는 전자책(eBook)과 동영상이 상당히 약진하고 있는 상황이라 종이책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의 명구가 많이 무색해진 듯한데, 아직도 종이책이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보면 이 속담의 수명은 한참 더 갈 것 같다. 어쨌든 기록의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간에 글의 위력은 변함이 없다. 글이란 기록되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개혁신보(개혁총회보) 창간호(1982년 9월 6일 월요일)에 기록된 김태운 목사(당시 총회의장 및 발행인)의 창간사를 다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창간사는 총회를 대변할 보도기관이 없어 불편을 느끼던 중에 본보를 발행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한국교회 언론의 역사에 새로운 사명을 감당해주기를 바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어 창간사는 본보가 개혁운동에 전위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을 바탕으로 총회의 화평에 힘쓰며, 신앙과 생활을 지도하는 역할을 다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를 바라는 네 가지 소망을 표명한다. 끝에서 창간사는 본보가 교회(교인)에 영적인 유익을 제공하고, 교회(교인)가 “공연히 평가만 하는 자세를 버리고” 본보의 발전에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말로 마쳐진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우발적인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수렁에 빠진 시대의 절규였을까?
역사는 흘러갔지만 글은 남아서 40년 성상(星霜)을 돌아보는 우리에게 개혁, 화평, 선도, 복음을 꼭지로 하는 사명을 본보가 충실하게 이행했는지 살펴보라고 말을 건넨다. 좋은 터를 닦은 만큼 좋은 집을 지었는가 아니면 터는 이렇게 닦고 집은 저렇게 짓지 않았는가? 오래 전 개혁자들에게서 보듯이, 개혁이란 냉정한 마음을 갖지 않고는 이룩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식으로는 절대로 개혁이 실현되지 않는다. 가르고 나누는 말은 화평에 어울릴 수 없다. 그래서 “교계 언론이 화평에 손상을 끼치는 일들이 있음을 보아왔다”(김태운)는 표현을 가슴에 깊이 새겨둘 만하다. 선도는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충실한 선도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여행객은 가이드가 아는 만큼 배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복음을 전하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파하는 열심뿐 아니라, 복음에 반대되는 시대정신과 싸우는 열정도 곁들여져야 한다.
이런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목적성 있는 보도가 요청된다. 여기저기에서 치러지는 행사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단 안팎을 불문하고 본보의 사명에 부합하는 행사들을 보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하려면 정보의 촉수를 강화하고 확장해야 할 것이다. 좋은 기사를 취재하는 객원기자를 많이 확보할수록 유리하고, 좋은 정보를 날라 주는 제보자가 많을수록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기사를 게재할 지면을 마련해 주고, 제보를 전달할 창구를 열어야 한다. 또한 이런 사명을 수행하려면 독자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신학논술과 신앙수기가 꾸준히 기고되어야 하고, “복음의 전파와 복음의 은혜”(김태운)를 최종 의미로 삼는 기독교 문학도 기회마다 발표되어야 한다. 불량한 뜻이 아니라면, 심지어 감시와 신고와 논쟁도 마다치 말아야 할 것 같다.
이런 사명을 수행하려면 무엇보다도 본보가 이에 대한 이념을 확실하게 보유해야 한다. 총회의 여러 기관 가운데 하나로 안주할 것이 아니며, 어딘가에 눈치를 살피는 기관으로 머물러도 안 되고, 언론사로서 계속해서 조직을 쇄신하면서 독립적이며 객관적인 위치에서 본보의 이념을 표명하는 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부족하고 열악한 조건 가운데도 헌신적으로 수고해온 본보의 직원들도 이런 이념을 되새김하면서 섬길 필요가 있다(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해온 그들을 무조건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창간 40주년을 맞이하는 본보에 천 개의 입을 모아 축하를 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진심으로 축하하며 본보가 앞으로도 창간호에 담겼던 이상을 더욱 발전적으로 실현하는 글을 남겨주길 바란다. 글은 남는다. 그리고 우리의 글은 후대에 기필코 평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