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바라기에 빠지다_김수환 목사

0
184

해바라기에 빠지다

김수환 목사(새사람교회)

 

얼마 전, 파주에서 해바라기 축제가 열렸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너울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수많은 노란 봉오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70년대 영화 해바라기(소피아 로렌,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주연)에 나오는 거대한 해바라기밭(구 소련, 현 우크라이나에 있는 공동묘지)이 떠올랐다.

2차 대전으로 희생된 수많은 병사들의 영혼이 마치 수백만 개의 해바라기들로 환생하여 이리저리 군무처럼 흔들리는 영화 속의 해바라기와 겹쳐져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작가와 감독은 공동묘지에 피어난 해바라기들을 통하여 참혹한 전쟁의 참상과, 전쟁의 상처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망으로부터의 희망을,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발밑 땅속에는 수십만 구의 시체들이 누워있지만, 그 죽음을 이겨낸 수많은 생명의 씨앗들이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하며, 보란 듯이 죽음을 딛고 공동묘지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해바라기는 구태여 공동묘지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그 자체에 이미 생명과 죽음을 담고 있다. 노란 꽃잎은 불과 얼마 가지 않아서 시들고 땅에 떨어져 썩어 가지만, 바로 꽃잎 그 밑에선 수백 개의 까만 생명의 씨앗들이 동시에 여물어간다. 그러기에 시들어 없어지는 꽃잎은 존재의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인 샘이다.

우리는 그것을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통해서 좀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현대미술이 동트기 직전, 고전미술 끝자락에 유행했던 정물화, 즉 재물의 덧없음, 시간 묵상, 피할 수 없는 죽음 등, 방탕한 삶을 경계하고 죽음을 기억(Memento mori)하는 종교적 형태를 띤 작품, 소위 바니타스(Banitas) 기법들이 청렴한 삶을 강조했던 개신교 전통과 맞물려 크게 유행하였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바로 이 무렵에 탄생했다. 목사의 자녀요, 한때 목회를 지망했던 사람으로서 다른 누구보다도 신앙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단 해바라기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에는 자신의 삶의 고뇌와 더불어 영적, 신앙적 사상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고흐는 권총으로 자기의 목숨을 절명할 만큼 매우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삶이 비참할수록 다른 한편으로 하늘과 영원을 향해 그의 영혼의 손을 길게 뻗어 올렸다. ‘삼나무가 있는 밀밭’이 그렇고, ‘별이 빛나는 밤’이 그러하다. 그가 평소 사랑했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더욱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친구 폴 고갱을 위해 해바라기를, 그것도 연작 4점이나 그렸다는 것은, 고흐 자신도 해바라기에 대단한 애착이 있었다고 본다. 그 자신도 영원히 지지 않는 해바라기의 열정과 생명을 닮기를 원했고, 얼마 후에 찾아올 죽음을 예감하고, 해바라기 씨앗처럼 자기 자신도 영원한 생명으로 남아있길 소망했으리라. 자기 생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꽃잎 속에서 열심히 씨앗을 키워가는 해바라기처럼, 코앞에 닥쳐온 죽음을 직감한 고흐도 해바라기를 열심히 그리고 또 그렸다. 

이제 고흐도 떠나갔고(1890), 소피아 로렌도 90세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도 어느 순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된다. 한 해, 두 해가 무심하게 허무의 터널은 더 어둡고 깊어질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고,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신 것은 자신의 허무적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영원한 존재,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되듯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할 때 참 소망과 참 생명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꽃은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동시에 허무를 선물한다. 아니 그 허무를 인식한 자들에겐 죽음(허무)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큰 선물, 생명(씨앗)을 선물한다. 이것이 진정 꽃의, 해바라기의 아름다움이다. 어린 해바라기는 여름내 오직 태양만을 집중하여 그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단순히 씨앗을 여물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태양의 본질을 내면 깊숙이 수용해 결국 자신을 태양화하는 것이다.

또 다시 여름이다. 주님이 부르시기 전, 우리의 모든 날들은 인생의 여름인 샘이다. 오직 태양만 바라보며 자기 본질을 찾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끝없이 해바라기를 그렸던 고흐처럼,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며, 그분을 우리 안에 가득 채우자. 죽음의 허무를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넉넉히 예비하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