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겸손과 교만의 의미_남웅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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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교만의 의미

남웅기 목사(바로선교회, 본보 논설위원)

 

베드로전서 5장은 장로에 대한 권면으로 시작하면서 5절부터는 젊은이에게 주는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의 젊은이란 장로를 제외한 일반 성도를 두고 가리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근데 5, 6절 두절 사이에 겸손이란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겐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도 덧붙여 놓았습니다. 성도의 덕목이 겸손인 걸 보여주는 결정적인 본문이라 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정체성을 ‘온유와 겸손’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마 11:29). 성도가 세상과 구별되는 품성의 하나가 바로 겸손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은 겸손하지 않는데 성도만이 겸손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불신자 중에도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겸손한 이들이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겸손이 성도의 특성이라고 함은, 성도들에게 있어 겸손이란 말의 의미는 세상에서 쓰는 겸손과는 엄청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겸손이란 말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습니까? 대부분 ‘자신을 상대방 앞에서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높은 사람이 자신의 격을 낮추는 걸 겸손이라 착각합니다. 그럼 대구시장이 동장 앞에서 조심하고 어려워하는 게 겸손이겠습니까? 동네 양아치들이 시비 걸 때, 권투챔피언이 싸우지 않고 피하는 게 겸손이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그건 겸손이 아닙니다. 굳이 개념을 정리하자면 그건 온유에 해당 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부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뜻을 이루신 게 바로 그 온유의 본모습입니다. 온유가 강자의 덕목이라면, 겸손은 약자의 덕목입니다. 약자가 강자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겸손입니다. 예컨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아는 게 겸손입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큰소리친다면 그건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죄인 됨을 아는 게 겸손입니다. 만일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군다면, 결국 자신의 무력감과 죄인 됨을 전혀 모르는 소치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내가 해내고야 말리라’는 그 생각 자체가 교만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한다면, 그건 ‘굳이 순종하지 않아도 내가 열심히만 하면 그것이 더 유익이 된다.’는 교만한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를 따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이가 하나님의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을 귀히 여길 리도 없습니다.

결국 교만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입니다. 아담의 실패는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잠 16:18) 함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대적하신다.’(벧전 5:5)는 말씀은 무섭습니다. 겸손한 자들은 그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지만, 교만한 자들은 자기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면(벧전 5:8), 그 대상은 분명합니다. 염려를 주께 맡기지 못하는 자. 즉 인간의 방법만 추구하는 교만한 자 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설령,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양 모든 제도와 규례를 따르더라도 피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결국 교회의 기쁨이 아니라 마귀의 기쁨을 좇다가 패망하는 어리석은 자일뿐입니다. 또한 5절에서 ‘겸손하라’는 건, 장로에게 행해야 할 젊은이 만의 덕목은 아닙니다. 젊은이는 장로에게 순종은 하되, 겸손은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5절)했습니다. 장로나 성도들 모두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해야((6절)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상대적으로 강자에게 필요 이상 겸손을 떨면 그건 돠레 아부요 비굴함이 될 뿐입니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자나 가난한 자나 병든 자나 못난 자가 있다면, 성도는 그들을 배려하여 내 힘을 다 쓰지 않고 내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 온유함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사람에게,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야 할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연장자나 상위 직급자는 존중의 대상은 맞지만, 결코 겸손의 대상은 될 수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이 겸손해야 할 대상은 상천하지에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