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탐방] 프랑스 위그노 유적지 탐방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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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위그노 유적지 탐방을 마치다
“위그노와 함께한 가슴 저린 생각 여행”

르뽀에 라발의 신교 예배당에서

 

이프 섬 감옥 성벽 앞에서

 

꽁스땅스 탑

 

지난 6월 6일(월)~17일(금)까지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대표 조병수 박사)가 주최하고 다비드투어(대표 이윤 안수집사, 염광교회)가 진행한 프랑스 위그노 유적지 탐방이 은혜롭게 끝났다. 이번 탐방에는 조병수 박사와 한혜선 사모, 박병화 목사와 김종향 사모, 이이석 장로와 진경숙 권사, 박 혁 목사와 강정숙 사모, 김춘기 목사(총무)와 윤양숙 사모, 강승주 목사와 박세정 사모, 이종근 목사와 정성인 사모, 류화종 목사와 채진우 사모, 그리고 딸 류지혜 어린이, 박지은 전도사와 딸 강명지 청년 등 부부와 가족이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종미 권사, 김명숙 권사, 김규현 목사, 곽광석 목사, 이명선 전도사와 본보 편집국장 박부민 목사가 함께하였다.

일행은 뮌헨에서 니스로 들어가 모나코를 거쳐 깐느(Cannes)에 도착했고 앞바다의 생 마르그리뜨 섬 위그노 감옥 탐방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마르세유(Marseille) 앞 이프 섬의 적막한 위그노 감옥을 방문한 일행은 충격을 받고 위그노의 일상이었던 고난의 현장들에 전율하였다.

이어 액상프로방스의 프랑스 개혁파 신학의 보루인 쟝 깔뱅 신학교를 방문하여 현재 프랑스 신앙과 신학의 위기를 동감하고 서로의 조력과 기도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님(Nîmes)의 신교의 집 등 유적지를 보고 아비뇽을 거쳐 아를의 개신교회를 탐방했고 애그모흐뜨(Aigue-Mortes) 성에 들어갔다. 애그모흐뜨 성도 위그노 감옥이 있던 곳이다. 위그노는 중세 로마 가톨릭과 그에 결탁한 정치세력이 득세하던 프랑스에서 종교개혁의 바람을 타고 저항하다가 1589년 앙리 4세 때 낭트칙령으로 96년간 불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1685년 루이 14세때 퐁텐블로 칙령으로 낭트칙령을 폐지하고는 102년간 극한 탄압을 받았다. 추방, 금지, 몰수, 개종 협박, 회유, 투옥, 집단 살상이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에그모흐뜨 성에는 꽁스땅스라는 탑이 있는데 거기에 위그노 남녀 감옥을 설치했다가 남자들이 자주 도주하자 후에 여자 신도들만 수용했다. 사악하고 대대적인 개신교회 탄압으로 계곡이나 들판, 동굴 등지에서 비밀리에 회집하여 예배드리던 위그노 ‘광야교회’ 시대가 되었을 때 목숨을 걸고 설교자로 섰다가 총살당한 지도자 피에르 뒤랑의 누이였던 마리 뒤랑이라는 위그노 여성 지도자가 있었다.

그는 1730년 19세의 나이로 꽁스땅스 탑에 수감돼 1768년 57세까지 38년을 지내면서도 다른 여성 신도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돌보고 섬겼다. 그는 감옥 안에 저항하라(RESISTER 레히스테)는 글자를 새겨 모두에게 성경 중심의 참신앙을 위해 비진리와 불의와 비양심에 맞서 저항할 것을 독려했다. 후에 석방되어 8년을 더 살다 소천했다.

일행은 꽁스땅스 탑에 들어가 함께 시편 찬송을 부르며 마리 뒤랑을 비롯한 위그노의 고난과 신앙을 통해 영광 받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엉뒤즈(Anduze)의 광야 박물관은 고난기 위그노들의 수많은 자료와 유물이 전시되어 감동을 주었다. 일행 대부분은 광야 박물관에 이르러 이번 위그노 유적지 탐방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고들 고백했다. 이후 르뽀에라발(Le Poët-Laval)에 유일하게 남은 위그노 교회당을 보았고 비바래(Vivarais)의 마리 뒤랑 생가를 탐방했다. 여기서도 일행은 큰 감동을 받았다. 파리로 이동해서는 시내에 산재한 위그노 유적지와 깔뱅이 공부하던 옥탑방을 방문했다. 근처 누와용(Noyon)으로 이동하여 깔뱅 생가를 살펴본 후 첫 번째 위그노 교회인 모(Meaux) 교회도 방문해 강단에 올라 조병수 박사가 설교하였다. 이밖에 파리에서는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을 관람하기도 했다.

중요한 곳마다 해설을 맡아 수고한 조병수 박사는 이번 탐방 여행에서 ‘집중’이라는 단어를 두드러지게 사용했다. “광야 교회 같은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위그노는 집중하여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에 집중하였으며 개혁사상의 정체성인 ‘오직 성경’에 집중하였다”고 강조하였다. “위그노 유적지 탐방의 목적은 종교개혁 이후 믿음을 위해 고난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위그노의 삶과 믿음을 현장에서 생생히 경험하는 데 있다”고 했던 조 박사는 “깔뱅은 신앙의 이념을, 프랑스 위그노는 신앙의 실천을 보여주었다. 위그노는 프랑스 왕정과 가톨릭에게 양면으로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도 복음과 교회를 지켰다”면서 “‘저항하라’는 마리 뒤랑의 절규가 함의하듯 여러모로 희석된 우리 시대의 일상의 믿음과 신학을 성찰하고 비진리와 안일함에 저항하는 기폭제로 삼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행사 ‘다비드투어’ 이윤 대표는 일정을 마치면서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 많은 변수와 난점이 있어 힘들었지만 무사히 예정대로 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일행 분들의 협조와 섬김 덕분이었다”면서 “앞으로도 의미 깊은 탐방 여행으로 섬기게 되면 더 성심껏 잘 준비하겠다”고 했다.

참여한 박지은 전도사는 “소위 ‘좋은 여행’에는 많은 조건이 있으나 그중 누구와 함께하는가가 중요하다”며 “이번 여행은 조 박사님을 비롯해 특별히 좋으신 분들과 함께했고 개인적으로는 딸(강명지 양)과 동행할 수 있어서 남다른 추억도 생겨 행복했다”며 “위그노를 통해 남기신 주님의 흔적을 귀한 분들과 함께 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김규현 목사(광주 호산나교회)는 “조 박사님, 총무 목사님, 동행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위그노 신앙의 씨앗을 힘써 뿌리고 가꾸어 한국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소원한다”고 했다.

이번 탐방의 총무를 담당해 수고한 김춘기 목사(전주 미래교회)는 여행을 결산 정리하면서 “언제나 애써 주시는 조병수 박사님과 다비드투어 이윤 대표님 그리고 현지 김형준 가이드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일행 모두가 잘 협조하고 섬기는 모습이 위그노들의 신앙과 사랑을 닮아 더욱 고마웠다”고 말하고 “재정이나 특별한 외부적 어려움 없이 무사히 건강한 모습으로 안전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게 된 점이 감사하다. 특히 출국 전과 입국 후에 받은 두 차례 코로나 검사에서 전원 음성이 확인되어 더욱 감사하다”며 “부족하나마 좋은 기회에 섬길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난 몇 차례의 탐방을 포함하여 위그노 유적지 탐방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향한 성찰을 기조로 한 가슴 저리는 ‘생각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끝없는 포도밭과 라벤더 밭의 향기가 짙어 가는 아름다운 프랑스 땅 내면에 흐르는 핏빛 위그노의 울음과 탄식의 기도, 그리고 또렷한 고난과 신앙의 족적을 가슴에 새기고 오는 시간들이었을 터이다. 한편 이번 위그노 유적지 탐방의 더 깊은 얘기들은 박부민 편집국장이 쓰는 탐방기로 조만간 본보에 연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