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의 황금송아지 산당 2
고양주 목사(수원선교교회)
여로보암이 만든 황금 송아지가 놓였던 곳은 뿔 제단 뒤쪽에 있는 플랫폼이었을 것으로 믿어지지만, 아쉽게도 신상 자체는 발견된 바 없다. 다만 아쉬퀼론(아스글론)의 중기 청동기 성전에서 발견된, 청동 위에 은을 입힌 송아지 신상과 비슷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지난 글(본보 840호)에서 다루었듯이 여로보암은 산당의 구조를 예루살렘 성전과 일치시킴으로써 여호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어필하였고 노골적 우상숭배에 대한 백성들의 거부감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반면 언약궤가 있어야 할 곳에 황금송아지 신상을 안치시켰는데, 이러한 전략은 매우 효과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로보암은 왜 하필 황금 송아지의 모습을 택하였으며, 이것은 어떤 점에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던 것일까?
첫째) 풍요의 상징: 전통적으로 소는 고대 근동의 거의 모든 지역에 걸쳐서 다양한 신들을 대표하는 상징 동물로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의 신(Sin)을 비롯하여, 이집트의 프타(Phta), 라(Ra) 등이 소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영향을 받아서인지 출애굽 이후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여호와를 소의 모습으로 형상화 한 바 있다(출 32:4).
가나안에서 유행하던 “엘종교”와 “바알종교”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아마도 뿔로 상징되는 그 강력한 힘과 고대 농경 사회의 생존이 걸린 식량 문제 곧 농작에 있어서 소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가나안 최대의 곡창 지대였던 이스르엘 평야를 비롯하여 농사에 적합한 지형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지형적 특성은 목축과 광야 생활로 대표되던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농경문화에 깊이 젖어 들게 하였고, 풍요로운 수확을 보장해 주는 바알/엘 종교의 특징이 여호와 신앙에 스며드는 것에 거부감이 느끼지 못할뿐더러 내심 반기는 현상을 낳았을 것이다.
둘째) 제의 vs. 삶: 여호와 신앙에 비해 이방 종교가 가지는 강력한 매력은 삶에 관한 의무로부터의 상대적 자유함이라 할 수 있다. 언약궤(계명)가 선민의 합당한 삶에 대한 요구와 의무라면, 신상은 제물에 대한 요구다. 즉 여호와 신앙과 달리 바알/엘 숭배를 비롯한 가나안의 종교는 삶에 대한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 화려한 종교제의를 통해 삶과 상관없이 원하는 복을 보장받는다. 응답이 없다면 정성이 부족한 것이니 제물의 등급을 높이면 된다. 때로 인신제사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패한 인간의 욕구에 부합하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백성들의 입맛에 맞게 여호와 신앙을 변질시킨 여로보암의 작품은 예후의 종교개혁에도 살아남을 만큼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북이스라엘을 사로잡았고 모든 통치자들이 좇아갈 사악한 모델로 뿌리내렸다. 북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할 때 마다 여로보암의 길이 언급되는 이유일 것이다.
[사진] 아스글론에서 발견된 성소모델과 송아지 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