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신의 죄와 자신의 의를 함께 회개하라_고상섭 목사

0
37

자신의 죄와 자신의 의를 함께 회개하라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본보 논설위원)

 

신앙의 균형은 죄와 의를 모두 회개하는 복음에서 오며 은혜는 타인에 대한 관대함으로 나타난다

팀 켈러는 복음을 이야기 할 때 종교와 비종교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씀에 기쁘게 순종함이 복음이고 불순종함이 비종교라면, 종교는 말씀에 순종하지만, 무엇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비종교와 복음의 구분은 쉽지만 복음과 종교의 구분은 어렵다.

많은 반율법주의자들은 마음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러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율법주의자로 돌아선다. 젊은 날 사업을 크게 했고 방탕하게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선 후 철저한 자기관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늘 지적을 하고 바른 삶을 교훈한다면 그의 변화는 반율법에서 율법주의자로 변했을 뿐이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도 둘째 아들인 탕자는 세리와 죄인의 전형이고,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대표한다. 즉 비종교와 종교를 대표하는데 이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다르게 나타난다. 둘째 아들로 대표되는 비종교는 자기 감정에 충실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아들로 대표되는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도덕적 순응의 길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고 한다. 결국 하나님을 자신의 행위로 조종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분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대부분 타인에 대한 판단과 비판이 강한 편이다.

비종교인은 회개하지 않고, 종교인은 자신의 죄만 회개하지만, 복음은 자신의 죄와 함께 자신의 의를 회개한다. 죄인인 인간의 부패한 본성 속에는 타인들보다 못한 죄인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그래도 타인들보다는 낫다는 자기 의도 공존한다. 결국 내가 종교의 사람인지 복음의 사람인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순종으로 구분되지 않고, 순종을 하는 마음의 동기에서 차이가 난다. 또한 대인관계로 주로 드러난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은혜’ 라고 생각한다면 자랑하지 않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은혜가 아닌 ‘자기 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지식 또는 경험과 훈련과 노력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렇지 못한 자들을 늘 비판하게 된다.

사람들을 대할 때 자주 판단하고, 비판하는 자들의 특징은 주로 열심을 갖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죄 뿐 아니라 자기의 의를 회개할 때 우리는 타인에 대한 포용성이 강해진다. 즉 복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바로미터는 타인에 대한 포용과 관대함이라 할 수 있다. 복음은 대인관계를 넓혀준다.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 좁아진다면 아직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가지 않은 단계이며, 복음이 은혜인지 모르는 단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음이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전적인 은혜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고, 자랑할 것 없는 은혜의 사람들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럼 복음의 사람은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과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복음의 특징은 겸손이며, 겸손이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 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노력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늘 정죄와 비판 가운데 살게 한다.

신앙의 균형은 죄와 의를 모두 회개하는 복음에서 오는 것이고, 은혜는 결국 타인에 대한 관대함으로 나타나게 된다. 개혁주의를 너무 신봉해서 다른 모든 신학을 비판적으로만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 개혁신학을 너무 싫어해서 개혁신학을 하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이들도 있다. 모두 복음의 정신은 아닐 것이다.

복음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아는 것이다. 마틴 루터는 “인간의 마음에서 종교는 본성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은혜를 누리다가도 여전히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복음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이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신 그리스도의 사건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 때, 우리는 죄에 대해 또한 의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