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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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본보논설위원)

 

자유로운 예배 시절의 도래를 원한다면 우선 코로나19를 퇴치하는 데 힘을 합쳐야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사안으로 예수님을 궁지에 몰 꾀를 부렸다(막 12:14~15.) 마가는 외식, 마태는 악함(마 22:18), 누가는 간계(눅 20:23)라고 했다. 예수님은 단번에 그 관계를 파악하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막 12:15)라고 꾸짖으시고 최종적으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원리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권능의 왕국(세상)과 은혜의 왕국(교회)으로서 다스리신다. 세상 권력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다.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독교를 배척하는 공산주의 정권들이나,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는 독재정권들까지도 포함된다. 성도는 국가가 잘 유지되도록 애쓰고 세금도 잘 바쳐야 한다. 가령, 국가가 법률로 목사의 세금을 면제해 주기로 하지 않은 이상 세금을 바치라 할 경우 법을 지켜 바쳐야 한다.

개혁교회는 이 문제를 프랑스 신앙고백 제40조(1559), 벨기에 신앙고백은 제36조(1561), 제2차 스위스 신앙고백 제30장 4조(156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3장 4조(1647) 등을 통해 명문화시켰다. 칼빈이 먼저 그렇게 했다. 그는 전체 33개 조항의 신앙교육서(1537) 마지막 항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한 지도자들에 의해 부과된 의무로부터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 그 의무가 세금이든, 공물이든, 시민으로서의 의무든, 그 밖의 어떤 유의 것이든지, 또한 우리는 자신들의 직무를 바르고 충실하게 수행하는 지도자들에 대하여 공손히 행동해야 하며, 오만하게 권력을 남용하는 지도자들까지도 참아 견디되, 합법적 절차에 의해 그들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까지는 우선 그러해야 한다.”

이어 그 이유에 대해 “훌륭한 군주가 인류 복지의 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인 것처럼, 나쁘고 악한 통치자는 백성들의 허물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채찍이기 때문이다”(33조)라고 강조했다. 물론 성도의 국가에 대한 복종에는 “그러나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그러하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반하는 어떤 것을 명한다면, 그것을 개의치 말라”라고 예외 조항을 두었다.

최근 코로나19로 정부에서 교회의 대면예배에 대한 이모저모의 제약을 오랫동안 발동했다. 그런 조치에 불만이 없지 않지만, 국가 전체의 안위를 위해 수용 협조하고 있다. 세상이 보존돼야 교회도 보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렬한 반대와 투쟁으로 대응하는 교회들도 일부 있는데, 이는 정부의 조치를 교회의 탄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평소 기독교 신앙을 은연중 증오하는 세상의 태도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범국가적 기독교 탄압으로 모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코로나19는 역사적으로도 차원이 다른 무서운 전염병이다. 이는 사람 간의 만남 그 자체가 전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절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든다. 교회는 지금 세상 정부의 도움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쓰고 수고하는 정부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사이비 기독교들도 많은데, 자율에만 맡길 수 있을까? 이미 신천지 사태, 각종 정치적 집회, 인터콥의 비밀 모임을 필두로 여러 경우에서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가이사에게 권세를 주어 대처하도록 하셨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것이 비록 적당들의 간계에 대응하신 것이라도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변종 바이러스까지 크게 확산됨에 따라 세계 전역이 코로나19 기간이 더 길어지고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진정 교회는 성도들을 전염병의 위험 속으로 내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작고 어려운 교회들을 돕는 일로 칭찬과 격려와 협조와 인내를 아울러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 자유로운 예배 시절의 도래를 원한다면, 우선 병을 퇴치하는 데 힘을 합치는 것이 지극히 상식이다. 힘들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며 더 인내하며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