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사랑의 품격_선기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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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품격

선기녹 목사(동산교회)

아가페의 사랑을 본받을 때 비로소 품격 있는 인간적 성숙함을 이룬다

인류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생존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 이유이고 사랑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루어 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은 인간의 모든 활동 즉, 문학이나 예술이나 철학이나 도덕이나 인류 역사의 중심 주제 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진이요 선이요 미인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사랑이라도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것과 딸이 엄마를 사랑하는 것에는 품격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사건이다. 출가한 딸이 자신의 엄마를 죽여 달라고 청부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소식은 전파를 타고 알려졌다. 그녀는 학교 선생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남편과는 화목한 가정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동거하기 위해서 집을 마련할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엄마를 살해하고 유산을 물려받으려는 생각으로 홀로 사는 엄마를 청부업자에게 부탁을 하고 육천팔백만원을 건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경찰서에 딸을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자기를 죽이려고 청부업자를 고용한 딸을 용서해 주라는 것이다. 이것은 엄마의 사랑과 딸의 사랑 사이에는  분명히 구별되는 다른 품격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말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하나의 단어로 표기된다. 그래서 사랑이 의미하는 바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영어와 라틴어의 모태가 되는 헬라어에는 사랑을 구별해 주는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 개가 있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모두가 다 같은 품격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설명해 준다. 익히 알려진 단어들 이지만 사랑의 품격을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고 싶은 의미 있는 단어들이다.

첫 번째 사랑이란 단어는 에로스(eros)이다. 에로스가 의미하는 사랑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다. 모든 생존하는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사랑을 하고 종족을 유지해 왔다.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생육하며 번성하여 종족을 유지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에로스적 사랑을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추하다고 도덕의 굴레를 씌울 수는 없다. 목마름이나 배고픔처럼 에로스적인 본성 또한 존재를 위한 필연적인 욕구인 것이다. 따라서 에로스의 본능적 사랑에 도덕적인 품격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은 만물의 영장이다. 따라서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따라서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존재의 양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능적인 원초적 욕구의 사랑도 사회의 규약이나 도덕적 판단에 따라서 스스로 통제하며 존재의 질서를 유지해야 된다는 면에서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랑이란 단어는 스토르게(storge)이다. 스토르게가 의미하는 사랑은 본능적인 사랑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가정의 구성원에 대한 혈족 중심의 사랑을 의미한다. 가족은 사회의 기초다. 씨족 사회가 부족 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혈통과 가문을 지켜 가는 원동력이 바로 스토르게의 사랑이다. 혈육으로 뭉친 힘을 갖는 것이다. 혈육을 중시하고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혈연적인 사랑을 우선시 하는 것은 인간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랑은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보이는 사랑이다. 따라서 이런 사랑도 사랑의 품격을 논하기에는 부적당한 본성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 사랑이란 단어는 필레오(phileo)이다. 필레오가 의미하는 사랑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기는 우정과 신의를 갖춘 우애의 사랑이다. 우정으로 맺는 사랑의 관계는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우정과 신의를 바탕으로 주고받는 사랑의 관계는 때로는 대가 없이 어느 정도의 희생도 감내하면서 우정의 고귀한 멋을 뿜어내는 삶의 활력을 만들어 준다. 주고받는 사랑의 관계가 인간관계를 증진시키고 아름다운 우정이 보여주는 삶의 향기는 세상을 밝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사랑은 보편적인 인간성을 높여 주는 것으로 멋이 있고 품격이 있는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네 번째 사랑이란 단어는 아가페(agape)이다. 아가페가 의미하는 사랑은 인간적인 수위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는 성경에는 이런 표현들이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의 사랑은 그 존재의 무한성과 같이 무한하고 거룩한 사랑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기희생의 본을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통해 세상에 나타내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사랑의 품격을 논할 때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상의 품격을 보여주신 것이고 그를 행하도록 가르쳐 주신 것을 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거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가르침들이 지고한 사랑의 품격을 나타낸다. 따라서 사람은 그런 사랑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품격을 높이고 인격의 성스러운 존재감을 갖추게 된다. 마더 테레사처럼 아가페 사랑을 배워 실천하는 거룩한  품격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자신의 엄마를 살해하려는 딸처럼 본능적인 사랑의 노예가 되어 비천한 존재로 타락할 수도 있고 천사와 같이 인간의 아름다운 품격을 드러내는 사랑을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고귀한 삶과 사랑의 품격은 아가페의 사랑을 본받을 때에 비로소 천박함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품격 있는 인간적 성숙함을 이루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