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교회 1처소’와 ‘공유 예배당’ _김병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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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 1처소’와 ‘공유 예배당’

김병훈 교수 (합신, 조직신학, 본보 논설위원)

 

‘1교회 1처소’ 원칙을 상황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분별과 이해

한국 교회 일각에서 하나의 예배 공간을 여러 교회가 나누어 사용하는 이른바 ‘공유 예배당’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기독교 언론은 물론 일반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첫 번째 사례는 아마도 2020년 4월에 경기도 김포 지역에서 문을 연 ‘르호봇 공유예배당’일 듯하다. 이것은 공유 예배당의 확장을 위한 ‘선교단체 어시스트 미션’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후 이 단체는 2020년 12월과 2021년 7월에 각각 공유 예배당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교단 차원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부천노회는 2021년 11월에 안산시에 공유예배당을 만들어 여러 교회가 나누어 사용하도록 했다. 한 언론 매체는 공유예배당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여 나타난 현상이므로 이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러한 흐름 아래 기독교 대한 감리회 서울연회는 2021년 6월에 예배당 공유를 위한 공청회를 가진 후, 10월에 열린 총회 입법의희에서 복수의 개체 교회가 하나의 예배 처소를 공동으로 이용하게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새롭게 두었다.

공유예배당의 움직임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하다. 실제적으로 예배당 임대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작은 교회들에게 재정적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건물이 아니라 모이는 회중에로 초점을 옮기는 점, 그리고 물량주의적 세속화를 극복하는 신앙적 노력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아울러 소유보다 대여로 경제활동의 효과를 높이는 공유경제의 패러다임과 무관하게 공유 예배당은 희년 제도의 가치를 현대 사회 상황 안에서 실현하는 의미를 갖는다. 가난하여 조상의 분깃을 팔아야 했던 사람에게 회복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를 담은 희년은 기회의 제공을 통하여 가난의 압박 아래 있는 자에게 소망의 미래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확실히 공유 예배당은 경제적 압박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한다.

사실 예배당을 공유하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해외에 있는 한국 이민교회는 예배당 공유의 혜택으로 뿌리를 내렸고 성장했다. 예배당을 소유한 교회와 시간 차이를 두고 예배당을 빌려 사용하는 기회가 없었다면 이민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모일 공간의 어려움으로 교회 개척이 어려웠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개척된 이민교회가 교회 설립의 인정을 받는 데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공유예배당은 교회법적으로 교회설립의 필요 요건을 마련해 주지 못한다. 교회설립을 노회에서 인정받으려면 특정한 예배 처소에서 일정한 수가 안정된 헌금 수입의 상태를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건을 고려할 때 현재 공유 예배당은 교회 설립 요건이 충족되기 이전까지만 유용하다. 이것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갈 필요가 절실하다.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으며, 젊은 교인의 경우 더욱 감소 추세가 큰 상황은 미래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그럼에도 새롭게 교회를 세우는 젊은 목회자의 형편을 위로하고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부르심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총회 또는 노회 차원에서 결정하여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이것은 교회설립 요건으로 공동 예배당을 사용하는 교회의 처소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일이다. 아울러 기존 교회는 회집하지 않는 시간에 작은 교회의 예배당 및 교회 공간을 내어 주는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모이는 작은 수의 회중을 설립된 교회로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1교회 1처소’의 원칙을 상황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분별과 이해가 요구된다. 무분별하게 교회가 난립되는 일을 막기 위한 원칙이겠지만 그것은 노회가 상황을 잘 분별하면 될 일이다. 적어도 회집하는 교인과 헌금 수입의 일정한 유지를 살피는 일은 여전히 필요할 수 있겠다, 이것은 큰 장애는 아닐 듯하다. 공유 예배당은 이 시대에도 복음 사역을 위하여 여전히 교회를 세워 가시는 주님의 뜻에 대한 아름다운 순종일 것이다. 대한기독감리회는 이 점에서 합신 총회보다는 한 걸음 먼저 앞서 가고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