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상, 현실, 그리고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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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현실, 그리고 영원

인간은 가상과 친밀하다. 고인 물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은 가상과 친밀한 존재가 되었다. 동화, 전설, 소설 같은 이야기들은 일상에서 펼쳐지는 가상세계의 주요무대이다. 미술은 시각을 통해, 음악은 청각을 통해 가상을 더욱 화려하게 승화시켰다. 이런 아날로그 방식의 가상세계는 특징이 언제든지 빠져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영상 장비의 개발과 함께 우리는 가상세계에 점점 더 깊이 진입하였다. 환등기, 영화, TV, 다양한 종류의 게임기들은 몰입성이 매우 강해서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가상세계에 깊이 빠져들어 일정 시간 동안 현실과 단절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디지털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가상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디지털 기기나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우리는 면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SNS의 혜택을 받아 문자 또는 음성과 영상으로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쉴 새 없이 뭔가를 촬영하여 공유하고, 누군가가 올린 동영상을 놓칠세라 시청하며, 출처도 모르는 정보를 비판 없이 퍼 나르느라 매일같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가상이 현실에 깊숙이 침입해 있는 셈이다.

지금 팬데믹 상황은 디지털 가상세계에 큰불을 지른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 판타지적 가상을 덧씌운 증강현실도, 가상에 복잡한 현실을 실용적이며 효율적으로 씌운 미러 월드도 더욱 상승세를 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소유자는 자발적이건 강요적이건 그의 정보들과 데이터들이 가상세계의 어디엔가 기록되어 공유된다. 우리는 판타지 요소들을 가미한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유포하기도 한다. 현실이 가상이 되고, 가상이 현실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가상세계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상과 관련하여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은 메타버스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나의 아바타가 살아가는 디지털 지구이다.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존감과 재미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누구에게도 꿀릴 것 없이 인정을 받는다고 느끼며, 게임 형태든 커뮤니티 형태든 시각에 의한 몰입감이 (VR 기기를 갖추면 더욱) 고도에 달한다. 미국 청소년들이 로블록스를 이용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156분에 이르고, 제페토 가입자가 2억 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디지털 현실은 그 자체로 문화와 경제가 형성되어 있는 사회이다. 여기에도 현실과 비슷한 경제 흐름 속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고, 심지어 실물 세상과 연결된 경제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IT에 발 빠른 기업들은 재미를 재화로 변환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면 가상세계의 문제는 무엇인가? 가상세계에 몰입할수록 현실 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가상에 몰두하다보면 중독 현상이 나타나고, 현실을 가상에 맞추는 모습이 짙어지며, 일상은 더 좋은 가상을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현실과 가상이 혼동되면서, 일상은 무기력해지고 파괴된다. 사회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디지털 휴먼은 가상세계에서 사회적이 되지만, 자아는 현실에서 탈사회적이 되기 때문이다. 아바타가 디지털 사회에서 활동하는 동안, 자아는 실제 사회와 단절된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다가 자아에도 문제가 생긴다. 자아와 아바타 사이에 본질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자아는 아바타를 위한 존재로 전락하여, 아바타를 화려하게 등장시키고, 본인은 볼품없이 퇴장한다. 제2의 자아(alter ego)로 설정되었던 아바타가 실제 자아가 되어, 인간의 존엄이 상실되고 존재가 허무해진다. 이것은 영지주의의 현대적 승리이다.

하지만 가상의 위험은 현실에 부딪힌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상세계의 더 큰 위험은 영원에도 위협이 된다는 데 있다. 죽은 사람의 데이터를 불러와서 홀로그램으로 만나는 것이 익숙해지면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 또한 디지털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실제 현실에서 겪는 불만족으로부터 절대적 힐링을 얻는 사람에게는 구원, 내세, 천국 등이 한꺼번에 무의미해진다. 디지털 현실에서 끊임없이 무궁한 재미를 맛보다보면, 영원을 소망하는 것은 진부한 일이 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더욱 고리타분한 일이 되고 만다. 이런 위험 앞에서 기독교는 가상세계의 기술과 콘텐츠를 어떻게 얼마큼 활용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메타버스의 열풍을 확실하게 대처해줄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