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회복하는 새해
박상봉 교수(합신, 역사신학, 본보 논설위원)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인 우리에게서 감사가 사라지고 있다. 왜일까? 우리도 세속적 가치에 늘 유혹받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가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다. 매일 접하는 TV, 인터넷, 유튜브 등에는 세속적 가치를 자극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우리의 현실을 감사와 자족보다는 늘 불평과 불만으로 보게 만든다.
의심의 여지없이, 세속적 가치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최근 샤넬백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사진과 함께 “이번 생엔 내 집 마련 포기…… 돈 모아서 샤넬백이나 사련다”라는 신문 기사는 한국 사회의 세속적 가치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 실례이다. 이미 세속적 가치의 중심에 있는 돈은 신격화되어서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을 통해 삶의 가치를 규정하려는 풍조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속적 가치는 삶의 외적인 현실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리를 감사하지 못하게 한다. 별다른 불편 없이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없다. 직장을 다녀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 마음에 차지 않는 월급 때문에 감사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워도 다른 아이와 비교해 덜 예쁘거나 똑똑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감사를 찾기 힘들다.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를 위해 살면서도 다른 부부와 비교해 뭔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생활에서 감사를 잃었다. 교회를 다녀도 다른 교회와 비교해 어딘가 부족하고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감사가 사라졌다. 감사를 진심으로 표현해 본 때가 언제인가? 당연히, 함께한 이웃에게 감사하는 것은 사치일 수 있다. 이미 교회에서도 목사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 감사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감사는 단순한 기쁜 감정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에서 시작된 영혼의 만족이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의 마음속에 세속적 가치에 뿌리를 둔 어떤 우상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죄의 본성을 가진 우리 안에서 우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그 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우리에게 천상의 유업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우상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그분이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신지를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배하고 계신다면, 우리의 삶에 감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를 위해 성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평강과 위로를 주시기 때문이다. 2022년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감사를 회복하는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