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결국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입니다_남웅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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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입니다

남웅기 목사(바로선교회, 본보 논설위원)

 

나중 이후를 보장받을 자기증명은 예수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고 소망하는 것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많은 이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입니다. 못나고 어리석은 인생의 나중 탄식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못났다 함은 결국은 후회하게 될 실패한 사람이란 말이요, 어리석다함은 그 많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 무능과 무지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못난 인생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결정적인 공통점이라면, 나중에 지난날을 아쉬워하며 ‘그때 왜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가슴 친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옛날에 그 땅을 사 놓았더라면’, ‘그때 그 집을 분양 받았더라면’, ‘그때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그때 그 기회를 살렸더라면’, ‘그때 죄에서 돌이켰더라면’, ‘그때 신앙생활 잘했더라면’, ‘그때 그이를 이해하고 사랑했더라면’, ‘그때 술 담배를 끊었더라면’, ‘그때 교회를 기쁨으로 섬겼더라면’, ‘그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면’, ‘그때 그를 도와주었더라면’…… 등등. 마지막 순간에 후회할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에게 인생의 기회를 한 번 더 준다고 해서 바뀐 삶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땅을 사는 것만 예를 들어도, 그 당시에 돈이 없는데 어떻게 땅을 사며, 돈이 있었다고 한들 부동산 정보도 얻을 데 없었고, 정보를 얻었다 한들 판단력이 따르지 않아서 할 수가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다시 그 환경이 주어질 때 어찌 다른 삶의 선택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지금 후회하는 것만큼 못나고 어리석은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의 삶도 과거의 반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물쭈물하거나, 미적미적하거나 엉거주춤하거나 데면데면하거나 건성건성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의 삶이 잘못되었다 판단되면, 아쉬워하며 가슴만 칠게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단해야만 합니다. 결코 나중에 후회 하지 않을 미래의 삶을 위해 지금 스스로 전환점을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필자가 말하는 ‘나중’의 결정판은 종말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먼저 오든 내 육신의 종말이 먼저 오든, 종말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그 순간의 내 모습이 결국 내 삶의 진가로 평가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값진 인생일지 하잘 것 없는 인생일지, 빼어난 인물일지 짓밟힌 인물일지, 환영받을 존재일지 버림받을 존재일지 말입니다.

물론 종말 전에도 크든 작든 삶의 진가를 판단 받을 그러한 계기는 엄청 많습니다만 그건 모두 스포츠에 견주면 예선전에 불과합니다. 결승전에서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합니다. 결승전 경기에서 앞서는 일도 귀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대회가 종료되는 그 순간의 승패입니다. 인생의 종말이 중요한 건 그 때문입니다.

세상만사는 그 종말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참고서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그 종말을 위한 예행연습이요 준비기간이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라 하겠습니다. 그 기회가 바로 오늘 지금입니다. 죽음에 임박해서 ‘여보, 나 그동안 당신에게 너무 잘못했어. 미안해! 용서해줘요!’ 할 양이라면, 지금부터 배우자를 달리 대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 나중에 ‘목사님 제가 왜 목사님 말씀에 즐겨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한다면, 그의 삶은 메마르고 힘겨운 신앙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돌이킬 기회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괜찮습니다. 그런 아쉬움의 삶이라든지 실패의 삶은, 인간으로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연약함과 미련함의 소치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우리의 육체의 종말 그 이후를 대비하는 일입니다. 값진 인생, 빼어난 인물, 환영받을 존재란 삶의 성공으로 보장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장 받을 수 있어야 성공한 삶입니다. 그 확실한 보장의 열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입니다. 나중 이후를 보장받을 자기증명은 예수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이면, 그 결정적인 나중 순간에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 나중이 오늘일 수도 있기에 오늘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