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의 가벼움과 무력감 앞에서
고성민 목사(샬롬교회)
오늘도 주님 때문에 존재하는 나는 주님과 그 십자가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창세전에 나를 택하신 예수님께서 내게 찾아오시고, 주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깊이 느끼게 해 주신 후 벌써 50여년이다. 초등학교 전인지 후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시골교회당 마룻바닥에 나 홀로 앉아 잠깐 사방이 껌껌한 상태에서 예수님이 나를 꼭 안아 주신 듯한 체험을 했다. 그 느낌과 감정을 지울 수 없어 귀가하는 내내 희열로 들뜬 상태였다. 옛 시골집 잠자던 방의 흙벽 벽지에 십자가를 연필로 그려놓고 옆으로 누워 웅크린 채 예수님의 품에 안긴 듯하고 있던 일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 후 가장 인간적인 삶의 과정을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대 누구에게 지기 싫어하고, 놀기 좋아하고, 자기 의와 주장이 강한 인간으로 살았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인간의 의지로 못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인간적 오만함은 가장 혈기 왕성했던 젊은 20대 초반에 이미 완전히 깨져가고 있었다.
싸움이든 공부든 자신있던 모든 것이 다 무너졌다. 그 중 가장 처절한 것은 술에 장악되어 그것에 노리개가 되어 인간의 가장 추하고 비참한 지경에 까지 떨어져 버린 일이다. 내 존재 자체가 주변에 피해를 주는 상황인데도 나를 다스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는 살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는 지경까지 갔었지만 죽음마저도 나를 외면하고 조롱하는 것 같은 처절한 시간을 살았다.
그 즈음에야 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 때문에 잊고 있던 예수님 앞에 내가 누군지를 묻게 되었다. 군에 있을 땐 취해서 군 목사님에게 쳐들어가 따지고, 제대해서는 시골 교회 강대상 밑에서 술이 깨어 도망치듯 나오는 등 영혼의 몸부림 속에 있었다.
그렇게 내 존재의 가벼움과 부끄러움 속에 모든 걸 포기하고 끝내버릴 기회만을 찾던 대학시절, 어느 밤 시골길을 걷는데 자꾸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분명 음성이 들린 건 아닌데 자꾸 그 감정이 내 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 생각과 느낌을 거부했다. 나도 내가 싫어 끝내고 싶은 상태였는데 못나고 부끄러운 실패를 한 나를 예수님이 사랑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럴 수는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시골 길에서 저녁마다 그 감정싸움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너를 사랑하는 내가 바로 하나님 이란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 고집을 왕창 무너뜨리고 주님께 항복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서게 했다. 나는 며칠을 울면서 되물었다. 나도 내가 싫은데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울며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이셨음을 느끼고 예수님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오는 시간을 살게 되었다.
그 후 내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내가 어느 날 도서관에 앉아 무엇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까? 갈피를 못 찾으며 그저 깨끗한 책만 뒤적이다가 책장 사이에 끼워져 있던 성경구절이 적힌 책갈피를 보게 된 것이다. 거기에 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참 신기한 일이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던 그 말씀이 이젠 뭐라도 해보자 라는 기적 같은 용기를 준 것이다. 이 말씀은 나의 뒤바뀐 젊은 날의 불씨가 되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살아 왔던 모든 환경을 다 떨쳐버리고 서울로 상경하여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배우고 연습하고 반복하며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서울 신림동 고시원 쪽방에서 나만의 유배 생활을 처절한 고통을 견디며 살아냈다. 모든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끊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주님 앞에 예배를 우선하고 공부하며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은 이러다 내가 정신병자가 될 것 같은 너무 힘든 순간에 낙성대 언덕길을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르는데 저 앞에 보이는 뻘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힘내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는 위로를 주시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에는 표현 못할 힘과 용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기적 같은 삶의 변화는 일어났고 꼴찌 인생이 가장 먼저 사회에 발을 내딛고 앞서가는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것 같은 사회생활 어느 경점에 내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최연소 장로감이라는 소리를 듣던 나는 열심히 돈을 벌어 교회에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하리라 했었다. 그런 내 마음에 과연 예수님께서 내가 열심히 돈 벌어 봉사하는 것과 네가 직접 예수님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일을 하는 것 중에 무엇을 더 원하시고 좋아하실까? 라는 질문이 생겼다. 결국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나 같은 죄인 한 영혼이라도 살리는 이것을 주님은 제일 좋아하신다는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돈 버는 일을 신앙이 낯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끔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젊은이에게 나는 정중히 돈부터 벌어 보라고, 사회생활을 해 보라고, 그리고 섣불리 목사 되지 말라, 모든 직업이 다 숭고한 목회의 자리가 된다고 말한다. 아무튼 나는 누구도 상상 못한 목사가 되었다. 지금도 과거 절망의 나를 보았던 지인들은 내가 목사 된 것을 불가사의한 사건 중 으뜸으로 친다.
그런 내 현재 상황은 어떤가?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어 장황한 이력을 말한 것이다. 난 지금 일반적 기준으로 가장 작은 목회를 하고 있고 그토록 강골이었던 육체는 겉은 멀쩡한데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다 부실하다. 내 스스로가 내게 적응이 잘 안 될 정도로 낡고 쇠퇴하는 육신을 본다. 머리는 종종 어지럽고, 눈은 침침하며, 귀는 이명으로 잘 안 들리고 손과 발, 온 몸은 왜 자꾸 아픈지 모른다. 그 중에도 제일은 허리가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젊은 날 누구에게도 넘어지지 않던 그 강한 허리가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제일 먼저 꺾여서 내 몸 하나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수두룩하다.
젊은 날, 내가 신앙이 회복이 되어 아주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 수많은 간증 속에 있었던 인생의 큰 반전을 일으켰던 신앙의 성공담은 지금 나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나는 지금 그 누구에게도 간증할 만한, 보여줄 업적이 없다. 20년간의 목회 속에서 내가 점점 더 깊이 배우는 것은 종종 어지러운 머리 속에서 우리 주님께 더 집중하자는 것과 침침한 눈으로 이제 딴 것 말고 예수님만 보라는 느낌이 든다.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세상 소리는 그만 듣고 주님의 말씀에만 귀 기울이라는 답을 너무도 분명하게 얻고 있다. 더 이상 내 목소리를 내 귀로 듣지 못하기 전에 내 입술로 주님을 여한 없이 찬송해야 한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쇠퇴해 가는 몸이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더 많이 찬송하고 경험하며 더 간절히 알고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고 있다. 이것이 기도를 많이 한다든가 성경을 많이 보고 종교적인 열심을 내고 싶다는 말만은 아니다. 뭔가 주님을 향한 외적인 신앙 열심을 보여드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갈수록 나를 무력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나로 주님 앞에 더 나아가게 하는 분명한 답을 준다. 내 정신의 중심과 영혼의 눈과 귀와 온몸이 오직 주 예수님만 바라고 사모하는 것 말고는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와 자랑을 설명할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주님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 바로 그 핵심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점점 강하게 느낀다. 영원히 사모하며 찬송하고 기뻐할 주님이 나를 오직 주님 앞에 서게 하신다. 주님의 그 맑은 생명이 내 삶을 통해 소소하게 흐르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나는 오늘도 주님 때문에 존재한다. 누군가 울고 있을 어느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사랑한다. 지금도 어느 곳엔가 지극히 작아 보이는 자기 존재의 가벼움과 무력함 앞에 힘들어 하고 있을 나와 같은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