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비대면 예배?_임용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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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예배?

임용민 목사(새소망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회복해야 할 지점과 회개해야 할 내용들을 깨닫도록 은혜를 간구해야

코로나19는 한국 교회에 비대면 예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줬다. 비대면 예배는 “Zoom, 밴드,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매체를 이용해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 때문에 정부의 방역 대책을 비판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일면 정당한 내용도 있고,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논평하지 않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비대면 예배가 옳으냐? 그르냐? 어느 것이 정답일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시대에 주님께서는 은혜 언약의 중보자로서 구약과 신약에 은혜 언약을 경영하시는 수단들을 제공하셨다. 구약 시대에는 “약속들, 예언들, 제물들, 할례, 유월절”과 같은 예표들과 규례로 경영하셨다. 신약 시대에는 “말씀 설교와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을 통해 경영하신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슬엘을 책망하셨다. 질병과 전쟁,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책망하셨다. 이 때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빼앗긴 은혜 언약의 수단은 성전과 그곳에서 드려지는 제사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늘 성전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의 은혜를 양식 삼을 수 있는 현실을 빼앗겼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성전과 그곳에서 드려진 예배를 사모하며 구슬피 노래했던 것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신약 시대에 교회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는 말씀 사역자를 교회에 세워주지 않으시거나, 성례와 그것을 통해 공급되는 은혜를 제공하지 않으셨다. 일례로, 로마교가 예배와 성례를 부패시켰을 때, 성경을 읽어 본 일도 없는 주교가 교회에 세워지고, 대립교황이 교회를 다스리고, 성례가 타락한 방식으로 집행되었다. 이 시대에 타락상은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택자들을 긍휼히 여기사, 로마교의 타락한 1000년을 종교 개혁을 통해 회복시켜 주셔서, 예배와 성례, 특별히 말씀 사역자들을 다시 교회에 세워주셨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교회는 다시 타락했다. 그리고 현대 교회는 온갖 형태의 타락상을 교회 안에 다시 재생산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 회복한 진리를 거의 다 버렸다. 교리가 타락했다. 예배도 부패했다. 교회는 구원을 말하면서, 더욱 세속적인 집단이 되었다. 성도도 거룩함을 잃어버렸다. 목사, 장로, 집사가 자신의 직분에 합당한 직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현대 교회 안에 있는 말씀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선포해야 할 근본적인 내용인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을 기록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점이 보편화된 지 이미 오래이다. 이들은 세례와 성찬이라는 성례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편의대로 시행하고 집례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배를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서 거룩하게 지키길 원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 자체를 싫어한다. 성도라도 주일날 오락과 레포츠, 스마트폰을 즐기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보편적인 상황이다. 또 공적 예배를 드리는 자들로써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그대로 지도 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감정을 따라 자기의 소원을 따라 예배가 인도되길 원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으로서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 복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길 원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교회당은 무대로 바뀐 지 오래다. 예배의 찬송은 즐거운 감정과 감격적인 감정을 북돋는 수단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래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참된 신앙고백과 요리문답과 공예배 지침과 교회 정치에 대해 무지해도 괜찮다. 교회의 예배단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과 공로에 대해 면밀한 강론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가 중단된 지 오래이다.

이런 현실에서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 정부들은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고 교회에 요청하고 있다. 정부가 요청한 비대면 예배를 놓고 교회는 예배인가 아닌가 놓고 논쟁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최소한, 장로교회라도 공예배 지침을 살펴보고, 우리의 예배의 타락상을 돌이켜 회개해야 할 때이다. 비대면 예배를 놓고 논쟁할 때가 아니라, 말씀에 무지한 목사를 배출한 신학교가 회개해야 할 때이다. 비대면 예배를 드리다 어떻게라도 성찬을 시행했으니 됐다고 만족할 때가 아니라, 성찬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회복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19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준다.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친히 금지케 하신 엄중한 현실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라”(말 1:8, 10).

사회는 계속해서 교회에게 비대면 예배를 요구할 것이다. 이 현실 속에서 교회는 엄중한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뜻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회복해야 할 지점과 회개해야 할 내용들을 깨닫도록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참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