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문학상/청년부 대상] 수필_인생의 십일조_양수빈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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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생의 십일조’

양수빈 (수원선교교회, 청년)

 

요즘 ‘백세시대’라는 말이 있다. 계속되는 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이 평균적으로 100살까지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이 땅에서의 시간이 100년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십일조를 꼬박꼬박 잘 내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의 십 분의 일을 길에서 우연히 주운 돈부터 부모님께 받은 용돈, 직장에서 받는 월급, 보너스, 재테크 수익 등 수입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적용하여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한 가지 자기가 드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이 자기한테 주신 것 중에 가장 귀한 것, 바로 자기 삶의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사람들이 다 100살까지 살게 되고 누군가 이 사람처럼 인생의 십일조에 대해 생각한다고 가정하자. 그럼 아마 자기 인생 중에서 100년의 십일조인 ‘10년’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자기를 위해 살아왔던 삶을 내려놓고 그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풀타임’으로 섬기고 사역한다는 것이다.

근데 말이 쉬워 인생의 십일조지, 10년을 풀타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누구도 쉽게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세대는 다 각자의 삶속에서 주어진 사회에서의 역할이 있고 그 10년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그 어떤 10년도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10년은 없을 것이다. 사역을 자기의 본업과 사명으로 받아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을 제외하고 어떤 사람이든 간에 자기삶을 멀쩡히 잘 살다가 10년을 주님께 헌신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 정말로 인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인생에서 하나님께 10년을 드린다면 언제 가 가장 좋을까?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우리의 가짜마음, 싸구려마음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때를 원하실 것이다. 내게 가장 중요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는 것을 드리는게 아니라,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드릴 때 그게 무엇이든 그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십일조를 드리기 가장 좋은 때를 ‘청년’의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하나님께 내 인생의 십일조를 드리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주일학교 때부터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이며, 언젠가 내가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예수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오지에서 최소 10년간은 선교사로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서도 의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하고 싶었고 일단은 의사가 되기 위해 달려 가보기로 했다.

의사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고 의사가 되어서는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사명은 ‘의료선교’이고 나는 선교에 부르심을 받을 사람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꼭 의사가 되고 싶었고 그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의사의 길을 선택한 나는 십대 후반이 되어 진로라는 현실에 부딪힐 때쯤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의사를 하면 과연 선교를 할 수 있을까?’ 인턴이 되고 레지던트, 전공의 까지 짧아야 10년 길면 12년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가정이 있을 것이고 아이도 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는 그 바쁜 인생가운데 ‘의사’가 아닌 ‘선교사’의 꿈을 놓지 않고 헌신할 수 있을까? ‘아니야 좀 더 준비 해야지, 좀 더 준비하고 나가야지. 이제야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재정적으로도 준비가 안됐고 아직 난 할 일이 많을 거야’

청소년 때 내 꿈은 분명 ‘의사가 되면 선교를 나가야지’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또 ‘준비되었을 때’라는 전제조건이 있었고 그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막연한 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제대로 하나님께 헌신해본적도 없고 친구들한테 전도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나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어떻게 헌신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신앙경력은 20년이 넘었지만 헌신에 있어서는 천둥벌거숭이나 다름없었던 ‘못해신앙’ 이었던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기가 쌓아왔던 것, 해왔던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헌신하기가 어려운데 정말 힘들게 의사가 된 사람이, 하루하루가 전쟁같이 바쁘고 분주한 사람이 ‘헌신’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헌신을 해 본 적도 없고 훈련받아 본 적도 없는 나는 아마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준비된 때’가 오지 않아 ‘인생의 십일조’를 주님께 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100살 인생에서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시간은 십분의 일이 아니라 백분의 일도 채 되지 못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스무 살에 내게 찾아온 어떤 ‘기회’가 있기 전까지, 나는 겉으로는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보다는 이제 자유롭게 세상에 나가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게임과 스포츠, 돈과 명예를 마음껏 즐기고 싶어 하는 지금 밖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내게 일생의 기회를 주셨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선교단체를 통해 ‘해외선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선교사가 꿈이었지만 ‘선교단체’의 존재조차 몰랐던 나에게(정말로 난 아마 일생동안 선교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고 이것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연히(아마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접하게 된 학교의 한 선교단체 동아리로부터 방학 때 해외선교를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 안에 잠재 되어있던 ‘선교’라는 단어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매일 과제와 시험, 밤새서 게임하고 영화보기에 점점 지쳐가던 스무 살의 나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나라로 나가는 선교 프로젝트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자 했던 A국은 거의 아무도 선교를 가지 않는 나라였다. 인터넷에서도 정보가 별로 없었고 어떤 문화가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한 번도 접해 본적이 없는 곳이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기도하면서 이곳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강력하게 부어졌고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노발대발 반대하시는 부모님도 끊임없이 설득하고 교회와 목사님께도 마음을 나누었다.

수능 이후로 이렇게까지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려본 적이 없었다. 20년간 한번도 특별히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던 내가 하나님의 스파크에 반응하여 불꽃이 생긴 것이다. 내 안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선교사’의 불씨가 살아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의 대학생이 선교를 나가겠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똑같을 것이다. ‘학생은 우선 공부를 해야지’, ‘성경을 아는 것과 신앙의 성숙이 먼저’라며 나중에 ‘준비되면’ 가라고 할 것이다. 특히나 나는 모두가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학업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도 제대로 전도를 못하는데 선교를 나간다니?’ 나 스스로에게도 물음표가 붙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밀어붙이던 내가 반대에 부딪혀 서서히 지쳐갈 때쯤 부모님은 기도하시던 중에 하나님께 응답 받으셨고, 교회에서도 허락해 주셨다. 출국을 한 달 앞두고 그렇게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그렇게 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20살 여름방학에 내 인생의 첫 선교를 나가게 되었다.

예수님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이 사는 민족. 하나님이 A국을 향한 마음을 내게 주실 때 말씀하셨던 키워드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 또래 청년들과 A국 공항에 내려서 밖으로 나왔을 때 보이던 수많은 초록색 불빛들과 우상들. 밤만 되면 빨간 십자가가 반짝이는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다른 그 모습에 뭔지 모를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나를 짓눌렀다. 정말 말 그대로 이들은 전하는 이가 없으면 듣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민족이었다.

모태에서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예수님을 알았고, 들었고 믿었던 나는 A국 민족의 운명에 가슴이 아팠다. 기도하는 중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당연히 받은 축복을 이들은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인데, 이들은 그 사랑을 알 기회조차 없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 민족에게 보내셨는지 알것 같았다. 모든 선교지가 다 너무나 중요하고 복음이 너무나 필요하겠지만, 만약 누군가 선교지를 선택한다고 한다면 이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태신앙이라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우물 안에서 살던 개구리였다. 그 우물 안에서 막연히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그 세상 안에서 내가 살아갈 길은 무엇인지 찾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우물 밖으로 용기 있게 뛰쳐나가보니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세상에는 의료가 필요한 사람보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 깊은 신앙과 넉넉한 재정, 건강한 몸으로 ‘잘 준비가 된’ 여러 명의 사람들 보다 단 한 명일지라도 ‘복음을 알고 예수를 아는’ 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훨씬 많았다.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 하신대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길 원하시고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민족을 바라보시며 당신의 자녀들이 영적 어두움 가운데 죽어가는 모습을 보시고 눈물 흘리고 계시는데, 나는 우물 안에서 ‘개구리로 세상에 나가기에는 아직 벅차니 두꺼비처럼 강해지면 세상에 나가야지’라는 생각에 갇혀 이런 일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의사의 꿈이 있었고 내가 작정하고 지금까지 달려온 그 길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우물 밖을 나와 보니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삶의 길이 보였지만 나는 여전히 ‘준비가 되는 때’를 기다리고 싶어 했다. ‘여기서 조금만 있다가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가야지,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나와야지’

현지에 있던 학생선교사님들 중 나보다 2살 많았던 형 한 명이 선교일정 마지막날 우리에게 찾아왔다. 우리는 이곳에서 받았던 은혜를 나누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는데 그 때 형이 이렇게 물어봤다. “혹시 너희들 중에 학생선교사로 섬겨보고 싶은 사람 있어?” 학생선교사는 말 그대로 학생 신분의 선교사를 말한다. 몇몇 캠퍼스 선교단체에 있는 일종의 선교 프로그램인데 방학 때 2~3주 잠깐 왔다 가는 선교여행과 달리 한 학기 또는 1년 정도를 선교지에 교환학생으로 가거나 국내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현지 대학교에서 언어를 배우며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 곳에서의 3주간의 시간은 내게 너무나 엄청난 시간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가려던 길이 있었고 그 길을 가는 중에 휴학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학생선교사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그 형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가 꾸는 의사의 꿈이 너를 위한 길인지, 하나님을 위한 길인지 한번 잘 생각해봤으면 해. 너가 하고자 하는 게 결국 선교인지 의사인지도 말이야”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고 다시 형에게 말했다.

“제 꿈은 선교사이지만, 하나님은 제게 특별히 의료선교사 로서의 꿈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저는 더 준비될 필요가 있고 먼저 의사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선교는 그 후에 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그러자 그 형이 내게 말했다.
“네가 의사가 되서 선교를 하든 그냥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든 하나님은 기뻐 하실꺼야. 근데 있잖아, 예수님은 우릴 위해 생명까지 주셨어. 본인의 전부를 다 주신거지. 근데 예수님의 그 희생과 헌신으로 아무 대가없이 구원받은 우리가 ‘난 이만큼만 드릴게요’ ‘난 우선 이것부터 할게요’ 하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우리한테 자기 걸 다 주셨는데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걸 스스로 제한하는 거잖아.”

인생의 십일조를 드리고자 했던 나의 마음 이면에는 ‘난 내 또래들보다 신앙이 좋아’ ‘나만큼 이렇게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청년이 또 어디 있을까?’ ‘내가 10년 동안 선교사로 살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나를 축복해 주실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고작 십 분의 일을 드리면서(심지어 아직 털끝만큼도 드리지 않았는데) 마치 모든 걸 드리는 것 마냥 내가 가는 길을 자랑스러워하고 기특해 했다. 내게 자기 생명을 주신 예수님도 겸손히 자기를 낮추셨는데 값없이 받은 그 생명을 마치 내 것인 것 마냥 그 중에 십 분의 일 떼서 드리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거기에 매여 살았던 것이다.

A국에서의 첫 선교 경험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선교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한 영혼, 한 민족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이 내가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이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파송하고 그 땅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에게 주신 그 귀한 복음을 아직 믿지 않는 자들과 민족에게 증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각 사람마다 다양하게 일하시고 역사하신다. 어떤 사람은 의사가 되서 선교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50,60대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교사나 목회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인생의 십일조가 아닌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목회자, 선교사님들을 보면 정말로 존경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가 머릿속으로만 막연히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며 ‘입선교’를 하다 혼자 조용히 천국으로 갈 것 같으셨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를 이렇게 부르시고 사용하셨다.

그 이후로 1년간 아예 휴학을 하고 교환학생 신분으로 A국에 학생선교사로 다녀왔다. 그 1년은 아마도 내 100세 인생 중에 가장 행복하고 은혜가 넘쳤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매일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진심으로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던 나에게 만일 이 시기가 없었더라면 나는 점점 팽배해지는 세상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의 물살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수개월을 만나 예수님을 전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한 영혼이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단번에 영접하는 일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 못했다면 나는 아마 하나님의 역사와 복음의 능력, 전도의 중요성을 의심하며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살았을 수도 있다. 이미 선교를 나가기 전까지 게임과 스포츠, 돈과 직업, 명예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은 지금, 나는 내가 원했던 삶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그보다도 본질적인 꿈이었던 선교사라는 사명을 가지며 살고 있다. 본래 드리고자 했던 인생의 십일조인 10년이란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다 드리는, 이른바 풀타임 사역자로서의 삶은 살지 못했지만 내 본업에 충실하면서 캠퍼스와 직장에서 A국 민족을 위한 선교운동, 기도운동을 위해 뛰어다녔고 섬기는 교회에서도 더 열심을 내어 봉사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내가 몰랐던 다양한 은사들이 계발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고 헌신할 수 있는 지경이 점점 넓어졌다. 앞으로 나는 인생의 십일조가 아닌 내 인생 전부를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계속 살아갈 것이다.

 

<수상소감> 은혜가 전달되는 간증의 글들을

이렇게 상까지 받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받게 되니 조금 얼떨떨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라는 하나님의 격려상으로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 저의 신앙수기, 선교수기를 수필 형식으로 한번 써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합신 교단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작은 시작이지만, 앞으로 계속 저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간증들을 글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훗날 저의 자녀들과 다음세대에게 이 은혜들이 잘 전달되어 올바른 신앙관을 가진 믿음의 자녀들로 성장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