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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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길었던 열대야의 여름밤도 지나고 이제 가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지켜 왔고 함께 세워 가는 인격체로서의 교회의 특성 혹은 자아는 항상 세상이라는 타자와 인격적 대립관계에 서게 된다. 그 경우 세상은 자기의 신을 섬겨 최상의 인격 활동을 하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며 최상의 인격 활동을 한다.

그렇게 상반된 신을 섬기는 두 인격체가 각기 자기네 신을 내세우며 상대방 신을 제압하려고 대립해 있다. 이 구도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신의 패배에 대해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라고 하신 것과, 바울이 이 세상의 신의 공격에 대해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고후 4:4)라고 한 데서 자명하다.

교회가 세상의 공격을 막고 오히려 공격해 승리할 최상의 무기는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면”(막 8:36)이라고 하신 원리이다. 자기 부인으로 자기 십자가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교회가 세상을 이기는 비법은, 겉보기에는 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기는 역설의 방법이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라는 것은 성도로서 살아가면 그렇게 하기를 요구 받는 상황이나 환경에 필연 처해진다는 뜻이다. 곧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라고 했고,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라고 한 말씀 대로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힘든 싸움에 같은 교회로부터의 도전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 차라리 세상은 정체가 분명해 상대하기 쉽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사실은 인본주의인 이들과 맞설 경우는 더 힘든 전투가 된다. 예수님도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말이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정죄하신 대로 많은 아픔에 직면해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세계적 위험에 처해 있다. 최근에는 질병관리청의 명령으로 모든 교회들의 대면 예배 금지조치가 있었다. 어이없게도 비대면 온라인 예배는 허용한다는 식으로 특혜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본래 예배란 특정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 전체가 하나의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존전에 부복하는 예식을 집례하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므로, 그런 식의 온라인 예배는 성립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나돌기 전부터 온라인 예배라는 형식이, 세칭 가나안 성도들이나 일부 이름 있는 교회들 속에서도 이미 당연하듯 시행되어 왔다.

그런 행태가 방치되거나 적극 이용되었기에 결국 온라인 예배는 특별 상황 혹은 교육적 훈련 프로그램을 넘어, 일종의 합법화되고 있음이 문제이다. 물론 국가적 호흡기 전염병 시국에는 국가가 교회에 대해 사람의 회집을 당분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교회 측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심지어 정부가 무능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교회가 먼저 선제조치까지 취할 수도 있다.

그 경우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결정해야 한다. 사실 교회로서는 예배의 원리를 잘 아는 데 따라, 애초부터 온라인 예배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고, 분산 예배나 가정 예배 방법을 취한다. 가정 예배란 제도권에 보편적인 그런 형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주님의 날에, 같은 시간에 일제히 예배를 시작하면서, 같은 신앙, 회개, 말씀, 기도로써, 교회의 공적 예배와 다를 바 없는 의식을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으려면, 평소부터 그만한 역량을 쌓아 나왔어야 가능하다. 개혁주의 교회관을 가진 우리 합신 교단은 그만한 자질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배의 본질을 지켜내며 지혜롭게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