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_정요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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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전도할 때 활력 있고, 하나님의 큰 사랑 받은 자임을 더욱 실감해

 

저는 전도를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는 하는 편입니다. 아마 이유는 고등학교 때 기독교를 떠나 10년간 방황한 것에 있을 겁니다.

책을 좋아했던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삼국지, 수호지, 여러 위인전기전 등을 읽었는데, 이 책들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모두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와 위인들로부터 시대를 읽는 눈과 리더십 등을 배우기에 앞서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을 관찰해버렸습니다.

이 관찰은 사람이 결국에는 모두 죽는데 이 땅에서 하는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슨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최종적 의미를 생각하면 열심히 할 이유와 동기와 목적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허무감이 밀려오면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었고, 살이 벗겨지고 뼈가 깎이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왜 존재하여서 이런 인식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이것을 풀지 못한 채 실생활의 필요와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것은 헛되고 속되게 보였습니다.

그러다 1989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텅 빈 영적 공간이 채워지며 삶의 목표와 의미가 생겼고, 곳곳에 새겨진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찾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안정감과 기쁨이 얼마나 큰지 주변에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발소에 가서도, 택시를 타도, 여행을 해도 제가 만난 그 예수님을 그들도 알아 그들의 삶이 바뀌기를 바라며 전도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지를 체험한 자의 반응일 것입니다.

제 삶에서 누군가에게 전도를 할 때 활력이 있고, 제가 복된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자임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전혀 복음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자가 의외로 반응을 보이며 기꺼이 교회에 나오겠다고 했을 때, 돌 같은 마음을 살처럼 부드럽게 만드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느끼며 겸손해지게 됩니다.

정치(精緻)한 개혁주의에 의거하여 복잡한 인생의 여러 일들을 해석하고 정리해가는 일은 하나님의 크심과 깊음을 더 느끼게 하고, 전도를 통해 강퍅한 자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하나님의 생명과 권능을 체험케 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살 맛 나게 합니다.

저는 2년 전에 나온 책을 전도용으로만 백만 원 어치 사용했을 겁니다. 두 달 전에 나온 『기도인가 주문인가』도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제가 가진 시간과 물질과 소질이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길에 더욱 사용이 된다면,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데에 사용이 된다면 제 삶은 괜찮게 산 삶이 될 겁니다.

지난 5월에 경주에서 있었던 교직자 수양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삼 일째 되던 날 은퇴하신 목사님과 젊은 목사들 몇 명이 같이 숙소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그 목사님은 식당 한쪽에서 주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수양회에서 제가 가장 크게 은혜 받은 순간이었습니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전도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의 전도가 교회 성장과 맞물리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없이 전도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은퇴를 하셨고, 교회도 거주지도 서울에 있습니다. 오직 복음에 대한 열정과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주인에게 전도하신 것입니다.

그 목사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총회장을 역임했기 때문도 아니고, 교회를 크게 목회했기 때문도 아니고,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고 정말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불신자들에게 기꺼이 역동적으로 전할 기쁜 소식을 갖고 계신지요? 지난 몇 주간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한 일이 있는지요? 지난 몇 년간 교회로 누군가를 전도한 일이 있는지요? 자신이 갖고 있는 물질과 시간과 소질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쏟아 부으셨는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을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지닌 복음이 얼마나 생명력과 운동력과 파괴력이 있는지를 실감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데에 얼마나 크게 쓰임 받는 가를 체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은 아름다움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