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총회40주년기념 칼럼] 내가 자랑하는 합신_최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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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랑하는 합신

최덕수 목사(현산교회)

개혁신학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날로 새로워지며 작지만 강한 교단이 되기를

초등 4학년부터 합동신학교 입학 때까지 나는 줄곧 한 교회에 출석했다. 대졸 후엔 조교로 근무하며 교단의 학생선교단체 간사로 사역했다. 때문에 누가 봐도 내가 속한 교단 신대원에서 공부함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1991년, 이름을 들어 본적 없는 합신에 입학해 신학 공부를 했다. 어릴 적부터 알았던 박윤선 목사님이 합신 설립에 관여하셨다는 사실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이후 합신을 떠나서는 내 존재를 생각 못할 만큼 합신과 깊이 결속되었다.

처음 교단 설립 시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개혁)’이었다. 이후 ‘합신’으로 개명되었으나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교단은 ‘개혁’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나는 이런 합신을 사랑한다. 가장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을 만나 진정한 의미에서 신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교회사 속에서 가장 개혁된 교회를 이룬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개혁교회를 배우며 품었던 소원대로 개혁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사역 중이다. 어찌 합신을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합신을 자랑하는 이유는 첫째, 합신은 어느 교단보다 열정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보통 교단이 먼저 형성되고 나서 신학교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합신은 신학교가 먼저 시작되고(1980년) 이듬해(1981년) 교단이 설립되었다. 그것은 1980년 당시 교육부의 1교단 1신학교 정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박윤선 목사님을 비롯한 몇몇 교수님들이 총신에서 나와 먼저 신학교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합신은 어느 교단보다 신학에 관심이 많다.

규범 중의 규범은 성경이다. 그러나 신앙과 행위의 절대 규범인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다양하다. 그래서 성경의 본의를 깨우치는 해석학적 틀인 신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신앙, 교회와 삶이 얼마나 바른지를 판단하는 척도요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학이 아무리 중요해도 바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바른 신학 안에 있을 때만 신자와 교회는 안전할 수 있다. 참 감사한 것은 합신은 가장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며 지극한 관심으로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도 큰 공을 기울인다. 나는 이런 합신을 사랑한다. 우리는 성경적 진리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합신을 자랑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합신은 신학을 사변화하지 않고 실천적 원리로 적용하는 일에 열심을 내기 때문이다. 머리로 연구하고 입으로 진술해도 아는 것을 구현 못하는 신학과 신앙은 죽은 것이다. 안타깝지만 신학을 탐구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신자와 교회를 세우는 실천 원리로 적용하지 않는 경우를 본다. 이러면 신학과 목회, 신학과 신앙은 따로 간다. 감사하게도 합신은 설립 초기부터 신학이 교회를 세우고 신자를 세우는 원리로 작용해야 함을 알고 바른 신학에 기초한 바른 교회와 바른 삶을 매우 강조해 왔다. 이로써 성경적 교회가 곳곳에 세워지고 바른 신앙인들이 늘어가는 열매를 맺게 되었다. 타 교단 사람들에게 환영과 칭찬을 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나는 이런 합신을 사랑한다.

합신을 자랑하는 세 번째 이유는 교단 내에 존경할만한 스승과 선후배, 그리고 교제를 나눌만한 겸손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 안에는 많은 교단들이 있다. 규모나 여러 면에서 우리보다 나은 교단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다는 아니지만 타 교단 목회자나 성도들을 만나보면 거칠고 경망되어 교제하기도 부담스러운 경우를 종종 겪는다. 우리 교단 교역자들과 성도들은 대체로 겸손, 온유하며 예의 바르다.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자주 만나고 싶어진다. 나는 이런 분들이 많은 합신을 사랑한다.

어떤 일이나 기관이든 시간이 갈수록 시작 때의 열정은 식고 의지는 꺾이기 쉽다. 이념도 그렇다. 상대주의, 종교다원주의에 의해 잠식당하고 교단과 학교들도 세속주의에 휘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좌경화가 그 좋은 예다. 합신도 예외일 수 없다. 교단 설립 40년이 지나가며 교단 태동기에 함께 했던 분들 다수가 현직 은퇴했거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진리를 향한 그분들의 열심보다 더한 열심을 가져야 한다. 선배들이 목숨 걸고 견지한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장로회주의 정치원리를 각 노회와 지교회에 실행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야 한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빛바래는 교단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날로 새로워지는 교단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그리하여 설립 50주년, 100주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작지만 강한 교단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렘 9:23-24) 하신 말씀에 부합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