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단비를] 삿포로의 빛나는 십자가_이수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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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구(우), 김숙일 선교사 부부

톤덴 신사 제사장의 회심
당신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것 같아

크리스마스 집회는 동네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우리 교회는 오래된 작은 집 한 채를 세내어 썼기 때문에 행사를 열기에는 너무 좁아 마을회관을 빌린 것이다.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와줄 것인가? 행사 당일 아침까지 전단지를 돌릴 정도로 최선을 다했으니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거의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을회관을 가득 채운 것이다. 더 놀랍게도 톤덴 신사의 제사장 아라이 씨가 왔다. 우리 교회 교인인 큰아들과 며느리가 초청했지만 정말로 올 줄 몰랐다. 80세가 넘은 자그마한 체구의 노제사장이 부인과 함께 행사장에 들어서자 동네 사람들이 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수군댔다.
“어머나, 제사장이 다 참석했네요.”
일본인들에게 신도는 종교이자 문화이며, 정치, 사회, 일반인의 정서와 일상의 근간을 지배하는 깊은 뿌리다. 자연 숭배와 조상신 숭배가 혼합된 신도는 경전도, 창시자도, 뚜렷한 윤리적 규범도 없으나 내가 체감하기로는 우리나라의 무속신앙보다 열 배는 강하다.
아기가 태어나면 남자아이는 32일, 여자아이는 33일이 지나면 신사에 가서 축복을 받고, 3세, 5세, 7세 생일과 20세의 성년식,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심지어 새 차를 샀을 때에도 신사에 가져가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부적을 받아온다. 집과 회사에 신단을 모시는 집도 많다. 부모도 죽으면 귀신이 되니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고 살아계실 때 설령 돌보지 않았더라도 돌아가시면 더 정성을 드린다.
일본에는 마을마다 마츠리라는 축제가 있다. 일본 전역에 365일 마츠리가 없는 날이 없다. 그날은 신이 신사에서 나와 동네를 돌며 마을을 정화한다고 믿는다. 학교까지 쉰다. 일본인의 인생과 사회는 신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단체제이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신도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 유교, 천주교, 개신교 등 어느 종교도 신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우리는 제사장 노부부를 예우해서 맨 앞자리에 앉혀드렸다. 신도 자체가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으므로 신사의 제사장이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에 온 것이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니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신뢰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작은 합창단’의 찬양과 성극을 보며 톤덴 지역 주민들은 가슴 뭉클해했다. 행사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고백했다.
그날 아침 전단지를 보고 찾아왔던 무카이 자매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내일 주일예배가 있다는 광고를 들었습니다. 제가 참석해도 괜찮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굴 사랑하시겠는가?
톤덴 신사의 노제사장도 돌아가는 길에 내 옆으로 와서 살짝 말을 건넸다.
 “당신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것 같아.”

『삿포로의 빛나는 십자가』
(이수구 저, 좋은씨앗, 2020.12) 중에서

이수구 선교사는 총신대학,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선교훈련원(GMTC3기)과 싱가포르 OMF 본부에서 훈련 받아 1990년 국제 OMF선교사로 일본 삿포로에 파송되었다. 개척 단계의 톤덴 그리스도교회와 삿포로 국제 그리스도교회가 자립하도록 섬겼다. 재일 한국인 선교사 협의회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에 돌아와 2015년부터 복음주의 초교파 선교단체 일본복음선교회(JEM) 대표로 여전히 일본 선교의 불을 지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