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참담함, 담담함, 당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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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함, 담담함, 당당함

 

2020년에 우리가 겪은 고통은 크다. 양극화를 비롯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코로나19로 갇힌 장막 안에서 살았다. 지난한 방역의 시간들은 한국교회에도 이모저모 깊은 상처를 가져왔다. 새해 들어서도 큰 변화는 없다. 정인이 사건과 모 선교단체의 집단 감염 사태, 모 교회 목사의 아동 성착취 사건 등, 뉴스를 보기가 두렵고 부끄러울 정도의 참담함이 눈폭풍처럼 뒤덮고 있다.

참담함이란 상식을 넘어선 상황에 말과 기가 막혀 어찌할 수 없는 절망과 비통의 정서를 뜻한다. 모든 가치관들이 뒤죽박죽된 우리 시대는 바울이 말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아닌가. 이 참담한 정황의 성격은 사회 병리이기도 하지만 단지 개인의 인격적, 엽기적 일탈로만 치부할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다수가 언급하듯 당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영적, 현상적, 역설적 메시지이기도 함을 인정해야 한다.

참담함을 그대로 민감하게 느끼고 고통하는 것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태도이다. 양심에 화인 맞지 않고 반성적 사고에 경화증이 걸리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직하고 뼈저리게 성찰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담담함이다. 그것은 방관의 무념무상이 아니다. 참으로 이성적으로 문제를 직시하고 그 원인을 성찰하며 처방의 답을 찾아내려는 냉철함과 침착함이다.

따라서 지나친 절망의 감성에 젖어 자기비하와 냉소에만 길들여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다른 희생양이나 핑계를 찾아 우리의 환부를 감싸고 억변으로 되레 큰 소리 치는 일도 처방에 도움이 안 된다. 한편, 진정한 담담함은 혼돈 속에서도 주어진 삶과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흔들림 없이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했다(고전 15:58).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도 했다(딤후 2:15).

이는 명예나 칭찬이나 허상 같은 가시적 성과들보다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말씀을 분변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올바른 신학적 기초와 기독교세계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봇물 터진 모순과 문제들에도 정신을 차리고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계 2:5). 일상에서 그리스도께 사로잡힘을 푯대로 살고(빌 3:12) 허우대보다는 줏대를, 여줄가리보다는 대줄거리를 붙잡고 사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개인이든 교회든 어떤 단체든 이미지 관리보다 실재를 채워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참담함에서 당당함을 회복한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당당함은 세상과의 무조건적 충돌 자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례함도 세력과시도 욕망의 물량적 분출도 아니다. 그것은 참된 승리를 담보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함을 기초로 한다(요 16:33). 주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골 2:15). 당당한 신앙인은 십자가 아래서의 겸손의 좌표가 우선 분명해야 한다. 주께서 산상수훈에서 이미 잘 가르치셨지만 우리는 세상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엡 6:12).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고후 10:5)이며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고전 9:27). 위엣 것을 바라보는 영적 시야의 확보를 위한 싸움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끄럽지 아니하고 담대히 나아가려면 주께서 가르치신 복음 위에 서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자신을 의탁해야 한다(행 20:32).

버거울 정도로 참담한 상황을 만날수록 우리는 혼돈에서 벗어나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착념해야 한다(빌 1:27). 어떤 캠페인보다도 빛의 자녀들답게 사는 데 집중해야 한다(엡 5:8).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엡 5:9). 복음과 그에 합당한 삶은 연합돼 있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빛의 열매를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근거 있는 당당함의 본질이다.

우리가 참담함을 절감하며 자신을 담담히 성찰하고 복음 안에서의 당당함을 회복하기엔 결단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긴 호흡으로 교회와 가정과 개인의 생활에서 성경적 가치관 교육을 소중히 실행해야 한다. 허상을 버리고 영적으로 당당하고 명실상부한 참된 교회, 목자, 신자를 지향하도록 하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운행하시매 창조가 이루어졌다. 혹한 뒤에 봄이 오듯 그 은혜로 우리도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