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특/강] 21세기 한국 개혁교회의 교회상(2)_이광호 목사

0
33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 가야 한다”

이광호 목사(실로암교회, 한국개혁장로회신학교장)

4. 교회적 실천

지상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실행해야 할 중요한 의무가 존재한다. 그것이 항상 소중하게 드러남으로써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튼튼한 교회로 성장해 갈 수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공 예배

지상 교회의 존재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명은 매 주일 진행되는 공 예배이다.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는 정기적으로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을 그의 계시된 말씀에 따라 경배해야 한다. 만일 언약적 의미와 더불어 공 예배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매 주일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의 의미가 살아난다. 따라서 설교자는 그 시간을 개인의 종교적인 신념을 주장하거나 설파하는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즉 참된 설교자는 자신의 의도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경을 오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당회의 논의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설교하는 목사는 자신의 화려한 언술이나 설득의 재주가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좇아 말씀을 순수하게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참된 설교자는 성령께서 계시된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변질시키지 않고자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공 예배 시간에는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거기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넘어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감사와 기쁨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값지고 소중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2) 성경과 교리 교육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성숙한 성도들이 올바른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교리와 신학에 대한 틀을 굳건히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건전한 신앙과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목사와 장로들의 직분회인 당회가 먼저 올곧게 서야 하며 항상 교육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어른 성도들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 성도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3) 성도들과 직분자 사이의 지속적인 교회적 질문과 답변

성도들 사이에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뢰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단순한 형식적 인간관계가 아니라 서로 간 신앙 안에서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성도들의 성경에 대한 관심과 교리와 신학에 대한 이해를 겸손한 대화로 나눈다면 서로 간 더욱 깊이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공적인 모임에서 편안하게 질문하고 대화하는 훈련을 하는 것은 많은 도움을 준다. 이는 마치 아이들이 부모에게 되풀이하여 묻고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질문하며 여러 학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성도들 사이의 건전한 관계 확립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성장의 중심에는 함께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가 목회하는 실로암 교회의 경우 주일 오후 시간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든지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목사가 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장로를 비롯한 직분자들은 다른 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신 질문해 줄 수도 있다. 즉 몰라서 하는 질문도 있고 다른 이들을 위한 간접 질문도 있다. 하지만 호기심 위주의 무리한 질문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그 중심에 놓여 있어야 한다.

성격상 공개적으로 질문하기 어려워하는 성도들은 종이쪽지에 질문을 적어 목사나 장로에게 주면 그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질문과 답변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때 신학과 신앙의 통일성과 더불어 교회 내부의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그 시간을 통해 감정적 맹신이 아니라 성경을 배경으로 하는 지적이며 체계적인 신앙을 갖추어 가게 되는 것이다.

(4) 성도들 간의 교제와 관계

동일한 개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서로 간 항상 평안하고 좋은 관계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렇게 살아가길 원할지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다. 때로 다른 형제와의 관계가 힘들고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고 해도 인내하며 견뎌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바는 성도들 사이에도 상호 간 싸우고 화를 푸는 관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시기와 질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격상의 차이라든지 일반적인 행사 가운데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죄성으로 가득 찬 인간인 우리는 지나치게 신사적이거나 너무 좋은 교회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도리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남과 싸우거나 다투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부부 사이, 부모 자식이나 형제간에는 자주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과정을 통해 신뢰 관계가 굳건히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도를 넘는 언어와 행동을 동원한 지나친 싸움은 절대 금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개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자기 집 아이가 아니라 이웃 집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집 아이들에 대한 깊은 교육적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자식만 잘 키우고자 하는 노력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한평생 함께 살아갈 좋은 친구와 신뢰할 만한 이웃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역사 가운데 지상 교회를 상속해 갈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책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5) 빛과 소금의 직분

하나님의 교회는 타락한 이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게 된다.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거나 수행할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참된 교회라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빛과 소금은 그 성격상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 빛은 외부를 밝히는 역할과 내부의 좋고 나쁜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소금은 맛을 내는 기능과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을 동시에 한다.

이처럼 지상 교회와 성도들은 타락한 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가운데 교회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선과 타락한 인간의 죄악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빛을 통해 세상의 실상을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배신한 인간들의 죄상을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이와 동시에 성도들은 교회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한 성품과 모든 사역을 환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지상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이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은 오염된 세상 가운데서 맛을 내는 것에 연관되어 있다. 이는 이 세상에서는 살아갈 만한 진정한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오직 참된 소금이 가미됨으로써 세상의 맛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교회 내부에서 나타나며 세상에 대해서도 그 역할이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은 금방 부패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6) 말씀으로 균형 잡힌 교회에 속한 성숙한 성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서 말씀으로 균형 잡힌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단순히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개인적인 생활과 태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성도들이 속한 교회, 가정, 국가 사이의 관계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할 균형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도들의 삶은 항상 교회 중심으로 이어져 가야 한다. 굳이 가정 중심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본질적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비교하여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교회가 교인들의 각 가정보다 중요하며 사회와 국가보다 중요하다. 교회는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그에 예속된 가정은 혈통적 가족인 성도들이 함께 살아가는 특별한 영역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정은 늘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성도의 가정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교회에서 그것을 풀어 해결해 주어야 한다. 즉 교회의 문제를 가정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교회와 더불어 신앙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지상의 모든 성도들은 국가에 속한 신실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세속국가에 무조건 맹종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교회의 자녀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친다면 교회는 그것을 근본적으로 거부해야 하며, 국가가 ‘동성애, 동성결혼, 성전환 수술’을 합법화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교회가 힘써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만 단위적 공교회를 이루고 있는 각 교단 총회가 미리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교단 헌법에 명시하여 선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4차산업이 더욱 발달하게 되면 역기능을 동반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인간 자체에 대한 해석이 더욱 복잡하게 되어 우려할만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과학주의에 빠진 자들이 더욱 발달된 문명을 동경하고 추구하면서 자랑거리로 삼아 왔으나 그것이 파멸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숙한 성도들이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올바른 입장을 가짐으로써 다음 세대의 교회를 보호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7) 고향의 기능을 해야 할 교회

우리 시대는 대체적으로 ‘고향’을 상실한 안타까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자기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라난 곳을 찾아가도 산중 시골이 아니면 고향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설령 고향의 외양이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내용은 거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향에 가면 옛날 어릴 적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이든 상태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옛날에 드나들던 문방구점과 이발소, 방앗간이 있으면 그 주인을 만나 안부도 물으며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함께 살아가던 연세든 어른들로부터 그들의 자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고향은 그러해야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고향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개체 교회가 성도들의 고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나마 소망이 된다. 어릴 때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목사님과 어른들은 항상 고향의 버팀목이 된다. 멀리 시집간 처녀가 나중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모 교회를 방문해 젊은 시절의 신앙생활과 추억을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점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힘든 문제들을 만나게 될 때 고향이 그 방향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옛날 자라나고 살아가던 그리운 고향이 자신을 아무렇게나 살아가지 못하도록 붙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붙잡아주는 고향이 사라지면 정신적인 외로움으로 인해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교회와 더불어 특정 지역에 세워진 ‘예배당 건물’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수십 년 후에 고향 교회를 찾았을 때 가시적인 형태의 옛날 예배당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고 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고향을 방문하면 옛날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장로와 집사 등 직분자가 되어 있고 돌아가신 성도들의 소식을 들으며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소중한 삶의 의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5. 결론

지상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올바른 교회관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일컫는 ‘개혁주의 교회’란 성경 말씀에 온전히 부합하는 교회를 말하고 있으며 그 교회가 어지럽고 타락한 세상을 끊임없이 해석하며 삶 가운데 그 의미를 적용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교회는 타락한 세상에 맞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에 속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인지 주의를 기울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리석은 부모들은 자기의 왜곡된 경험과 이성을 배경으로 하여 자기가 원하는 길로 자녀를 인도하고자 한다. 그것이 패망의 길인지 아닌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무지한 태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과연 무엇을 상속해 주어야 할 것인지 신중하게 숙고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재산, 명예, 좋은 직장, 남부럽지 않은 가정과 같은 것들은 언제든지 소멸할 수 있는 보장성 없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상속해 주는 것은 자녀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예기치 못한 역기능의 실체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숙한 부모라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참된 교회를 상속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믿음의 친구와 이웃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언약 관계 속에서 그 일이 순적하게 진행될 때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신뢰할 만한 성도들과 함께 믿음으로 그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참된 가치가 해체되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란 말은 이제 고전적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성공한듯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작은 바이러스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는 인생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 어쩔 도리없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절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욱 크고 심각한 문제는 현실 기독교회들이 점차 참된 모습을 상실한 채 세속화되어가는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다양한 종교단체들이 더욱 심하게 타락해 갈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교회와 성도들이 그와 같은 위태로운 환경에 처해질 것이란 현실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들은 현재의 외형적 모양새 다듬기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대신 다음 세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관심을 더욱 확장 시켜야 한다. 지금 이 정도이니 30년 후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30년 후에 우리의 교회는 과연 어떻게 되어 있을까? 어리석은 자들은 성경의 교훈을 벗어난 채 세속화되고 신학과 신앙이 엉망으로 뒤틀려 있는 상태에서도 왜곡된 상태의 겉모습을 추구하며 그것을 자랑하기 좋아한다.

그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극도로 이기주의화된 세속화에 물든 기독교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신실한 성도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하며 타락한 세상과 투쟁하는 신실한 교회를 세우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것이 뒤엉켜버린 21세기에, 참된 개혁주의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많아져 천상의 나라를 향해 깨어나기를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