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특강]21세기 한국 개혁교회의 교회상_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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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청특강]

*이 글은 지난 10월 9일 현산교회 20주년 기념 세미나의 특강이다. 필자와 주최측의 허락을 받아 2회 분재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서론

2. ‘개혁교회’에 연관된 기본적인 이해

3. 교회의 조직에 대한 이해

4. 교회적 실천 

5. 결론

 

21세기 한국 개혁교회의 교회상

이광호 목사(실로암교회, 한국개혁장로회신학교장)

 

1.서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관성 있는 근본 가치에 대한 해체 조짐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와 성도들 역시 그로부터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동성애, 동성결혼, 성전환, 4차 산업의 발달 등은 인류의 앞날을 한 치도 내다보기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거기다가 2019년 마지막 달에 들이닥친 ‘코로나(KOVID)-19’는 교회를 직접 뒤흔드는 역할을 했다. 그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주일 공 예배 중단’과 ‘예배당 폐쇄’라는 이상 현상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AD1세기 이후부터 항상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특별한 모임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름은 동일한데 반해 외형적으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교회의 본질이 불변의 고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어느 정도 다양한 외적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지상 교회는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성장과 변천을 되풀이했다. 그 가운데는 참된 교회가 있었는가 하면 이름만 교회였을 뿐 본질을 버린 거짓 무리들이 줄곧 있어 왔다. 그와 같은 양상은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히 거짓 신앙을 가진 자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참된 교회를 유지 보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물론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동시에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을 위해 가장 근접한 위치에 서 있는 성도들의 공동체를 ‘개혁교회’라는 용어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개혁교회란 특정한 교단이나 교파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개혁주의 사상’을 지향하고 그에 조화되는 실천적 삶을 유지하는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과 건전한 교리 이해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서 절대 진리라는 사실을 믿고,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지상 교회에 속한 참된 성도들은 오늘 현재의 문제뿐 아니라 내일 곧 다음 세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오늘 번성해 보이다가 내일 허망하게 무너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오늘 다소 힘든 모습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내일의 자녀들이 건강한 신앙인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럴듯한 오늘의 교회 현장을 드러내 보이기를 원하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미래의 교회를 미리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불변하는 진리의 본질과 변천해 가는 신앙인들의 형태에 연관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지상 교회는 외적인 조직의 획일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의상과 두발의 형태, 식생활에 관한 문제 등은 시대를 초월해 고정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성도들은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모든 면에서 신앙의 본질을 중심에 둔 경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세상의 값어치와 절대로 타협하지 못할 내용들이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동성애, 동성 결혼, 성전환 수술 등을 인정할 수 없다. 또한 어떤 형태의 ‘진화론’이라 할지라도 교회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들은 시대적 풍조와 더불어 확증되지 않은 과학주의적 주장을 앞세우지만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은 그에 대해 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타락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며 참된 교회로 성장해 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을 위해 성도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그와 같은 참된 교회는 성경이 요구하는 기본적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교회의 직분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항상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을 이해하여 받아들여야만 한다. 교회에는 항상 무지한 자와 문맹자가 존재한다. 또한 지상 교회에는 문제성 있는 교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건강한 교회는 결코 교인들을 엘리트 집단화하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가정에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있고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아이들은 욕구에 대한 추구와 반성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자라가게 되며 모든 사람들은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

지상 교회에서도 이처럼 늘 평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다. 신앙이 어린 성도들은 항상 다양한 문제들을 일으키며 성숙한 성도들을 통해 선한 지도를 받으며 성장해 가야 한다. 물론 건전한 평가와 더불어 일차적인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은 성숙한 교인들과 어른들이 우선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반성과 평가를 기초로 한 실천을 통해 다음 세대가 올바른 교회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의 교회를 중시하는 이유는 현실적 만족 때문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교회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시대에 처한 성도들은 항상 이삼십 년 후의 다음 세대 교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삼십 년 후가 되면 지금 열 살인 아이들이 마흔 살이 되며 스무 살인 청년들은 쉰 살이 된다. 그들이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아 진리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며 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바는 지상 교회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키우는 종교 조직’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에 따라 자라나는 언약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교회를 인위적으로 키우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면 성경이 요구하는바 본질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가운데 그 본질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가정을 인위적으로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지상에 존재하는 참된 교회는 ‘나의 교회’ 혹은 ‘우리의 교회’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교회’이며 그 교회에 ‘나와 우리’가 속해 있다. 즉 ‘나 혹은 우리’가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성경에서 요구하는 참된 교회에 의해 ‘나와 우리’가 보호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개혁교회’라고 할 때는 그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절대 진리인 성경과 역사적 교회 가운데 확립 확인된 교리, 그리고 건전한 교회적 질서와 삶이 조화롭게 작용하는 교회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개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글에서는 극도로 타락한 21세기의 기독교 현실을 염두에 두고 그에 연관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2.‘개혁교회’에 연관된 기본적인 이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개혁교회’란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 가운데 하나를 지칭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교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개혁교회’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신앙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그 가운데 ‘역사적 신앙 고백’과 교회의 표지가 드러나게 된다.

이는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더불어 오순절 날 강림하신 성령의 사역, 그리고 종교개혁시대 계시된 말씀으로 돌아가고자 한 믿음의 선배들의 교훈을 기초로 하고 있다. 즉 시대적 세태의 유행에 편향되지 않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 자체를 절대적인 교훈으로 삼는다. 그와 같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본질과 요건을 갖추어야 되는지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 ‘온전한 교회’와 ‘완전한 교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의로운 자’로 인정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로 인해 그의 완벽한 의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은 여전히 죄인이다. 즉 세상에 살아가면서 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확립된 하나님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전히 죄의 속성을 지닌 성도들이 모인 지상 교회는 ‘완전한’(perfect) 영역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는 완벽해질 수도 없다. 그리고 현실 교회는 완전한 상태를 추구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진리보다 윤리주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심각한 오류에 빠질 우려가 따르게 된다.

그 대신 지상 교회는 항상 ‘온전한’(sound) 교회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 그렇게 될 수 있으며 지상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그에 순종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온전하다’는 것은 ‘정상적’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완벽하다’는 것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가정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부를 중심하여 세워진 이 세상의 가정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이는 완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족 구성원이 되어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전한 가정’은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건전한 성품을 소유한 가족들이 모여 온전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약간의 다툼이 있고 부모 자식 간에 큰소리치는 일들이 종종 있지만 온전한 가정일 수 있다.

개별 인간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만 ‘온전한 사람’은 존재한다. 온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많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때로 이웃과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감기나 몸살에 걸려 상당한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 일컫는다.

이처럼 지상 교회도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온전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 교회 가운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성도들 사이에 나타나는 성격이나 견해 차이로 인해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교회는 점차 성숙해 가야 하며 더욱 온전한 교회로 성장해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바는 지상 교회가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항상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자신을 비추어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온전한 사람이 날마다 거울을 통해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바르게 하듯이 성숙한 교회는 개혁된 상태로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개혁되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이 끊임없이 변해가고 교회와 성도들은 그 변천해 가는 세상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 ‘우주적 보편교회’와 ‘시대와 지역적 공교회’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회를 생각할 때 항상 우주적 보편교회와 시대와 지역적 공교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참된 지교회들은 예외 없이 우주적 보편교회와 말씀에 따른 신학과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할 공교회에 속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적 보편교회에 속하지 않은 지교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교회에 속하지 않는 지교회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지교회들은 항상 우주적 보편교회를 의식하는 가운데 그에 조화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공교회의 질서 가운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시대에 처한 개별적이며 주관적인 판단과 주장이 아니라 우주적 보편교회와 공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가 속한 교회가 온전한 교회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각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이 독단적으로 판단을 내릴 것이 아니라 보편교회와 참된 공교회가 확립한 건전한 신학 및 신앙에 얼마나 잘 조화되는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3) ‘독립체’로서 지교회

참된 각 지교회들은 보편교회와 공교회에 속해 있지만 독립된 공동체로서 기능을 하게 된다. 지상 교회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현실적인 모든 형편이 제각각 다르다. 생활 환경과 여건이 좋은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교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며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항상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뒤섞여 있으며 건강한 자와 병약한 자들이 존재한다. 또한 교육 수준이 높은 자와 낮은 자들이 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 때 괜찮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들과 실패한 자들이 있으나 그것 자체가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그런 세속적인 것들이 중요하게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참된 교회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가 중심에 놓여 있어야 한다. 각 개체 교회들 가운데는 반드시 존재해야 할 표지는 순수한 말씀선포, 올바른 성례의 시행, 정당한 권징 사역이다. 즉 그런 표지가 있어야만 참된 교회라 칭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공 예배 중에 선포되는 설교가 가장 중심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관한 사역은 목사 직분자가 감당해야 한다. 목사의 설교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언어전달행위이다. 언어를 전달한다는 것은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다. 인간의 언술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감동을 끼치는 것이 올바른 설교가 될 수 없다. 미사여구를 섞어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설득하려 한다면 그것은 사악한 범죄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교회에서는 노회나 총회의 관여나 간섭에 따라 설교 본문을 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 교회 당회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말씀을 선포하는 직분자가 목사이지만 치리하는 직분을 맡은 장로들은 성도들을 심방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상황을 기초로 논의하며 설교 본문을 정해야 한다. 설교자가 개별적인 판단에 따라 단독으로 설교 본문을 정하는 것은 주관적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또한 개혁교회에서는 성례가 올바르게 시행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과 자기를 포기하고자 고백하는 성도들이 세례를 받게 되며 언약 가운데 유아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성장하여 입교하게 된다. 세례 교인들이 직접 성찬을 나누는 일은 일 년에 한두 차례 행해지는 요식행위가 되어서는 안 되며 지속적인 의미와 더불어 행해져야 한다.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나누는 것 역시 당회와 더불어 개교회가 결정하여 시행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례와 유아세례를 베풀기 위해서는 당회의 결의에 따라 적절한 교육과 더불어 그 당사자나 부모의 고백이 확인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례가 중요한 언약의 표징이 된다고 해서 그 자체가 구원을 담보하지 않는다. 또한 성찬상의 음식은 천상의 나라에서 분배받아 오는 구체적인 성격과 더불어 공교회인 교단(노회)으로부터 받아 오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성찬은 모든 세례 교인들이 참여하는데 유아 세례교인들도 그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즉 떡과 포도주를 직접 받지 않는다고 해서 성찬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는 산모가 태중의 아기에게 간접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또한 개혁교회 안에서는 권징사역이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권징은 잘못하는 교인들에게 벌을 주거나 징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교정을 위해 끊임없이 상호 말씀으로 권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나 성향에 의존하지 말아야 하며 그 근본 주체는 개교회의 당회가 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개체 교회의 재정적 독립 채산의 원칙이다. 즉 노회나 총회의 지시를 받아 재정을 사용하거나 정책을 실행하지 않는다. 항상 이웃 교회를 위한 관심과 복음 전파를 위해 힘쓰지만 외부의 간섭에 의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재정에 있어서 개 교회는 독자적으로 책임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만인제사장(priesthood of all saints)이 성도들 각자가 제사장이라는 말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그런 논리라면 교회의 나이어린 아이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제사장이 되어 그 책임과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만인제사장에 관한 이해를 할 때 그것이 개체 교회 단위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3. 교회의 조직에 대한 이해

우리 시대는 일반적으로 상식적인 규범조차 무너진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자 자기의 위치나 자리를 잊어버린 채 개인적인 판단과 경험에 따라 자기의 욕망에 따라 모든 것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게 되자 가족 간에도,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도, 이와 같은 안타까운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직분과 직분회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와 더불어 맡겨진 직무가 원활하게 수행되어 가야 한다.

그리고 교회 가운데서 행해지는 공적인 내용들 중에 본질을 해치는 정도의 지나친 형식주의가 활성화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교회의 공 예배 시간에 ’시편‘을 찬송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에 담긴 본질적 이해 없이 입술로 노래만 부른다고 해서 충분하지는 않다. 또한 성도들의 교회 이동에서 ‘이명증’(移名證)이 중요하지만 반드시 신뢰할만한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 의미가 동반되어야 한다. 즉 실체적 의미가 결여된 채 형식을 채택하는 것은 도리어 교만을 유발하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 직분과 직분회

교회에는 각기 다양한 항존직 직분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성경에 계시된 요구에 따른 것으로서 인간들이 효과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창안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를 세워가는 성도들로서 직분과 직분회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에는 항상 목사, 장로, 집사 등 교회가 맡긴 항존 직분자들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각 직분에는 고유한 권위가 존재하며 동시에 상호 평등의 원리가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직분자에게 잘못된 권위주의는 배격되어야 하나 그 안에 담긴 소중한 권위 자체가 붕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직분자들 간의 평등이라는 말이 권위 자체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공교회와 각 개체 교회에는 반드시 각 직분에 따른 직분회 및 회의체가 있어야 한다. 당회, 노회, 집사회는 단순한 회의체가 아니라 직분회이다. 물론 직분회 역시 회의체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이와 달리 총회, 제직회, 공동의회는 상시적 직분회가 아니라 회의체라 할 수 있다. 회의를 마치게 되면 그 회의체는 자동 해산하게 되는 것이다. 회의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에서 논의할 사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기관에 맡겨진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의를 위해서는 개회 성수가 매우 중요하다. 대다수 한국교회의 경우 성수가 없이 모이는 데로 회의를 개최하게 되는데 수백 명이 넘는 직분자들을 두고 있으면서 제직회에는 불과 수십 명이 모여 논의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필자가 속한 교단에서는 회의를 개최하기 위해, 당회 4/5. 집사회 3/4, 공동의회 4/5, 제직회 3/4 이상이 회원이 참석해야 한다.)

(2) 회원제도

지 교회에는 반드시 명확한 회원제도가 있어야 한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서로 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정 회원이 된다는 것은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허락된 권리와 의무가주어진다는 말과 같다. 매 주일 공 예배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해 개최되는 공동의회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 등이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회원으로서 자신의 재능과 물질의 일부를 교회를 위해 연보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된다.

이처럼 한 개체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특권을 지닌다는 말과 같으므로 교회는 충분한 신앙의 검증 없이 아무렇게나 정회원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정회원은 기존 성도들의 회합인 언약 공동체에 가입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 당사자의 판단이 아니라 교회의 의사와 결정에 따라야 하며, 회원이 된 후에도 교회의 정당한 가르침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일 공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 가운데는 정회원, 준회원, 손님 교인, 방문 손님 등 다양한 신분의 성도들이 존재한다. 방문 손님은 특별한 일로 인해 일시 방문하는 성도를 의미하며, 손님 교인이란 본 교회에 소속되지 않았으나 관심을 가지고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나오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준회원은 상당 기간 공 예배에 참여하며 본 교회 가입 의사를 지닌 성도에 대하여 당회와 당사자 간의 대화를 통해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곧 정회원이 되기 전 언약을 확인하는 중요한 지위에 있는 성도들을 일컫는다. 준회원이 되면 정회원이 아니라 할지라도 공 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해야 하며 기본적인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일반 사람들이 계 모임을 하거나 친목 단체를 조직하고 유지할 때도 무분별하게 아무렇게나 회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중한 심사를 거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국가의 시민권을 얻거나 회사나 학교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는 그런 모임과 비할 수 없는 엄격한 가입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로 이동해야 할 형편에 놓인 성도들은 개인의 종교적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아 가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표지를 면밀히 살피는 가운데 해당 교회 당회와 대화를 나누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개인의 적성에 맞는 교회를 추구하는 대신 자신을 교회의 지도에 맡겨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이처럼 어느 성도가 교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타교회로 이동해 가게 될 경우에도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하나님의 교회는 개인이 자유롭게 판단하여 마음대로 오갈 수 있 곳이 아니라 엄정한 문(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유로 본 교회를 떠나게 되어 회원권을 반납하게 될 경우에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국가와 가정을 비롯한 모든 상식적인 모임이 그런 엄격한 절차를 거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3) 교회와 가정

하나님의 자녀들로 구성된 가정은 소속된 교회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굳이 가정과 교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말해야 한다면 당연히 교회가 가정보다 중요하다. 가정이 나약하고 굳건하지 못할 때 교회가 그 가정을 굳건히 지켜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개체 교회의 건전성을 따질 때 개개인 교인들의 성품이나 수준만 살필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속한 전체 각 가정들의 영적이며 정신적인 건전성을 동시에 살펴보아야 한다. 즉 영적으로 건강한 가정들이 많은 교회는 건강한 교회일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교회는 영적인 건강 지수가 떨어지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