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박형용 목사의 ‘시간, 나무가 되다’를 읽고 _ 김동권 강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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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박형용 목사의 “시간, 나무가 되다”를 읽고

 

<김동권 강도사 | 은평교회 고등부, 합신2학년>

 

성도들과 교회들의 헌신으로 세운 학교의 기초를 허물지 않으며,
한국교회에 이바지할 목회자로 바로 서기 위해 애써야

 

들어가면서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쌓여간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제목부터 신선한 충격을 준다. 시간이 쌓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사람’과 ‘나무’는 참 많이 닮았다(그래서 부제로 ‘거목이 된 한 순례자의 시간’이라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사계절로 요약되는 세월을 통과하며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기억에 새기고 몸과 마음에 새긴다. 나무의 나이테가 생성되는 원리를 떠올려보면 나무 역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일생을 몸에 새긴다.

이 책은 총 4개의 장(章, 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다(봄, 여름, 가을, 겨울). 저자가 자신의 삶 전체를 4개의 부분으로 요약하였다. 훗날에 필자는 ‘저자와 같이 인생을 총괄해보는 지혜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책의 곳곳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여 회고하는 방식”으로 저술한 것은 아닌 듯하다. ‘기록’ 곧 메모의 습관이 이 책과 같은 ‘자서전’을 기록하는 기초를 제공해 준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산다. 이것은 긴 시간의 연속이다. ‘인생’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그렇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초(秒, second)’를 산다. 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일이 결코 없다. ‘초’를 사는 사람들은 시간의 누적을 목격하면서 산다. 그리고 매 순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바라본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시간은 흘러가버리는 유수가 아니라, 쌓여가는 ‘나무’일 수 있다. 나는 오늘을,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신비롭게 역사하시는 삶의 순간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있는가.’

 

겨울철의 성숙을 읽으며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끝, 마무리’와 같은 것들이다. 거기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추위, 떨림’등의 감각이 더해질 것이다. 어찌 보면, 산수(傘壽-80세)를 앞둔 노학자의 인생은 이러한 ‘겨울’에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마무리’라는 겨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성숙’이라는 말로 승화시킨다.

그렇다,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 땅의 생애를 조망하는 관점이 차츰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신자의 ‘죽음과 생명’에 대한 생각이다. 이 땅에서의 생애가 다하는 날 신자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성숙’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무대를 관통하는 신자의 삶은 ‘결말’을 향하는 하향선이 아니라 ‘절정’을 향해가는 ‘상향선’이 아닐까.

저자는 제4장 “겨울철의 성숙”에서 주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설립과 그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눈에 비친 학교 설립의 과정은 오롯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외눈박이 인생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이지만, 동시에 주께서는 인류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렇기에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조국 대한민국에서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기관으로서, 신학교가 설립되는 일에 어찌 우리 하나님께서 수수방관하시겠는가. 이 과정은 오롯이 주의 섭리였고, 한국 교회에는 은혜의 선물이었다.

이 과정을 회고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합동신학교 대지 매입을 위해 헌금한 성도 가운데 주일학교 어린이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전국의 어린이들의 꼬막손으로 바쳐진 헌금이 합동신학교 대지 이곳저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땅을 기증하고, 건물을 기증하고, 소유를 팔아서 헌금을 하고, 기도원을 기증하는 등 각자의 상황과 처지와 형편 속에서 최선의 것, 최고의 것을 신학교를 세우는 데 헌금, 헌물한 일이 수도 없이 많다.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봤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두 렙돈 가진 여인의 두 렙돈의 헌금을 보시고 칭찬하신 그 일이 스쳐 지나갔다. 크고 작은 것, 귀하고 귀하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한국교회 성도님들의 헌신과 수고를 생각해 본다.

개인의 인생을 두고 생각해 봤을 때도 주님의 세심한 섭리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 신학교 건립의 그 일에 우리 주님의 섭리하심 앞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수많은 이들의 삶이 달려 있고, 인생을 바친 이들의 가족이 있고, 예수님께서 머리되신 교회들의 헌신과 수고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이제 필자에게는 합신의 역사가 주어졌고, 그 위에서 선배들이 이루고자 했던 목적이 사명으로 주어졌다. 수많은 한국교회 성도들과 교회들의 헌신으로 일구어 놓은 학교의 기초를 허물지 않으며, 현재 한국교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목회자로 바르게 서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 책을 쓰시는 저자의 심정도 그와 같지 않을까. 교정(校庭) 뒤편에서 안식하고 계시는 박윤선 박사님의 교훈과 이제 나무와 같이 우두커니 서 계시는 노학자의 가르침이 그렇다.

후학들이 선배들이 걸어오신 길을 조망하며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바른신학과 바른교회 그리고 그 안에서 성도들이 바른생활을 통해 성령의 교통하심과 넉넉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초창기 비좁고 열악한 상황에서 합신의 태동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생생하게 상상된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초창기의 합동신학교 정신을 이어받아 매일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는 말씀대로 신학하는 기쁨, 목회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한다.

 

읽은 도서명: 『시간, 나무가 되다』 (박형용, 합신대학원출판부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