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을날 황혼의 빛처럼 나에게도 _ 윤여성 목사

0
104

에세이

 

가을날 황혼의 빛처럼 나에게도

 

<윤여성 목사 | 열린문교회 | 시인>

 

일방적이 되어 관계를 파괴해 버린
이 노령기 사회의 치매는 죽음보다 더 아프지 않은가

 

잠시 한나절 우리에게 쉼을 주시려고 누이 집에 가셨던 어머님을 다시 모시고 오는 길이다. 자꾸 혼잣말로 ‘내 집은 어디냐?’ ‘나는 누구하고 사느냐?’ 하시며 변화된 공간의 궁금증이 가득 찬 모습으로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신다.

‘어머니, 집에 가는 거예요.’ ‘어머니, 넷째 누이 집에 잠깐 놀러갔던 것이고 이제 다시 집에 가는 거예요.’ 설명하고 또 설명을 해도 변화에 무감각한 94세의 치매 드신 어머님이 잘 알아듣지 못하실 것은 당연하다.

동백에서 수지까지 오는 교외 길. 차창에 비치는 풍경은 완연히 가을 황혼녘이다. 그것을 음미하며 어머님의 지난 세월 누리신 믿음 안에서의 삶을 돌아본다. 또 그런 풍경들에 더욱이 내 인생의 황혼 길이 오늘 저녁 하늘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투명하도록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하루 동안 그것을 보게 하시더니 이제 저녁이 되어 찬란한 황혼 빛이 다른 날들과 다르게 느껴진다. 그 아름다운 빛은 처음 보는 천국의 빛이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아, 저런 아름다움의 빛이 지상에 있구나. 코로나19 이후 지구의 공기가 더 맑아지고 물도 깨끗해졌다는 말이 있더니 정말 그러한가 보다. 그래, 모든 자연과 만물이 본래 하늘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피조물의 영광 중의 영광인 인간이야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인간과 만물이 하늘을 반영함보다는 어지러운 문제들과 죽음으로 가득 찬 이 지구였는데 아직도 가을 황혼 빛 속에는 저런 아름다운 광경들이 펼쳐져 무한한 상상력을 갖게 하는구나.

성경 말씀들이 떠오르고 내가 들어갈 천국의 찬란함을 그리워하면서 오늘 나의 저물어 가는 인생길을 기쁘게 가게 하신다. 믿음 좋으신 어머님의 여로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 자신의 황혼길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든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에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라 하였던가. 저 황혼의 아름다움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고 살까. 그렇다. 우리 인생의 빛도 저렇게 붉게 무르익은 후에야 참 안식의 밤 같은 쉼이 오게 되리라. 그날엔 천국이 순금으로 된 길과 집으로 상징되듯 우리도 무르익은 순금 빛의 노후와 천국의 안식을 잘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30분이 채 안 되어 어느 순간 어둠이 점점 도시에 깃들고 멀리 희미해지는 산의 스카이라인과 그와 비례해 더욱 선명해진 가로등의 불빛을 따라 달리는 길은 무엇 하나도 부러울 것 없는 마음이 되게 한다. 저 문명의 도시가 밤을 맞고 있구나. 인간의 문명이란 것이 저 산 너머 어딘가 아직도 불타는 황혼의 그 아름다움을 흉내 낼 수 있을까. 조금 전 전혀 다른 세계의 색조들로 내게 다가온 그분의 품에서 얻는 안식만이 영원하리라.

아무리 대단하고 훌륭한 예술가의 경지라도, 그 어느 음악과 미술도 그윽한 저 붉은 스카이라인 뒤편의 그 빛을 어찌 깊이 알리요. 우리의 모든 것들은 그저 모조품처럼만 여겨지고 하늘의 그 빛을 알기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만큼 이 세상에서는 훌륭한 예술가들일수록 내적 공허감이 더욱 크리라 여겨져 안쓰럽다. 그래서 영적 삶으로서의 지족함과 복음 전도의 마음이 깊은 곳에서 불길처럼 솟아 나를 재촉함을 느낀다.

아직 몸이 건강하신 어머니의 머릿속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거의 사라져 간다. 자꾸만 ‘나 어디로 가니? 나 누구와 사니? 하고 물으시듯 나도 내 목회와 삶에 있어서 그런 질문을 이제 그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현실은 자주 혹독하고 악독함이 넘쳐난다. 과격한 말일지 몰라도 시대가 미쳐가고 있는 듯 느껴진다. 무의미하게 계속해서 물으시는 어머니의 일방적 질문의 고역처럼 대답 없는 질문들 속에 있는 내 목회와 삶도 지독하기 짝이 없음이 사실이다.

아, 인간이란 결국 그 존재와 삶을 관계적으로, 대화로만 영위할진대 이렇게 일방적이 되어 관계를 파괴해 버린 이 노령기 사회의 치매는 죽음보다 더 아프지 않은가. 무섭기만 한 우리의 어둠 속에서 저 산의 스카이라인을 그려 주던 그 황홀한 빛. 어느새 밤 속에 묻혀 멀리 어딘가 자취마저 남아 있지를 않고 어머니의 똑같은 질문만이 내 귓가에 맴도는 이 시간. 그럼에도 그분은 왜 이다지도 깊고 황홀한 기쁨을 내게 알게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