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지혜와 지혜서란 무엇인가<1> _ 현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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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지혜와 지혜서란 무엇인가 <1>

 

<현창학 교수 | 합신 은퇴, 구약학>

 

지혜서는 의로운 생활에
성공과 번영이 따른다는
하나님의 법칙을 집약적으로 계시한다

하나님은 의로 우주와 역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의로운 생활로 응답해야 된다는
뚜렷한 도덕의식이 필요

 

* 원고의 분량이 많아 2-3회 분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지혜란 무엇인가
  2. 지혜서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사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알렉시스 캐럴

 

  1. 지혜란 무엇인가

 

구약성경에서 잠언, 욥기, 전도서를 가리켜 지혜서라 한다. 이름이 말하는 것처럼 삶의 ‘지혜’를 다루는 책들이다. 지혜란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는 질서인데, 인간 편에서 보면 이 질서에 조화하여 ‘효과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태도와 능력을 가리키는 개념이다.1) 구약의 지혜서들은 지혜의 이 개념에 기초하여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결과와 보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상에서 그러한 삶을 추구해 나가는 중에 어떤 모순과 부딪히게 되는지, 그러한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등 삶의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신학적 답변을 구하는 책들이다. 잠언은 전자의 두 질문에 답하는 책이며, 욥기와 전도서는 후자의 두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책이다.

실천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혜란 “삶의 기술”(the art of living), 즉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며 성공적으로 사는 것인가 하는 관심을 말한다. 지혜서에 의하면(특히 잠언) 지혜는 한 마디로 “의”(義) 또는 “의로운 생활”이다. 의롭고 바르게 살 때에 그러한 삶에 성공과 형통이 따른다는 하나님의 질서(우주의 도덕질서)를 믿고 그 질서에 조화하여 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태도가 지혜이다. 물론 지혜에는 여타 여러 가지 삶의 교훈과 요령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겸손, 근면, 정직, 바른 언어 습관, 절제, 인내, 분변, 재화의 올바른 사용, 이웃에 대한 너그러운 베풂 등등이다. 그러나 이 교훈, 요령들도 따지고 보면 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의로운(바른) 생활인가 하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들에 다름 아닌 것이다. 따라서 여러 교훈, 요령이란 것들도 결국은 다 의 또는 의로운 생활이라는 한 가지 주제(교훈)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이다.2) 그래서 지혜는 한 마디로 “의로운 생활”에 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지혜서는(특히 잠언은) 지상에 살아가는 인간들에게(특히 젊은이들에게) 바르게 의롭게 살 것을 강력히 당부한다. 그것만이 성공적인 인생을 가능케 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지혜가 무엇인가를 교과서적으로 가르치는 잠언을 보면 의, 의로운 생활이 책의 중심 교훈인 것을 알 수 있다. 의에 대한 교훈이 다른 교훈에 비해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빈도란 중요성을 측정하는 가늠자이므로 의의 교훈은 잠언에서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교훈이다. 그리고 의는 책의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날 무렵까지 쉬지 않고 가르쳐진다. 잠시 다른 교훈이 나오다가도 잠언의 관심은 이내 의의 문제로 돌아가곤 하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3) 과연 잠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의(또는 의로운 생활)를 가르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잠언은 지혜라는 주제를 다루는 책인데 이 책의 중심 내용이 의(의로운 생활)라면 이는 곧 지혜가 바로 의(의로운 생활)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잠언에서 지혜와 의는 종종 동의어로 간주된다.4) 지혜(또는 지혜로운 자)와 의(또는 의인)는 많은 경우에 한 절 안에 평행어로 주어지는데(2:20, 4:11, 9:9, 23:19, 23:24 등; 참고: 8:15-16)5) 히브리어 평행법에 의하면 이렇게 평형으로 주어지는 두 단어는 사실상 치환이 가능한 동의어이다. 이것 역시 잠언이 지혜를 의라고 생각하는 증거이다. 지혜서가 지혜를 가르친다고 할 때 그것은 기본적으로 “의로운 생활,” “바른 생활”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혜가 곧 의, 의로운 생활을 뜻한다는 것은 신앙인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스도인은 지혜서에서 살아가는 데 유익한 여러 가지 요령과 훈계를 얻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의로운 생활, 바른 생활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의로운 생활을 익혀 자신의 가치와 삶의 양식(modus vivendi)이 되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가장 큰 유익을 얻는 일이라는 말이다. 다른 교훈과 요령으로부터 여러 유익을 얻는다 하더라도 정작 가장 중요한 의로운 생활이라는 가치가 익혀지지 않으면 사실상 지혜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만 것이다. 사실상 지혜서 내용 전부를 놓친 채 책을 덮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되지 않을 듯싶다. 의로운 생활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필수 요소이다. 의롭게 사는 삶에 성공과 번영이 따른다는 도덕법칙을 하나님이 이 우주에 심으셨다. 지혜서는 이 법칙, 이 원리를 집약적으로 계시하는 성경이다. 인간은 이 원리를 깨닫고 이 원리에 자신의 삶을 조화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바르게 사는 것은 좋은 것이지 하고 수긍하는 정도의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지나 수긍의 수준을 넘어서 깊은 반성을 통해 의로운 생활이 자신의 삶의 철학, 삶의 양식이 되게 해야 한다. 지혜서는 단순히 몇 가지 지식을 공급하거나 몇몇 삶의 요령을 알려주려고 하는 책이 아니다. 사람의 의식과 가치를 바꾸려는 책이다. 새롭고 바른 가치를 지닌 “인격”을 빚어내려고 하는 것이다.6) 단순한 수긍 정도는 초등학교의 ‘바른 생활’이란 교과목이 해 줄 수 있는 수준이다. 그 교과목도 원래 그 정도 수준을 목표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근대적 방식의 학교 교육이란 인간의 인격을 빚는 일에는 철저히 실패했다. 명확히 불합격 점에 해당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교육을 통해 ‘바른 생활’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세상은 거짓과 불의와 속임수로 가득하고, 이 사정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엘리트층이라 해서 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나쁘다. 학교 교육은 바른 사람을 빚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오랜 경험인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가. 지혜서는 계시를 가지고 신앙의 방법으로 사람을 빚어내고자 한다. 지혜서는 하나님의 도덕질서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이 가르침으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바른 생활의 의식과 습관을 끌어내고자 한다. 인간이 바뀌는 것은 단순히 도덕률 몇 가지를 학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두려움이 있을 때에만 어려운 “바른 생활”을 자기 가치화하여 실천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7) 지혜서는 바른 생활은 좋다 정도의 ‘정서’ 함양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바른 생활이 옳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믿음으로 절감하여 그것을 자신의 가치로 의식화하고, 따라서 그것을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을 빚고자 한다. 의로운 생활이 삶의 철학이요 양식이 된 “경건의 능력”의(딤후 3:5) 사람이다.8)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그런데 회개는 지나간 죄를 뉘우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사상에 맞추어 그것에 나의 사상을 조화시킬 때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나의 정신세계가 성경의 정신세계의 내용을 흡수 소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분의 도와주심, 구원하심, 사랑만을 믿은 게 아니다. 물론 이것들이 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던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신앙에는 의, 곧 하나님의 의에 대한 믿음이라는 또 하나의 긴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는 의의 질서로 운행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의의 질서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여호와 신앙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그분의 의의 질서를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 질서에 대한 자연스런 응답으로 의로운 생활이라는 삶의 태도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질서에서 오는 번영과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의의 질서, 이에 대한 마땅한 인간의 삶의 태도 의로운 생활 이 두 요소야말로 이스라엘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신세계를 잘 이해하여 회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정신세계에 의의 질서와 의로운 생활이라는 개념과 가치가 들어올 때 그것이 진정한 회개가 된다. 생각은 바뀌지 않은 채 지나간 죄만 거듭 뉘우친다 한들 그것이 온전한 신앙, 성장하는 신앙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의로 우주와 역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의로운 생활로 응답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받아야 된다는 뚜렷한 도덕의식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인은 의란 관념에 대해 특히 무관심하며 생소하다. 아마 오랫동안 내려온 재래 종교 문화의 영향이 클 것이다. 복 받고 잘되고 하는 데에는 많은 관심을 쏟지만 의, 의로운 생활, 삶의 책임 따위에는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우리 자신이 주로 기우는 종교적 관심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의의 질서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의로운 생활의 가치를 우리 의식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계시에 근거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에 뿌리를 둔 사고의 혁명적 결단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요약하지만 지혜는 의로운 생활이며, 의로운 생활에만 복과 번영이 따른다. 순의정신 재조산하(殉義精神 再造山河)란 말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의를 위해 목숨을 드릴 각오를 해서 세상을 새로운 것으로 개혁한다”).9)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자기를 포기하는 각오로 의를 실천하는 삶을 결단하고(지혜서는 결단을 신앙이라 말한다), 여기서 나아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의가 사회정신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사회가 되도록 삶의 모든 영역을 변혁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10) 건국은 되었지만 정신적 ‘설계’는 한 번도 되어보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다. 의의 가치로 편만한 ‘정신’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지혜서는 이러한 새로운 사회, 참다운 선진 사회를 우리에게 이상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복이 이 이상이 실현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각주 >—————————–

1) 잠언은 지혜를 하나님의 속성 또는 하나님 자신으로 말하기도 하고, 사람 편에서의 “삶의 기술,” 즉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참고: 현창학, 『구약 지혜서 연구』(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09), 31-34.

2) 현창학, 『구약 지혜서 연구』, 85-86 참고.

3) 현창학, 『구약 지혜서 연구』, 85 참고.

4) 사실 이것은 전도서와 욥기도 마찬가지이다. 잠언처럼 흔치는 않지만 전도서와 욥기에도 지혜와 의를 동의어로 간주하는 구절들이 나타난다. 참고: 전 7:16, 9:1; 욥 28:28, 32:9 등.

5) 물론 어리석음(어리석은 자)과 악(악인)도 비슷한 빈도로 많이 평행어로 주어진다.

6) 여러 학자들이 지혜서의 목표를 “인격 형성”(the formation of character)이라 이해하는데 정당하며 정확한 이해이다. 참고: William P. Brown, Character in Crisis: A Fresh Approach to the Wisdom Literature fo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4; Roland E. Murphy, The Tree of Life: An Exploration of Biblical Wisdom Literature, 3rd ed. (Grand Rapids: Eerdmans, 2002), 15.

7) 잠언이 지혜를 여호와 경외(여호와를 두려워 함)와 자주 연결시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1:7 29; 2:5; 3:7; 8:13; 9:10; 15:33 등). 잠언 밖에서는 욥 28:28, 시 111:10 등도 참고.

8) 잠언은 지혜 또는 의로운 생활의 가치를 단순한 지식의 차원이 아니요, 인간의 내면에 의식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고 거듭 역설한다(2:1-4, 10; 4:7-8, 20-21; 6:20-21; 7:1-4 등).

9) 재조산하(再造山河)란 말은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주었다는 글귀로 “산과 강, 즉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순의정신(殉義精神)이란 말은 “의를 실천하기 위해 죽을 각오라도 한다”는 말이다.

10) “오직 공의를 물같이, 의를 마르지 않는 시내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필자의 번역) 아모스 5:24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이땅에서 어떤 가치로 살아야 하는지, 또한 어떤 가치의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