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감상| 꿈꾸는 여인의 비망록 _ 이영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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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감상

 

꿈꾸는 여인의 비망록

The journal of the dreaming woman

 

<이영신 작가 | 은평교회 권사>

 

 

꿈꾸는 여인의 비망록 31.8 x 41.0cm Acrylic on canvas 2019

 

꿈을 찾아 집을 나섰습니다. 석양이 비취는 어느 날 너무 멀어져서 다시 돌아오는 길을 잃지 않도록 추억의 길옆에 아름다운 꿈이 담긴 조약돌을 하나씩 놓고 왔었습니다. 놓고 간 조약돌을 다시 하나하나 집어 들고 벗 삼아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꿈은 기다림이었나 봅니다. 이른 봄, 그 햇살을 받으며 새싹이 움돋길 기다렸습니다. 빗방울 떨어지는 우산 속에서도 더욱 견고하게 짙어질 나의 숲을 기다렸습니다. 겨울엔 꽃이 피길, 여름엔 비가 개이길 기다렸습니다. 푸르름을 보며 땀이 씻겨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러고도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주길 기다렸습니다.

무더운 어느 날 우연히,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거기 나뭇가지 깊은 곳에 옹망졸망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여러 마리였습니다. 평안함과 안전함을 누리기라도 하듯 말입니다.

고개를 돌아보니 내게도 커다란 숲이 둘려져 있었습니다. 나는 점점 작아져서 저 새 중의 하나가 곧 내가 된 듯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 모두가 내게 베풀어진 선물이었습니다. 따가워서 가렸던 봄빛은 이내 꽃을 피웠고, 여름비가 내리면 신록은 더욱 푸르렀습니다. 가을바람은 내게 먼 나라 얘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겨울 얼음장 밑에서 올라오는 생명의 숨소리도 가만히 내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빛과 바람, 빗소리와 새소리, 함께 울고 웃던 가족과 재잘대던 친구들, 이 모두가 내게 선물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숲은 언제나 거기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한 작은 새는 한층 키가 자란 숲 그림 앞에서 더욱더욱 작아집니다.

꿈은 기다림이었습니다. 무엇을 기다렸는지, 숲속에 난 그 길을 지나보니 그 속에 내가 있습니다.

 

<작품노트>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의 테마는 30년 이상 그림 작업 중에 20여 년간 지속된 나의 그림 테마로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그리는 작업이다.

그 여행은 ‘관계들’이다. ‘나와 절대자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내 안에 수많은 나와의 관계’ 이들과의 조화와 화해를 꿈꾼다.

거친 붓 터치의 흩어짐과 모으는 작업을 반복하는 일련의 과정과 함께 색상의 유동적 표현에서 오는 음악적 리듬감은 ‘관계’에 대한 회복을 설정한다. 최근 5,6년 전부터 ‘꿈꾸는 여인’에 한복을 입혔다. 한복은 어릴 적 인형에 한복을 입히며 놀았던 내 안에 묻혀있는 나의 고향이다.

 

* 이영신 작가 _ 은평교회 권사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및 개인 부스전 : ‘꿈꾸는 여인 꿈을 부르다’ 등 24회 (이브갤러리. 인사갤러리. 관훈미술관. ARTSERI Gallery in Kuala Lumpr 등) 국내외 초대전 및 단체전 : 130여회.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국림현대미술관), 미술세계대상전(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