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에세이| 송월교회와 하나님의 은혜 이야기 _ 신규철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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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에세이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핀 장미꽃”

– 송월교회와 하나님의 은혜 이야기

 

<신규철 장로 | 시인 | 송월교회>

 

교회의 모든 봉사는 주님 보혈로 죄사함 얻은 성도들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송월교회당 전경

 

송월교회

                         <시 | 신규철>

 

골고다 언덕처럼 비탈진
자유공원 기슭에 우뚝 솟은 송월교회
어둠의 비바람 속을 십자가 지고 걸어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검이 있어서
눌린 자 와서 자유함을 얻고
주님의 치료의 광선이 있어서
병든 자 와서 나음을 얻고
주님의 피 묻은 겉옷이 있어서
버림받은 자 와서 복을 받았습니다
눈물로 씨 뿌리는 자 기쁨으로 거두리라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날마다 무릎으로 교회를 섬기신 분들의 본을 따라
나보다 앞서 행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풍성케 하신 주님을 따라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는 송월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송월교회는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1953년 4월 12일에 설립되었다. 인천시 송월동 3가 3번지 김영숙 집사의 집 2층에서 김명국 장로(후에 목사) 등 여덟 분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미군부대에서 얻어온 자재로 교회 신축을 시작하여 외양이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김명국 목사님은 이임하고, 인천 제2교회(이승길 목사 시무)부목으로 있던 박도삼 목사(37세)님이 1957년 11월 8일 담임 목사로 부임하셨다. 이때 교인 수는 40여 명으로 이북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교회신축으로 인한 부채도 있어서 사례비도 제대로 못 주는 교회였기에 목사님 가정은 국수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박도삼 목사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목회에 열중했다. 여기에 성도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더해져 1961년 11월 23일에는 부채를 모두 청산하고 성전 봉헌예배를 드렸다.

자유공원 기슭에 세워진 작은 교회였지만 주변의 여러 곳에 구제하는 일과 더 약한 교회를 돕는 일에 힘쓰면서 안으로는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위해 성경공부와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에 열심을 냈다. 유년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남녀 전도회, 성가대, 그리고 부속기관으로 유치원, 인천고등성경학교 등이 세워졌다. 송월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말씀에 따라 전교인 십일조 헌금생활과 전도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해마다 총동원전도주일을 정하고 온 교인이 힘 쓴 결과 1980년 7월 6일 예배에서 교인 수 1000명을 돌파했다. 성도수가 늘어남에 따라 주변의 대지를 확보했고 또 한 번의 건축이 이루어졌다. 연이어서 교육관 건축, 영종도 기도원 설립, 김포 검단묘지 매입 등, 시설확충이 이루어졌다. 박도삼 목사님은 인천기독교총연합회 회장, 합동신학교 이사장, 예장총회(개혁) 총회장을 역임하며 송월교회에서 50년간 담임목사와 원로목사로 봉직하다가 2007년 소천하셨다.

박도삼 목사님의 빈자리에 1992년 박삼열 목사님이 취임하면서 송월교회는 더 크게 발전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이념으로 하는 개혁교단의 중추교회로서 한국교회와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로 발돋움한 것이다. 박삼열 목사님은 인천기독교연합회 총회장, 영음사 이사장, 합동신학대학원 이사장이 되어 활동하다가 2017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측 총회장에 선출되어 전국의 합신교단 교회들을 섬기셨다. 박삼열 목사님 재임 15년만인 2007년 6월 17일에는 현대식으로 자랑스러운 새 예배당이 건축되었다. 교회를 건축하면서도 미자립교회 돕는 일과 해외 선교비, 유관기관 돕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지역사회 봉사와 구원을 위한 ‘송월가족 봉사’, 송월시니어 대학, 첫 선교사 기념공원, 다문화공동체, 푸른 꿈 학교 등이 설립되어 지금 활동 중에 있다.

송월교회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맨 앞에 김형근 장로님이 계시다. 김형근 장로님은 1968년에 장로가 되어 지금까지 송월교회에서 60여 년 동안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되는 분이다. 송월교회 사무장으로 22년간 봉사하면서 송월교회 행정에 초석을 놓으셨고, 전국주교연합회 회장, 전국장로연합회(개혁) 회장 등을 역임하고 퇴임 후에도 각 교회 설교와 축사, 특강 등의 활동을 보이시는 분이다.

그밖에도 황해도에서 예수를 믿다가 월남하신 1대 정예곤 장로님, 큰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열심히 교회를 섬겼던 지교대 장로님, 전도에 본을 보이신 정사현 장로님(후에 목사), 믿음의 용사 같았던 정찬옥 장로님, 늘 눈물로 기도하셨던 정동린 장로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재도 열심히 교회 봉사의 본을 보이시는 19명의 은퇴 장로님들이 계시고, 또한 성령이 충만한 19명의 시무 장로님들이 계신다. 모두 성품이 온화하고 겸손한분들이라서 큰 잡음이 없고 언제나 마음이 편한 곳이 송월교회다. 또한 90여 명의 충직한 안수집사님들과 180여 명의 신앙의 본을 보이는 권사님들이 계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송월교회 권사님들과 여전도회 회원님들의 수고와 봉사는 특히 놀랍다. 목회자님들과 주일하교 교사들, 성가대원, 각종 봉사대원들을 섬기는 모습이 그렇다. 식당이나 여성의 도움이 필요한 곳곳에서 저들의 헌신은 정말로 대단하다.

이 모든 봉사가 주님의 보혈의 은총으로 죄사함 얻은 성도들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하는 봉사이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성도는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인생 문제의 해결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미 천국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를 간증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비바람 속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송월교회다.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온갖 역경을 뚫고 피어난 한 송이 장미꽃이라 할 수 있다.

 

* 신규철 시인은 <문예한국>에 수필로, <시와정신>에 시로 등단하였다. 인천시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인천석정여고, 인천부광여고 교장을 역임했다. 한국문인협회, 불이문학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자문위원이다. 수필집 <소래포구 해안 길을 걷다>외 3권, 시집 <낡은 의자에 앉아서, 2018>를 상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