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시간을 구원하라 _ 김대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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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시간을 구원하라

 

<김대진 목사 | 싱크와이즈 교육목회연구소 대표>

 

혼돈의 시대일수록 우리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야

함께 쓰는 시간을 날마다 더해 이 시대의 시간을 구원해 내야

 

온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말입니다. 평범했던 일상 대부분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북적이던 거리와 상가, 극장과 집회 장소들이 텅텅 비었습니다. 주말마다 만나던 친지와 가족들도 전화나 화상통화를 통해 안부를 물을 뿐 만나서 손을 잡거나 얼싸안기 쉽지 않습니다. 졸업식, 입학식도 없이 진학한 아이들은 집에서 컴퓨터나 태블릿 화면을 통해 공부합니다. 온라인 개학이란 초유의 상황을 맞이해서 학교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당황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온라인 생중계나 화상회의 앱 등을 통해 떨어져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코로나19 이전의 삶과는 여러 모로 다를 것이란 사실입니다. 일시적인 혼돈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제는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을 ‘일상’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뉴 노멀’(new normal)의 세상에서 사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삶의 지침을 놀랍게도 2,000년 전에 이미 주셨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5,16)

 

옥중의 바울은 에베소라고 하는 변혁적 도시에 위치한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펜을 들어 편지를 씁니다. 교회는 한마디로 충격적 변화를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양과 서양, 육로와 해로,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에베소라는 지역적 특성 위에, 이방인과 유대인이 만나 옛 신앙(율법, 유대주의)과 새 신앙(복음)이 충돌하는 때였으니 말입니다. 그들을 위한 사랑의 권면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지혜와 방향을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먼저는, 지혜로운 태도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행할지를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지혜 있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소포스(σοφοs)는 주로 하나님과 관련된 특성으로 이해됩니다. 구약의 잠언은 “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고 하여 올바른 삶의 유지를 위한 하늘로부터 온 판단력으로서의 지혜를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태도처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곧 지혜입니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우리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야 합니다. 얼마나 발 빠르게 대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하늘 백성답게 대응할 것인가가 먼저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끼라’는 뜻의 헬라어 엑사고라조 (ξαγοραζω)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줍니다. 많은 이들은 ‘아끼라’는 말에서 ‘효율’을 생각합니다. 덜 쓰고, 즉 적게 투자해서 많은 것을 얻는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껴쓰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엑사고라조는 ‘댓가를 지불하여 소유권을 회복하다’라는 뜻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그래서 ‘redeem’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구원’의 행위입니다. 몸값을 지불하고 되찾아온다, 구해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값을 치르고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처럼, 우리도 이 악한 세상에서 시간을 구원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왜 구원의 대상일까요? 사실 시간은 가만히 놔두면 타락합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엡5:16). 가만히 놔두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에 사용되는 것이 시간입니다. 사단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전에 믿는 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신체적 위해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믿음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기독 신앙은 죽어야 사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믿는 자들을 바쁘게 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이기적으로 쓰게 만듭니다. 시간을 쓰는 방향과 목적을 바꿉니다. 모두 다 바쁘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게 합니다. 지금도 많은 시간이 타락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그 세월을 구원해내야 합니다.

이에, 온가족이 함께 시간을 구원해 내는 원리를 믿음의 가족들에게 제안합니다.

 

1) 아껴 쓰지 말고 넘치게 쓰십시오

‘세월을 아끼라’는 에베소서의 말이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어 알뜰하게 쓰라는 말 정도가 아닌 것을 이제 우리는 압니다. 시간의 효율이 아닌, 시간의 가치와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시간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충분히, 넘치게 써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 더 가까운 표현 역시 ‘아끼다’ 보다는 ‘넘치다’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마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향한 그의 ‘넘치는’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사랑과 은혜는 그 속성상 ‘아끼지’ 아니하고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를 부어 주실 때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재무재표를 따져보고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에게만 사랑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앞뒤를 따지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일종의 거룩한 낭비입니다. 나와 같은 것을 기다려주시고 또 구해주시고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것은 투자의 방면에서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그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그 마음으로 시간을 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위해, 자녀와 부모를 위해, 이웃을 위해 시간을 쓰실 때 그렇게 하십시오. 아끼지 말고 넘치게 쓰십시오. “아빠가 너무 바빠서 너희들과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딱 7분 30초 남았구나. 내가 집중할 테니 네 안에 있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지 않으련?” 그게 말이 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이 세상에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시간 활용법은 낭비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보다 더 쓰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몇 시간을 수고해서 달려가는 것이고,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밤새도록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넘치도록 낭비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닮은 사랑입니다. 아껴 쓰지 말고 넘치게 쓰십시오. 거룩한 낭비로 두려움 없이 시간을 구원하십시오.

 

2) 혼자 쓰지 말고 함께 쓰십시오

사단이 활용하는 이 시대 시간 파괴법 두 번째는 ‘혼자의 시간으로 만들기’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시간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함께 TV를 보거나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자신만을 위한 6인치 화면에 코를 박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함께’의 하나님입니다. 홀로 온전하신 분이 셋으로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닮은 우리도 ‘함께’할 때 영광스럽습니다. 에베소서 전체가 외치는 것이 ‘우리는 주 안에 한 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늙어 인생을 돌아볼 때, 혼자 밤을 새워 보았던 드라마가 생각나겠습니까, 아니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했던 순간이 떠오르겠습니까? 시간은 함께 만들어갈 때 추억이 되고, 그 믿음의 추억은 세대를 잇는 신앙 전수의 컨베이어 밸트가 될 거입니다. 혼자 쓰지 말고 함께 쓰십시오.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내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쓰는 시간이 일주일에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시간의 양이 당신의 믿음의 분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개인의 성공, 개인의 성취, 개인의 취미, 개인의 오락을 위해 네 시간을 네 마음껏 사용하라고 외치는 이 악한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함께 쓰는 시간을 날마다 더함으로 이 시대의 시간을 구원해 내십시오.

온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뉴 노멀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태도는 바뀌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음에 반하는 세상의 악함도 그대로입니다. 아끼지 말고 넘치게, 혼자 쓰지 않고 함께 쓰는 믿음의 시간 활용법을 통해 시간을 구원해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