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보김, 통곡의 장소(삿2:1-5) _ 박종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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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보김, 통곡의 장소 (삿2:1-5)

 

<박종일 목사 | 수원노회>

 

마땅한 생명력을 상실한 채

불신의 삶으로 가는 한국교회가

이 시대의 보김 아닌가

 

기업으로 얻은 땅조차 정복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앞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본문은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왔다”고(2:1) 말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 요단을 건너 밟은 가나안의 첫 주둔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고, 첫 유월절을 지켰으며 만나가 그친 곳입니다(수 4, 5장). 이렇게 시작한 가나안 정복은 결국 완성되었고, 각 지파는 기업으로 얻은 땅에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보김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70인역(LXX)은 본문을 헬라어로 옮기면서 “보김”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벧엘’이란 말을 첨가한 것을 볼 때, “보김”은 “벧엘”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벧엘은 요셉가문이 최근에 얻은 성읍(삿 1:22-26)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2:1-4) 그러므로 많은 성경학자들은 본문에 등장한 ‘여호와의 사자’를 구약에 선재하신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라고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왔다는 것은 상당한 상징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셨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길갈에서 최근에 얻은 벧엘까지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한순간도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편에 서서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가나안 족속들과 싸우기를 피하였고, 가나안 족속들과는 공존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은 무시되고 이스라엘은 불순종의 길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게으름과 무지는 결국 그들에게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그들을 넘어뜨리는 올무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 말씀을 하자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웁니다(2:4). 이런 통곡이 있었기에 그곳 이름이 보김(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또 그들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언뜻 보기에 “보김”은 회개의 장소요, 제사를 통한 갱신과 회복의 장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를 보면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례식에 가서 밤새도록 통곡한 후에, 아침에 ‘그런데 누가 죽었어요?’라고 하는 바보처럼, 통곡하고 제사까지 드렸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믿음없는 삶, 하나님 없는 삶으로 일관합니다. 이것이 비단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종교화된 기독교, 상업주의에 물든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예배당에서 잘 짜여진 순서에 따라 화려한 말잔치를 벌이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생명력을 상실한 채 믿음 없는 삶으로 가고 있는 한국교회가 이 시대의 보김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