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스승의 날에 ‘센세(先生,せんせい)’를 생각하다
<허태성 선교사 | HIS, 강변교회 공동파송 | 일본 도쿄 아키루다이 바이블처치 협력>
그 모든 센세들을 기억하며
진정으로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
일본에 와서 배운 단어 중에 ‘시고토’(仕事,しごと)라는 말이 있다. 일이나 업무라는 뜻인데 직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본어 학교에서 공부할 때 급우들로부터 당신의 시고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대부분의 젊고 어린 학생들이 힘들게 알바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나이가 든 우리 부부가 무슨 알바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고토는 없고 학생이라고 대답하면 ‘오카네모치’(お金持ち)! 라고 외치며 놀란다. 돈 많은 부자라는 의미의 단어로 받아치면서 우리를 대단히 부러워했다. 은행 잔고는 달랑달랑해도 우리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시니 내가 부자인 것은 분명히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일을 자주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의 추억 속에서만 살지 않으려고 미래의 시고토를 꿈꾸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고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내 인생의 시고토는 무엇이었고 무엇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인가? 문득 한 단어가 떠오른다. ‘센세’(先生,せんせい)라는 말이다.
나는 만 21세에 이미자 가수의 ‘동백아가씨’ 가사처럼 해당화가 피고 지는 섬마을 안면도 방포국민학교에 총각 선생으로 발령을 받아서 첫 번째 시고토를 시작하였다. 그때 처음 가르쳤던 제자들이 지금 50대 초반이 되어서 같이 늙어가고 있다. 지금도 만나면 그들은 나를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나를 부르며 즐거워한다. 돌이켜 보니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8년 후에 사표를 내고 합신에 들어와 공부하면서 나는 센세에서 ‘각세’(學生, がくせい)가 되었다. 히브리어 시험에서 권총을 차고 과연 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두 번째 시고토인 목사로 일하게 되었다. 공주에서 개척교회 4년 7개월, 강변교회에서 부목사로 4년 8개월, 은곡교회에서 담임목사로 7년 11개월, 미국 미시시피 리폼드신학교 기숙사에서 넉 달의 공부와 휴식을 마치고 다시 강변교회로 돌아와 담임목사로 9년을 섬기다가 조기 은퇴를 하고 1년간 선교훈련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와서 세 번째 시고토인 선교사로 살아간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재미있게도 교사도 목사도 선교사도 다 ‘센세’라고 부른다 교수나 의사나 변호사도 역시 센세라고 부른다. 결국 나는 센세로 시작하여 센세로 목회하다가 은퇴를 한 후에도 센세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할아버지는 시골 서당의 훈장이셨고 아버지도 역시 내 고향 충주에서 초등학교의 교사이셨으니 3대째 센세 집안인 셈이다.
일본에서는 목사의 아내도 센세라고 부른다. 내 아내도 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센세였고 내가 목사 안수를 받고 센세를 내려놓았지만 개신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강변교회에서 잠시 교육전도사를 한 적이 있다. 그것으로 센세가 끝난 줄 알았는데 선교사 훈련을 받고 일본에 오니 또 일본인 교회에서 센세라고 부른다. 나랑 동급이 되어 자주 맘먹으려고 하기에 때론 피곤하다.
센세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제자를 가르치며 목양을 하며 외국에 나와서 선교를 한다는 것은 그리 편한 시고토가 아니지만 참으로 보람된 일이다. 조영남의 노래 가사처럼 어찌 ‘나 하나 몸 간수도 제대로 못하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자를 일평생을 센세로 살게 하시는지 그 은혜가 감사할 뿐이다.
올해도 스승의 날을 맞았다. 물론 일본에서는 스승의 날은 없지만 지난해 스승의 날엔 내가 인턴으로 훈련받고 있는 아키루다이 바이블처치의 와타나베 세이잔 센세를 한국식당으로 초대하여 점심식사를 대접하였다. 요즈음은 코로나로 인해 모든 식당이 휴업 상태여서 올해는 못할 것 같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센세들을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과 초, 중, 고, 대학교 시절의 여러 은사들과 선교단체의 센세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가르침을 주셨던 박윤선 센세를 비롯한 센세들. 미국 리폼드신학교에서 만난 센세들. GMTC에서의 여러 센세들. 일본어를 가르쳐 준 센세들… 모든 분들께 감사와 고마움을 표한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있고 아직 생존해 계신 분도 있다 은혜를 제대로 갚지는 못하지만 다시 그 모든 센세들을 기억하며 진정으로 사랑을 담아 존경을 표한다.
♡사진설명 : 합신 초창기의 선생님들 | 앞줄 좌로부터 윤영탁, 옥한흠, 김명혁, 독일 튀빙겐 대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윤선, 신복윤 선생님. 뒷줄 좌로부터 김성수, 이만열, 박형용, 전호진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