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학자들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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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신학자들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여전히 진행형인 코로나19 사태 속에 부활절을 맞는다. 당면한 고난의 의미 규명과 극복도 급하지만 우리는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분명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더더욱 혼돈과 좌절의 늪에 빠질 것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즉 코로나19 사태 후에 나아갈 길을 성경적으로 찾아 다시 든든히 서야 한다.

우선 신학적 재정립을 도모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견지하던 많은 신학적, 신앙적 토대를 부득이 재고하게 만든다. 사도신경적 믿음의 근간에 균열이 온 건 아니지만 신앙의 의식과 외형적 활동에는 일부 혼돈이 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론과 예배론 등을 다시 정리하고 성도들에게 바르게 교육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비상시의 대처법을 성경과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문서들에 비추어 논의하고 실천 가능한 매뉴얼을 작성해야 한다. 상황 논리의 위험성은 상존하지만 적어도 국가적, 사회적 존립이 걸린 비상시에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배를 포함, 정부와 교회의 관계, 교회의 사회적 책임, 비상시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행동강령, 범교회적 연대 방법, 노회와 총회의 역할과 책임 등이 제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교단 신학자들의 헌신이 먼저 요구된다. 자신의 전공과목의 기초 위에서 논하되 때론 상호 연계를 통해 사태의 중심 의미를 함께 천착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보는 이미 783호 ‘연구와 실천으로 시대적 문제에 응답을’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부분을 거론한 적 있다. 재론하자면 신학자들이 전공과목의 시각으로 현실의 제반 문제에 대한 역동적인 관심과 성경적 대안의 제시에 더 열심을 내 달라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 상황에서 성경적 윤리의 준거를 부단히 연구하며 응답하는 일은 학자적 의무이며 또한 비록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답을 일상에서 실행하도록 가르치고 독려하는 일이 중요하다. 상황에 대한 분석과 성경적 대처 방안을 늘 준비하는 게 어렵지만, 개혁주의 신학자는 이 일에 힘써야 한다. 코로나19로 비상한 지금이야말로 신학자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에 총회신학연구위원회의 긴급제언들은 신학적 기초 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물론 그 내용들에 대한 논의가 완결된 것은 아닐 것이다. 신학자들은 현장 목회자들의 의견을 더 많이 수렴, 숙지하고 신학적으로 검증하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그렇지만 최근에 우리 교단의 몇몇 신학자들이 비교적 발 빠르게 긴급한 사안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것은 그 내용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자체로서 값진 일로 평가된다.

논의 중 학자들 간의 이견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서로의 시야에 사각이 있고 연구 모델이나 접근법이 다를 수도 있다. 또 합의 도출까지 장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예컨대 역사적 신경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나오기까지 지난했던 과정을 생각해 보라. 어느 한 사람의 독단적인 의견이 전부였던가? 연구자들이 서로 활발히 논쟁하되 정직한 자기반성과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교단 신학자들이 본보를 포함한 몇몇 매체에 발표한 논점들을 편향된 시각으로 폄훼 비판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교단의 신학자들이 과도하게 교단의 눈치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신학자들의 기본적인 예절과 겸허한 처신은 각자의 인격과 수준의 소관이다. 그러나 적어도 신앙인이자 학자적 양심으로 연구하고 묵상한 결론을 거리낌 없이 제시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개혁 500주년 하고도 3년이 되어 가는 이 시점의 개혁주의 교단의 최소한의 좌표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누구도 공인된 교단 신학자들의 논의에 유무형의 압력을 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신학자들이 교단이나 누군가를 의식하고 자가 검열을 해야 하는 정황이라면 교단은 상당히 항로에서 멀어진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자들이 각자 전공과목의 준거 위에서 현실을 논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비록 거기에 오류나 하자가 있을지라도 논의의 장에서 하자 보수하고 자기 논점을 성찰하여 정돈할 기회를 열어 두는 것이 훨씬 개혁주의답다.

교단 신학자들이야 이미 초입부터 개혁주의적 기초 위에서 검증을 받은 자들이지만 혹시라도 자기 관점에 심각한 오류가 생겼음에도 그걸 고집한다면 논의 중에 성찰하고 고칠 기회를 주면 된다.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되고 자기주장을 견지한다면 정한 규칙과 과정을 따라 갈 길을 가게 하면 될 것이다. 애초부터 신학자들에게 꽉 막힌 방 안에서 원하는 답만을 제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발전적이지 못하고 자중지란의 단초가 된다.

이제 한국교회는 아니, 우리 교단만이라도 요란한 냇물보다 큰 호흡으로 소리 없이 진리를 따라 멀리 흐르는 깊은 강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현상에 대한 교단 신학자들의 활발한 논의와 대안 제시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코로나19 시국은 그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