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부활절에 _ 김현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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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

 

부활절에

 

<김 현 승>

 

당신의 핏자국에선

꽃이 피어 – 사랑이 피어

땅 끝에서 땅 끝에서

당신의 못자국은

우리에게 열매 맺게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덤 밖

온 천하에 계십니다 – 두루 계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그 손의 피로

로마를 붙들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유태인의 옛 수의를 벗고

모든 4월의 관에서 나오십니다.

모든 나라가

지금은 이것을 믿습니다.

 

증거로는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모든 나라의 합창은 우렁차게 울려납니다.

해마다 3월과 4월 사이의

훈훈한 땅들은,

밀알 하나가 썩어서 다시 사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파릇한 새 목숨의 순으로…

 

김현승 시인(1913-1975)

평양 출생. 목사인 부친을 따라 광주에서 성장. 1935년 <조선시단><동아일보>로 등단, ‘혜성같은 시인’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광주 숭일학교 교사로 신사참배 거부에 연루돼 파면 당했고 이후 해방 무렵까지 절필했다가 1950년대 이후 활발히 문학 활동을 전개했다. 조선대, 숭실대 교수였던 그는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고독, 허무와 같은 근원적 문제에서 출발, 절대자 앞에서의 인간의 겸허와 청교도적 윤리성의 실현을 주제로 생명, 순결, 진실 등을 시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 기독교 시인이다. 대표작은 ‘가을의 기도’ ‘견고한 고독’, ‘플라타너스’, ‘눈물’ 등이 있으며 <김현승시초> <옹호자의 노래> <견고한 고독> 등의 시집이 있다. 차를 좋아해 호를 ‘다형’(茶兄)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