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골 아침사색| 어느 봄날의 묵상_변세권 목사

0
427

어느 봄날의 묵상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믿음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통치를 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연일 내린 봄비로 흰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벚꽃 잎을 아쉬워할 때 앞 다투어 피는 꽃과 새로 돋는 잎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눈이 시리게 화창한 봄날이다. 곧 더워질 테니 이런 날이 며칠이나 더 갈까?

 

칼빈은 일찍이 창조계시의 목적에 대해 ‘창조의 역사가 명백해지는 것은, 곧 이것을 믿는 교회의 신앙으로 하여금 모세에 의해 나타난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을 찾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서 바라고, 하나님에게서 찾으며, 또한 이미 받은 것 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리기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쯤에서 이렇게 좋은 날들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해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아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안이 되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아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으로 인해 기쁨을 누릴 때에도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이것을 누릴 수 있도록 예전부터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우리는 만물의 존재와 질서를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을 부지런히 명상할 수 있어야 한다.

칼빈은 창조를 단번에, 순식간에 하지 않으신 것은 인간이 허구적인 상상을 하지 못하게 하심이었고, 또한 그렇게 지으신 창조물 전체를 인간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부성적인 후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섭리로써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고 유지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어떠한 우연도 없는 것이다.

창조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바로 섭리 사실까지 고려되어야, 비로소 충분한 것이 된다. 이렇듯 단순한 세상적 관점은 창조사상에 머물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통치를 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감사하게 만드는데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또한 우리를 인내하게도 해준다. 세상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 편이시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실지 보기 위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 또한 선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넉넉히 이길 힘 또한 함께 주시리라는 데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 여정의 매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보살펴 주실 것을 잘 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또한 우리가 미래를 대면하는데 있어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죄로 물든 세상을 살아간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 살아있을 때에 예수께서 재림하시지 않는 이상 우리 역시 언젠가 죽게 될 것도 자명한 일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우리가 끔찍하게도 아끼고 함께 하기를 즐겼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오늘도 자신감을 갖고 신자의 삶을 살며,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것이 철저하게 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아는 것에 있는 것이다.

칼빈은 ‘섭리에 대한 지식은 번영할 때는 감사한 마음을, 역경 속에서는 인내를, 미래에 대한 우려에서는 놀라운 자유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느꼈건, 아니면 무생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건 간에 일체의 번영과 형통 전체를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증거들을 통해 교훈을 받았다. 주님의 창조와 섭리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면서 경외심과 겸손함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 하며 단순한 호기심이나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고 인간의 교만이다. 따라서 창조는 섭리로 나타나고, 섭리는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일을 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의 숫자가 많고 적음을 떠나 하나님이 제정하신 교회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봄날이 더 가기 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믿고 바르게 믿고 있는지 창조와 섭리를 통해 고민해봐야 한다. 그 진위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진지한 교회 생활과 목회에 있다.

교회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상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지체의 연합 사상은 당연히 으뜸이 되는 것이다. 이때 창조와 섭리는 구원의 든든함과 확실성 차원에서 접근하기만 하면 절대 위축되거나 타협하지 않고 온전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해지고 가야할 길로만 가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