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소식| 화성교회 새가족부 간증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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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소식

 

화성교회 새가족부 간증 모음

 

>> 화성교회 새가족 사역 소개

 

<최성운 목사 | 화성교회 새가족부 담당>

 

화성교회(담임 이은수 목사님)는 새신자 정착 사역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새가족 사역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찾아온 분들을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안내하는 사역으로 기존 성도들과 자연스럽게 교제권을 형성하게 하여 교회에 정착하게 합니다. 인격적 교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 마음을 열고 낯선 교회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함께 그리스도께로 자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새가족팀이 그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새가족 팀은 처음 오신 분들과 주중에는 연락하고 주일에는 만나서 섬깁니다. 그렇게 그들의 낯선 마음을 돌보며 천천히 다른 분들에게로 안내합니다. 이렇게 안내하는 시간을 통해 새가족들은 교회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소속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격적 교제, 영적 교제가 이뤄지게 됩니다.

이 일은 또한 새가족 사역팀과 교회에게도 좋은 변화를 이끕니다. 새가족 사역을 섬기는 분들은 돌보시며 이끄시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교회의 다른 분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이 됩니다. 이렇게 새가족 사역을 통해서 화성교회는 사랑과 돌봄의 공동체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습니다.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함께 자라는 일에 하나님께서 새가족 사역을 사용해 주셔서 교회를 더욱 교회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을 내려놓으며 오직 믿음으로 살기 위해 기도합니다”

 

<박순예 성도 | 화성교회>

 

집에서는 사흘에 한 번은 굿을 하곤 했습니다. 마당에서 무당이 작두를 타고, 칼을 던지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내내 보고 자랐지만, 저의 꿈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성경도 잘 몰랐지만, 학교 앞 교회의 종소리가 항상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성인이 되어 서울로 상경하였고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청파동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집 앞에 사시던 할머니 한 분이 저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권면을 하여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8년 정도 그냥 열심히 다니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도 않았고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채 출석만 열심히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의 병환을 계기로 뜨거운 신앙을 갖게 하셨습니다. 남편의 병환이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치유되는 역사를 체험하며 신앙이 깊어지자 평생 무당만 쫓아다니시던 친정 부모님께서 제가 믿는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친정어머니를 그냥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교회 가려고 집 밖을 나설 때마다 넘어뜨리기도 했고, 물을 마실 때도 목을 움켜쥐고 물이 넘어가지 못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난과 방해에도 친정어머니는 굳건히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어머니가 교회에 출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하나님도 살아 역사하시지만, 사단도 분명히 역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 3시에 일어나 교회에 가셔서 기도하고 동이 트면 논밭에 나가 일하실 만큼 적극적이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지 얼마 만에 파킨슨병을 얻어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신 어머니를 어느 누가 전담하여 모실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어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정신은 멀쩡하신 어머니를 갑자기 요양원에 모시려니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퇴근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마치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버린 것처럼 생각되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병상에 계시면서 주말마다 찾아오는 자식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내일은 주일이다. 헌금 놓고 가라. 감사헌금도 빠뜨리지 마라”

하나님을 만나고 나신 이후 어머니는 단 한 순간도 하늘의 소망을 잃지 않으시고 행복해 하시며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찬송을 많이 부르셨습니다. 파킨슨병으로 3년을 앓고 천국에 가시기 이틀 전에 어머니는 눈도 뜨지 못하는 상태셨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찾아간 제가 기도를 할 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엄마, 많이 힘드시죠?” “엄마 기도해요” “하나님 지금 너무 아픕니다. 아픔이 없는 천국, 하나님 품으로 빨리 인도해 주세요.” 어머니는 이 말을 들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2017년 주일을 보내시고 월요일 아침 새벽 5시에 어머니는 그렇게 소원하시던 천국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안수집사로 어머니는 권사로 하나님을 섬기시다가, 한 해에 5월과 9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부모님의 변화되시는 삶을 지켜보며 부모님과 제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이든 감사하게 되었고, 억울한 일을 당해 힘들어도 예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려고 애를 쓰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제 자신을 내려놓으며 오직 믿음으로 살기 위해 기도합니다. 저를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매일 새롭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손자가 건강이 약해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남편은 허리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 욕심들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최지아 성도 | 화성교회>

 

저는 7살쯤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교회를 계속 다녔는데, 자세히 기억 안 나지만, 교회친구들과 다툼으로 교회를 안 다니게 되었던 듯합니다. 그 후 고교 때 반 친구의 인도로 교회에 다시 다녔는데, 그 친구는 저를 교회에 인도했으니 소임을 다했다는 식의 행동으로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게 했고, 배려심도 없고 욕심 많은 행동을 보여 적잖이 실망하고 다시는 교회 안 다니겠다 다짐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교인에 대한 부정적 생각으로 회사 내에서도 교회 다니는 분은 의식적으로 멀리하게 되었고, 하필 그 직원분도 너무 이기적이어서 전 정말이지 교인이 싫었습니다. 이기적 집단이라 생각을 했고, 말만 주님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이익을 더 챙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친한 친구가 말하기를 외국에 이민을 가 거주하면서 심한 우울증이 왔는데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심으로 극복했다는 겁니다. 종종 저에게도 ‘주님 믿고 은혜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항상 그 말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4년 전부터 친정 엄마가 자꾸 방금 있었던 일도 잊어버리시고, 했던 말을 반복하시고 언니가 자꾸 당신 돈을 가져간다고 심하게 의심하는 이상 증상을 보이셨습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언니와 저는 바로 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알츠하이머 중기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만 62세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치매라니, ’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한없이 나약하게 변해 버린 엄마가 너무 가여워서 저와 언니는 번갈아 집에 모시며 돌봐 드렸지만 어린 자녀들로도 벅찼던 우리는 결국 엄마를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상 자기 관리 잘하시고 예쁘셨던 엄마가 늙고 병들어 그렇게 무기력하게 계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고,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때 그 외국에 사는 제 친구가 엄마를 위해서라도 교회를 다녀야 한다며, “꼭 하나님께서 너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기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강했던 저로서는 교회 선택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막연하게 교회를 다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지내다, 작년 여름 저에게도 건강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제가 감당하기는 너무나 힘든 큰 수술을 세브란스병원에서 받았는데, 입원 절차에서 병실이 부족해 암 병동 병실을 배정받았습니다. 엄마의 병환으로도 심신이 나약해진 상태에 제 몸까지 아파서 이렇게 수술을 받게 되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원망 가득한 마음이었습니다. 수술받기 전 목사님께서 오셔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교회라면 치를 떨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구나!’ 그때 느꼈습니다. 수술을 마친 후에 다시 암병동에 입원했는데, 그것도 주님의 뜻 같았습니다. 제 옆에 입원했던 환자분은 말기 암이었는데, 어린 자녀가 두 명이 있었고, 몸에 맞는 항암제를 못 찾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타인의 고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고 나밖에 모르며 살았구나!’ 느꼈습니다.

‘전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술인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원망만 했구나….’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 내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모습을 보고 저도 따라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그동안 주님을 모르고 살았음을 회개하며 저를 꼭 은혜 많고 따뜻한 교회로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분이 화성교회를 추천해 주시며, 등록은 바로 안 해도 좋으니 목사님 설교를 꼭 들어보라 하셔서, 저는 홈페이지를 찾아 목사님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위로를 설교를 통해 듣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저는 세상에 대한 원망, 욕심들을 많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6개월 정도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화성교회에 등록하여 본격적으로 교회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저를 화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사랑,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와 희망입니다.”

 

<김서빈 성도 | 화성교회>

 

아직 한없이 부족하고 배울 게 많은 저이지만 하나님께 그리고 다른 성도 여러분께 간증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6년간의 연애 끝에 작년 4월 늦은 나이로 결혼하였습니다. 직장의 서울 발령이 아직 나지 않은 상태라 여전히 대구 친정집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던 5월. 신혼여행 후 한 달 지났을 무렵, 평소와 달리 피로해 보이시는 친정아버지께서 병원진료 후 담낭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암, 그것은 저와 가족들에게 마치 소리 없이 다가온 태풍과도 같은 맞서 싸우기에 버겁고 힘든 그런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6개월이라는 아버지의 여명은 타들어 가는 촛불과도 같았고, 아직 아버지와 가보고 싶은 곳,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저는 밧줄에 몸이 묶여 달리고 싶은데 달리지 못하는 어린 말과 같았습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교회를 다녔던 막내 남동생은 매일 하나님께 아버지를 보살펴 주시길 기도드렸고, 이 소식을 전해 들으신 대구 남산교회 목사님께서도 병원에 나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목사님께 많은 고백과 함께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셨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인생에 바로 역사하신 순간이었습니다. 동생의 권유로 아버지는 병상 세례를 받으셨고,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을 찾고 천국 백성이 되셨습니다.

작년 12월 저는 직장 발령으로 서울로 오게 되었고, 그렇게 아버지를 자주 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임신 8주차에 접어들며 유산의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과 절망이 저에게로 몰려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시기에 점점 쇠약해짐에 이제 전화통화도 힘드셨던 아버지는 병실 창밖에 뭉게구름, 파란 하늘, 푸릇해지는 나무를 보실 때마다 어머니께 ‘만약 내가 떠나게 된다면 벚꽃 피는 따뜻한 봄날에 떠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거짓말처럼 3월 벚꽃이 만개하고 너무나도 따뜻했던 봄날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임종이 임박했을 때 서울에서 대구로 가던 차 안에서 임종 소식을 듣게 되었고, 임종을 지켜 드리지 못해 너무나도 죄송하고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었지만, 가족을 너무 사랑했던 아내 바보, 딸 바보, 아들 바보 우리 아버지가 이제는 고통 없는 천국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봐 주실 거라고 제 스스로를 달래며 그렇게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장례식 내내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 슬픔. 고통과 같이 느껴지는 이 슬픔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장지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 목사님께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 이생이 끝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니, 잘 가라 인사하고 새 삶을 기뻐하라’고 하신 기도 말씀에 무언가 크게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었고, 슬퍼서 흘리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그리고 동생과 손을 꼭 잡고 마주 보며 ‘다행이다’고 안도의 웃음을 함께 지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남동생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집사님, 장로님, 여러 성도님들이 함께 슬퍼해 주시고 끝까지 도와주셔서 가족은 정말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전 저희에게 다른 당부 없이 유일하게 남기신 말씀. 나중에 천국에서 사랑하는 우리 가족 다 같이 만나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은 어머니와 저 그리고 여동생은 망설임 없이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없던 때는 남동생이 그간 교회에 함께 가자고 했던 권유도 저에게는 귀찮은 부탁처럼 느껴졌고, 성경 말씀도 기도도 의미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임종 끝에 찾아온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저의 눈과 귀와 마음을 활짝 열게 하였고 기도와 믿음이 왜 중요한지도 매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이후 저의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남동생과 대구남산교회 목사님께서 서울에 있는 교회를 찾아봐 주셨고, 다행히도 집 근처에 좋은 교회가 있다고 추천해 주셔서 화성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샘솟아나는 신앙심과 매주 새 가족 성경공부에 참석하며, 혼자 교회를 나오는 것이 힘들지 않게 느껴졌고, 인내심과 끈기로 기도하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저의 신랑도 함께 손잡고 예배드리러 올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그 강하고 큰 사랑이 죽음 앞에서 쓰러져 가던 우리 가족에게 일어설 수 있는 힘과 계속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셨고 신랑과의 불필요한 다툼도 제가 이해하고, 참을 수 있는 아량을 주셨으며, 믿음이 단순한 마음만이 아니라 삶을 올바르게 살아갈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심에 더욱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전히 저는 매일 아버지가 그립지만, 아버지가 천국에 계심을 감사드리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 하나님을 섬김에 그 어떤 장애가 없도록, 그리고 충실한 성도가 되고 성경공부에 최선을 다하도록,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건강하고 예쁜 아기가 생기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신 성령 충만한 성도 여러분! 아직 한없이 부족한 제가 앞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살아 갈 수 있게 기도해 주시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에게 후회 없도록 사랑하고 인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 많이 만드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