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어거스틴의 유산 _ 박종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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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어거스틴의 유산

 

<박종일 목사 _ 관악중앙교회 | 남서울노회장>

 

선배들이 물려 준 아름답고 위대한 영적 유산,

성경적 신앙전통과 올바른 교리들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히포의 감독 성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만큼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자 신학자이다. 칼빈주의 삼대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워필드(B.B.Warfield)는 종교개혁 사상은 어거스틴주의의 부활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대표적인 역작이 노년기에 이르러 만들어 지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나, 이와 같은 일이 어거스틴에게 일어났다. 어거스틴의 신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은총론이 펠라기우스와의 뜨거운 논쟁을 통하여 확고부동하게 확립된 것이다.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인했고 인간은 지금도 아담이전의 상태와 같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간 상태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온 인류에게 아담의 죄가 전가되는 것을 부인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극대화했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죄로 오염되었고 부패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단지 인간생활에 유익을 주며 악을 극복하는 데 좀 더 쉽게 해주는 정도로 치부해버렸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공로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은혜를 인간은 거절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십자가 구속 사건은 희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성경을 알았으나 자기 임의대로 해석했고 성경을 벗어났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를 교활한 이단자라고 불렀다.

어거스틴은 원죄를 주장하면서 온 인류가 아담안에서 실제적으로 범죄하여 그의 죄에 동참했다고 말한다. 인간은 원죄 가운데 태어나며 그 죄로 인하여 죽음과 부패가 왔다고 설명한다.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자유의지는 상실되었다. 죄로 인하여 부패한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선을 택하거나 행할 수도 없고 스스로 죄만 짓는다. 어거스틴은 죄인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음을 인정하나 이 자유의지는 선해 대해서는 무력하고 악에 대해서만 자유로운 것으로 보았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혜는 공로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임해야만 그 은혜를 알 수 있고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거니와 주실 때에는 거절할 수도 없는 것이다.

펠라기우스의 등장은 우리 기독교사에 큰 축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면역주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면역주사에는 독이 들어 있지만 그것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계속해서 독성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똑같은 독이 침투했을 때에 우리 몸을 방어할 수 있는 면역력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펠라기우스는 우리 기독교에 큰 면역주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 항체로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귀한 영적 유산을 물려 준 인물은 바로 다름 아닌 어거스틴이었다. 만약 펠라기우스만 있고 어거스틴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펠라기우스’라는 병에 걸려서 아직까지도 헐떡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타가스테에서, 마다우라에서, 카르타고에서, 밀란에서, 오스티아에서, 로마에서, 그리고 히포에서 어거스틴을 연단하시고 훈련시키셨던 하나님께서는 결국에는 그를 이 거대한 전쟁의 위대한 승리자로 우뚝 서게 하셨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논쟁은 당대의 두 사람만의 논쟁이 아니었다. 어거스틴의 신학적 입장을 지지하는 수많은 후대의 모든 사람들과 펠라기우스적 사상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거룩한 싸움이었다. 두 부류의 모든 사람들을 대표했던 싸움이었던 것이다. 이 싸움을 통하여서 신앙적 교리적 체계는 더욱 더 명확해졌다. 어거스틴의 승리로 말미암아 후대에 뒤따라 나왔을 제2의, 제3의 펠라기우스까지 완전히 제압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논쟁을 통하여서 우리는 기독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그것은 바로 참된 교리이다. 거짓교리가 참다운 교리인양 양의 옷을 입고 슬그머니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경우를 우리를 경계해야만 한다. 어거스틴이 아니었으면 펠라기우스주의가 완전히 박멸되지 못한 채로 지금도 우리 교회주변에 어슬렁 거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물려 준 아름답고도 위대한 영적유산들(성경적 신앙전통과 올바른 교리들)을 아름답게 가꾸어야만 한다. 그리고 거기서 일탈되는 어떠한 궤변이나 궤계도 잘 분별해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또한 참된 교리 안에서 교회들이 건강하게 자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성경에서 밝히 보여주고 있는 참된 교리 밖에서 서성거리는 무리들에게는 단호한 권징을 시행하여서 다른 교회들에게 본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틴이라는 한 인물을 사용하셔서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역사의 한 시대를 접으시고 새로운 한 시대를 열어 놓으셨다. 어거스틴이 이루어 놓았던 신앙 유산은 시대가 흘러갈수록 더욱 더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세워 놓았던 사상과 교리와 교훈들은 우리 신앙의 정수가 되어 우리 몸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혈류처럼 우리 기독교를 붙잡아 주고 있다. 어거스틴 신학의 DNA는 칼빈의 신학으로 유전되어서 다시 우리에게까지 그 유전자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