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회 총회 참관기 (2)| 처음 총대로 참석한 총회에 대한 생각 _ 이상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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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회 총회 참관기 _ 2

 

처음 총대로 참석한 총회에 대한 생각

 

<이상용 목사 | 포항그의나라교회 | 본보 객원기자>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것이 무엇인지 배우도록

좀 더 젊은 총대들이 선출되어 역동성 있는 총회가 되길 바란다

 

“총회 그리고 총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대 중반부터 간간히 생겨난 의문이었다. 그때는 합신이 아닌 다른 교단,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교단의 신학대학을 다니며 그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여름 성경학교 강습회나 그 신학대학의 강사분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총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그려보곤 했다.

30대에 합동신학대학원을 입학하고 합신으로 교단을 옮겼고, 합신 교단의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40대 후반을 시작하는 즈음에 총대가 되어 이번 104회 총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참석하는 총회를 앞에 두고 ‘내가 사랑하는 합신의 총회는 이전에 내가 들었던 총회와는 어떻게 다르며, 무엇을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과 기대 그리고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이전 교단에서 들었던 총회와 총대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는 좋은 것이 별로 없었다. 총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하기보다 ‘누가, 어떻게 총회장이 되었는지’, ‘그가 얼마의 돈을 썼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은 자신이 ‘총대’라는 것이었다.

합신에서도 어떤 이들은 총대가 되느냐 마느냐에 민감해 하는 이들이 있다. 왜 이런 반응을 할까? 짐작건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가 드러나는 선거를 통해 총대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한편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헌법 제3조, 4항에 나와 있는 대로 “통치적이 아니고 봉사적”이기에 그것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닌, 전 교회를 향한 봉사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총대가 되어 총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보다는 더 큰 책임감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현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기에 명예롭고, 따라서 그에 합당한 태도와 책임을 요구받는 것이다.

직전 총회장의 열정적인 설교, 전북노회원과 전주새중앙교회 교인들의 극진한 섬김으로 시작된 104회 총회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듯하다. 첫째는 선거, 둘째는 상비부 모임, 셋째는 여러 보고와 논의이다. 비록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은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모든 순서와 회무는 불필요한 것이 없었다.

총회에 처음 참석하며 꽤나 젊은 편에 속하는 목사로서 총회에 헌의된 여러 안건들을 처리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째, 총회는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부터 대립되는 안건들을 처리하여 결의에 도달하는 과정들이 모두 배울 거리였다. 단지 운영의 묘만 배울만한 것이 아니라, 증경총회장분들을 비롯하여 선배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과연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지도 볼 수 있었다. 노회를 통해 헌의된 신학과 이단에 관련한 안건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하며,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이전부터 전해 받은 성경에 대한 믿음과 그 성경에 담긴 가치였다. 총대로 총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그것을 지키고자 했다.

둘째로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 노회원들의 인정과 지지를 통해 총대로 파송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에 봉사하는 명예를 가지고 책임 있게 총회에 참석해야 하겠다. 헌의된 안건들을 미리 살피고 생각을 정리하는 수고와 함께 마지막 날까지 성실히 참석하고, 의견을 진실하게 개진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앞서 밝힌 대로 총회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결의된 것들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금번 총회에서 결의된 것 중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에게는 혹여 큰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 문제요 주제들일 수도 있지만 그 결정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교회적 파장이 어떤 것인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에 대해서는 졸속으로 처리되지 않도록 좀 더 많은 토론이 벌어질 수 있길 바란다.

처음 참석한 총회는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많은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언제 다시 참석할지 모르기에 바라는 바를 밝히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필자는 우리 총회가 ‘젊은 총회’가 되었으면 한다. ‘젊다’는 말은 나이가 적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우리 총회의 총대들의 나이가 조금 더 적어지면 좋겠다.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총회가 내리는 결정의 무게를 생각하면 무례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나이가 많아질 ‘젊은이’들에게 배울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바람이다. 상기하였듯이 선배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배울 수 있도록 좀 더 젊은 총대들이 선출되길 바란다.

덧붙여 ‘젊은 총회’를 위해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면, 노회에서 연령대별로 총대를 선출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총대로서 함께 준비하고, 동행하면서 생각들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한편, ‘젊은 총회’란 좀 더 역동성 있는 총회가 되길 바라는 표현이다. 회의의 역동성이란 활발한 토론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2박3일의 짧은 일정에서 활발한 토론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겠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도입된 전자투표를 통해서 조금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회장 부회장 서기를 제외한 나머지 임원 선거에만 사용해 보았지만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더욱 확대한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확보될 것이고, 그 확보된 시간을 생산적인 토론에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