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나의 취미 생활 _ 강승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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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섬기며

 

나의 취미 생활

 

<강승대 목사 | 합포교회>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유산인
새벽기도회가 사라질 위기가 다가온다

새벽기도는 목회자 자신을 위해
해야 한다는 조언이 마음을 잡아 주었다

새벽예배가 길든 짧든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할 영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오늘도 역시 새벽에 일어났다. 이곳은 낯선 도시다. 여행을 왔거나, 세미나에 참석했거나, 기도원에 있을 때도 있다. 목회 27년차가 되어 그런지 전날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4시가 조금 지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알람과는 상관없다. 낯선 숙소에서 새벽에 일어나 어제 밤에 미리 인터넷 검색을 한 교회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차의 시동을 걸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교회에 새벽기도를 간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일이 없다. 그래서 어쩌다가 교회를 비울 때, 그 머무는 지역의 교회에 새벽기도 가는 것이 나의 취미가 되었다.

취미생활은 재미가 있어야 하듯이 낯선 교회 새벽기도 가는 재미가 몇 가지가 있다. 새벽마다 설교자로서 긴장하며 강대상에 올라가지 않고 회중석에 편안히 앉아 예배드리는 재미, 새벽 상큼한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하며 교회 가는 재미, 게다가 복장도 자유다. 잠을 확 깨우는 세수를 하지 않아도 좋다. 누가 새벽기도에 나오는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의 새벽기도는 나를 자유롭게 하고 또 은혜 받을 것을 기대하니 즐겁기까지 하다.

수십 년 동안 개척교회를 하면서 교회를 비울 때에는 다른 교회 새벽기도 탐방을 열심히 했다. 제주도에서부터 서쪽 끝자락에 있는 홍도의 작은 교회, 도시의 개척교회, 대도시 유명한 교회들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어떤 날에는 새벽에 두 곳의 교회를 탐방하기도 했다. 낯선 교회를 방문하면 일단 주보부터 챙기고 전도지와 각종 보고서를 챙긴다. 그리고 강대상의 인테리어와 걸려있는 현수막과 게시판도 유심히 살펴본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사진을 찍는다. 좋은 것을 활용하면 개척교회에 많은 도움이 된다.

탐방하는 교회는 발길 닿는 대로 아무 교회를 가지 않는다. 숙소 주변에서 부흥한다고 소문난 교회가 바로 그 대상이다. 미리 가는 지역에 소문난 교회의 정보를 찾아본다. 세미나에 참석할 때에는 주최하는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이 기본이다. 새벽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세미나에서 느낄 수 없는 그 교회의 영적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다른 교회 새벽기도회 탐방하는 나의 취미생활은 나의 목회를 되돌아보게 하며 여러 가지 유익을 주었다. 새벽기도회를 탐방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을 기록해 보았다.

먼저 새벽기도회가 사라지고 있다. 새벽기도회를 탐방해 보면 우리나라의 새벽기도회는 주로 연세 드신 성도님들이 참여한다. 뒷좌석에 앉아서 보면 대부분 하얀 머리의 성도님들이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 주일학교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목회자가 새벽기도회에 힘쓰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유산인 새벽기도회가 사라질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어느 날 대전에 머문 일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고 소문난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갔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큰 예배당 입구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 건물 안에서 한참동안 새벽예배 장소를 찾아 다녔다. 어디선가 희미한 찬송소리가 들려서 들어갔더니 작은 홀에 몇 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었다. 어디 새벽기도뿐이랴. 요즘 주일날 한번만 교회 오는 신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거 새벽기도회의 참여도는 주일 예배 참여자의 10%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5%미만인 것 같다. 중형교회의 새벽기도에 젊은이들이 몇 명 보인다면 대부분 부교역자들이었다.

이런 위기감은 새벽기도회를 드리지 않는 교회들도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교회문은 굳게 잠겨있어 새벽기도 하는 교회들을 찾아다닌 경험도 여러 번 있다. 대학가 주변의 교회나, 관광지 주변의 교회들, 상가건물 안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였을 때 그런 경우가 더욱 많다.

각 교회들마다 새벽기도회를 드리지 못할 교회의 사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 역시 20년 전에 상가에서 개척멤버들이 없이 교회를 시작했을 때에 제일 먼저 어려운 일이 새벽기도회였다. 20살 때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해서 새벽기도쯤이야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단둘이 새벽기도회를 6개월 정도 드리자 한계에 부딪혔다. ‘아무도 없는데 새벽기도회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 비가 오는 날 두 아들을 데리고 오지 못할 때, 또 아내의 몸이 아플 때, 18평의 상가 예배당에서 혼자서 새벽기도 할 때에 더욱 이런 생각으로 갈등이 생겼다.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먼저 개척을 하신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서 의논을 드렸다. 선배 목사님은 진지하게 들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사들이 빈 의자에 가득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준비하여 선포하세요. 새벽기도는 누구보다 목회자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이 한마디 조언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꽉 붙잡아 주었다. 그 이후 나와 아내를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고 또 가끔 의자에 천사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며 말씀을 증거했더니, 새벽기도회가 자리잡는 놀라운 선물을 하나님이 주셨다. 물론 혼자 목회할 때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새벽기도회를 인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목회자가 교회를 비울 때가 있는데 이때는 평신도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1993년 1월 19일에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제주에 도착하여 그 다음날 새벽에 호텔에서 가까운 교회에 새벽예배를 드리러 갔다. 설교자가 ‘목사님이 출타하셔서 집사인 제가 대신하여 설교를 한다.’고 광고했다. 집사님은 자신의 간증을 주로 설교했다. 사울에게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신 것처럼 세상음악을 좋아하여 젊은 날 술집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타락했던 자신을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구원해주신 그것을 눈물로 간증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집사님의 간증이 기억난다. 지금도 부교역자가 없는 나는 교회를 비울 때에는 집사님들을 중심으로 설교를 맡긴다. 설교를 맡은 분이 새벽기도회에 불참할까 봐 주설교자와 부설교자를 정해놓고 교회를 떠난다.

새벽기도회에 가서 회중석에 앉아보니 설교자가 보이게 되었다. 먼저 설교자의 외모가 보인다. 머리를 다듬지 않고 편안한 옷을 입고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가 있다. 규모가 있는 교회일수록 설교자의 외모가 단정하다. 대체적으로 설교자의 외모가 단정할 때에 새벽기도회의 분위기가 경건하다. 외모가 태도를 결정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손질하고 정장을 입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또 설교자가 설교를 얼마나 준비했는지 어느 정도 보인다. 설교준비를 많이 한 목회자는 금방 표시가 난다.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교회도 있다. 설교를 들으면서 설교자가 교인을 사랑하며 또 교인들이 설교자를 사랑하는 것을 새벽인데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새벽설교를 준비하지 않고 강대상에 올라간 내 자신을 돌아보니 부끄럽다. 그리고 새벽설교를 들으니 말의 속도가 느려서 듣기에 답답한 경우도 있었다. 또 2-30대의 젊은 목회자일수록 말이 빨라서 어떤 경우에는 집중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해 부모님을 모시고 거제도에 여행을 가서 하룻밤 머물렀다. 주변은 바닷가라 교회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겨우 어촌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했다. 4-5명 모인 새벽기도회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목사님이 로마서 강해를 하시는데 준비를 많이 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말을 느리게 설교하는 분은 처음 보았다. 이것을 계기로 나의 새벽설교 속도가 어떤지 녹음을 해서 들어 보기 시작했다.

새벽기도회를 참석해 보면 예배시간이 대체적으로 30분이다. 설교를 길게 하는 교회가 있고 짧게 하는 교회도 있다. 예배를 마친 후 성도들이 오랫동안 기도하는 교회가 있고, 또 어떤 교회는 새벽예배가 끝난 후 10분이 지나면 텅 비는 교회도 있다.

경기도 시골에서 크게 부흥한다는 교회의 소문을 듣고 항상 눈여겨 보았다. 어느 날 드디어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박할 기회가 되어 시골에 있는 교회를 어렵게 찾아갔다. 놀란 것은 새벽예배가 전부 10분 만에 마쳤다. 새벽마다 부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설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참석한 새벽기도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짧게 하는 교회였다. 설교가 5분 만에 끝나서 그런지 예배 후에 기도하는 성도들의 새벽 기도시간도 짧았다. 전도가 잘된다고 소문난 교회이니 다른 시간에 기도에 힘쓸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새벽기도회를 시간을 길게 하고 짧게 하는 것은 담임목회자가 결정할 일이나, 짧게 하더라도 새벽에 오랫동안 또 열심히 기도할 수 있는 영적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다.

기도할 수 있는 영적 분위기는 다른 교회 새벽기도회에 가서야 새벽설교 후에 틀어주는 기도음악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도를 도우려는 찬양음악이 오히려 기도를 방해하는 음악도 있었다. 기도음악이 너무 빠르거나 시끄럽게 드럼을 치는 경우, 또 가벼운 복음송은 오히려 기도를 방해한다. 그러나 은혜로운 기도음악은 마음이 편하게 되고 기도하기에 참 좋다. 다른 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해서 은혜로운 기도음악을 듣게 되어 곧 바로 녹음을 해서 새벽기도회에 사용하였다.

새벽기도회를 탐방하면서 감동을 주는 여러 교회들도 있었다. 제주도의 어느 시골 교회를 새벽에 찾아갔다. 마침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했다. 예배당 입구에는 새벽인데 안내하는 전도사님이 계셨다. 전도사님은 제일 뒷자리에 앉은 나에게 살짝 주보를 가져 다 주었다. 새벽인데도 예배실이 거의 찼다. 강대상에는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특별고난주간 새벽기도회’ 아무 생각 없이 참여한 그날 새벽 큰 은혜를 받았다. 눈물, 콧물이 나와서 손수건도 준비하지 못한 나는 기도하도록 불이 꺼진 후에야 양말 한쪽을 벗어서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주일오전예배처럼 새벽기도회를 준비하는 그 목회자는 얼마나 정성을 쏟았을까? ‘새벽기도회를 이렇게도 드릴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을 준 교회였다.

포항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포항에서 대표적인 교회를 새벽에 찾아갔다. 그런데 새벽예배에 대표기도가 있고, 한복과 양복을 입은 100여 명의 찬양대가 있었다. 뒤 좌석에 앉은 나는 그날이 부흥회 기간인줄 알았다. 세월이 지나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을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날 포항에 가서 참여한 새벽기도회를 화제 삼아 물었더니 날마다 그렇게 새벽예배를 드린다고 하셨다. 새벽기도회를 날마다 부흥회처럼 하기까지 얼마나 힘을 쏟았을까? 절로 선배목사님이 존경스럽게 보였다.

서울 안암동에 있는 합동측 교회는 새벽기도회가 끝나자마자 공동의 기도문을 프로젝트에 띄워서 합심하여 기도했다. 어떤 교회는 새벽 설교 전에 공동 기도문으로 합심기도 하는 교회도 있다. 공동의 기도제목을 눈으로 보면서 기도하니 기도가 힘이 있고 은혜가 되었다.

서귀포에 갔을 때였다. 역사가 오래된 교회에 새벽기도회에 일찍 가보았다. 예배당에는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미등이 켜져 있었고 잔잔한 음악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예배 전에 나와서 기도에 힘쓰고 있었다. 요즘 보기 드문 교회였다.

어느 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여해도 드리는 나의 기도는 동일하다.

“주여, 이 새벽 제단에 불을 던져 주옵소서. 성령의 불을 던져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