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습과 세속 _ 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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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습과 세속

 

<김수환 목사 _ 새사람교회>

 

소위 목회 세습은 개인이나 교회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더 많다

 

근래에 이르러 소위 목회자 세습 문제가 교단과 사회에 큰 논란이 되어 왔다. 얼마 전 서울의 모 교회에서는 소속교단에 엄연히 세속방지법이 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친이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합법적이라고 해석하여 전임목회자 자녀가 청빙된 일로 아직도 논쟁 중에 있다. 취임식 날 부친 목사는 아들 목사에게 “십자가와 고난을 물려준다.”고 하여 사람들을 의아하게 하더니, 어느 연로한 신학교수는 ‘예수님도 세습을 하였다.’고 하여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우선 세습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것은 북한 김씨 가문의 세습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세습의 동기와 배경이 인본주의적이라는 보편적 인식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 우상숭배나 살인죄와 같이 세습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다 보니 교단마다 개인마다 그 제도의 해석과 적용이 다 달라서 논란이 그치지 않고, 더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과 신앙에 조금만 진실해진다면 어렵지 않게 세습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소위 목회 세습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힘들고 어려운 수고의 긴 과정 없이 부모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물려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습은 자식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갸륵한 어버이의 마음과 수고의 과정 없이 부모가 이루어 놓은 목회의 기득권을 물려받으려는 안일한 자식의 마음이 맞물려 이루어진 합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그 동기와 목적이 얼마나 세속적인가 하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세속이란 술이나 담배, 그리고 방탕 하는 것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의 가치와 유행을 따라 살면 그게 바로 세속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 수고의 과정을 생략해 버린 채, 기득권의 혜택을 누리기를 원하는 태도는 누가 봐도 세속적인 것이지, 결코 경건함이나 영적인 동기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목회자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된다. 교회 안팎으로부터 유형무형의 지위와 명예도 따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세습을 받는 자녀는 목회 업적과 함께 전임 부친이 받았던 대우까지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만일 위와 같은 조건이 없다면, 어느 누가 세습하기를 원하겠으며, 세습한들 어느 누가 왈가왈부하겠는가? 그러기에 작은 교회는 세습을 하든 안하든 아무 관심이 없다. 도리어 세습하는 자녀가 있다면 칭찬하고 안쓰러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규모에 따라 물질적인 것을 비롯하여 사회적인 대우조건이 다르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습을 비성경적이며, 세속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제도 자체가 아니라, 세습을 하고자 하는 그 동기와 배경 때문이다.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드린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보이는 세상의 가치와 물질로 살지 않고, 하나님으로 살겠다는 거룩한 신앙고백인 것이다. 그러나 세습의 저변과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과 세상으로 살겠다는 세속적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만일, 술 담배를 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당장 노회 안에서 문제가 되고, 엄한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적인 풍습을 따르고, 성경에서 금한 일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세습은 주초 문제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세상적인 풍조와 유행을 따르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세습하는 일로 징계를 받는 일은 없다.

혹자 중에는 결코 세속적인 욕심에서가 아니라 전임 부친의 목회철학과 가치를 계승하고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기에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위와 같은 주장은 자신과 가족 등,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자기 합리화와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세습에 관한 문제는 교단과 교회에 마치 뜨거운 감자와 같고 휴화산과 같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부담스럽거니와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인화력을 갖고 있다. 세습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고전 10:23~24)는 말씀처럼 개인이나 교회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더 많다. 누구보다 인격의 수양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한 (물림 받는) 아들 목사에게 치명적인 독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 구실을 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 작금의 현실에, 우리 교단이 새로운 목회세습에 대한 대책방안의 실천으로, 바닥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