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총회교직자수양회 설교|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우리의 힘 _ 공현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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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 총회 교직자 수양회 5월 14일(화) 저녁 설교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우리의 힘 (느 8:1-12)

 

<공현식 목사 _ 진성교회>

 

예배에서 설교가 중요한 이유는 그 백성이 말씀을 깨달을 때에
회개와 위로와 기쁨이 임하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을 들으므로 주님을 알고 기뻐하게 되며
이 기쁨은 사라질 수 없는 내장된 기쁨이다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만이 삶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며
끝없는 기쁨과 복을 더해 준다

 

본문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10) 한다. 12절에는 회중들이 먹고 마시고 나누어 주고 크게 기뻐하였는데 왜 기뻐하였는지 그 이유가 나온다.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12).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 앞 문맥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지 13년째 되는 해, 느헤미야는 파사 정부의 높은 지위에서 일하고 있다. 왕의 술 관원으로(1:11), 왕의 신임을 받는 신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해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자백한다(1:4, 6, 7). 그는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간구하고(1:5),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1:9), 곧 하나님 말씀인 신명기의 약속에 근거하여 호소한다(신 30:1-4). 그는 몇 개월 동안 계속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어느 날 그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 포도주를 드렸는데 ‘왜 너의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라는 왕의 질문을 듣는다.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운 마음으로 왕께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지금까지 황폐하고 성읍이 불타서” 수심이 있다고 대답한다. 왕이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묻는다. 그때 느헤미야는 즉시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한 후에 대답한다. 그 성을 건축하기 위하여 한 동안 예루살렘에 다녀오도록 허락하여 줄 것과 왕의 조서와 관리들의 도움과 물질적 원조까지 요청한다.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왕은 놀랍게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수 있는 긴 휴가를 준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섭리를 본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2:8).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재건이 끝난다(6:15). 안과 밖의 공격이 있었지만(2:10, 19-20),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에 그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일을 듣고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6:16).

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2:9-6:19)과 하나는 백성들을 영적으로 재건하는 일(8-10장)이다. 전자는 느헤미야가 수산궁에 있는 동안 알게 되었던 시급한 일이었고, 후자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 알게 되어 에스라와 함께 사역했던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성벽 재건 공사가 끝났으니 이제는 봉헌식을 해야 하는데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재건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백성들을 영적으로 재건하는 일로 옮겨진다. 그 일의 지도적 역할은 에스라가 한다.

 

  1. 본문

모든 백성이 함께 모여 성경(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읽어 달라고 에스라에게 요청한다(8:2). 뭇 백성이 귀 기울여 그 율법책을 들었다(3). 낭독되는 율법을 듣기 위하여 몇 시간 동안이나(새벽부터 정오까지) 귀를 기울여 듣는다(8:3-5).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서 율법책을 읽고 말하였다(4). 그 이후 시대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관례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양식의 가르침이 계속되었다(눅 4:16-22),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의 목전에서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섰다(5).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다(6).

그렇게 찬양과 아멘과 경배로 시작된 말씀이 낭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석도 함께 이루어졌다(7).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한다(8).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은 것은 참 놀랍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해석이 중요하다. 하나님 말씀은 읽혀지고 선포되고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해석되고 가르쳐져야 한다. 해석된 말씀이 하나님 말씀 자체만큼의 권위를 갖지 않지만 이해되고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회 예배에서 설교가 중요한 이유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해설하여 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백성이 말씀을 깨달을 때에 회개와 위로와 기쁨이 임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며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고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게 된다(9-2). 백성들이 다 운다(9상).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슬퍼하거나 울거나 근심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한다(9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한다(10). 모든 백성이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알았기 때문이다(12).

 

  1. 뒷 문맥

본문에 이어 13-18절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친 결과 백성들은 그 말씀대로 행하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 초막절을 지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이튿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에스라에게 모여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초막에서 거하라고 명하신 것을 읽게 된다(13-15).

율법에 기록된 바대로 백성들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한다(16-17). 특히 여호수아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크게 기뻐한다(17하). 역사적 사실은 솔로몬 때(대하 7:8-8:13), 가까이는 스룹바벨 때(스 3:4-6)에 초막절이 행해졌다. 그러나 그 때의 행사들은 모세와 여호수아 때의 초막절 행사처럼 언약 갱신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모세는 언약갱신 의식을 마치고 제사장들에게 매 칠년 째 되는 해의 초막절에는 율법을 낭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게 하라고 명했다. 율법을 가르침으로써 자신들이 언약백성임을 기억하고 그 언약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여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도록 했다(신 31:9-13). 여기 초막절은 그 말씀대로 지켜진 것이다.

그래서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백성이 7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8일째 성회를 연다(18). 여호수아 때의 초막절처럼 율법을 낭독하고 낭독된 율법을 설명하여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여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며 기뻐하는 언약 갱신의 초막절이었던 것이다. 초막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하나님 백성인 끊을 수 없는 언약관계로 묶여 있음을 기뻐하며 자신들의 안전이 요새화된 성벽보다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기뻐한다.

 

  1.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을 기뻐함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 말씀이 채워질 때 회개와 하나님을 기뻐함이 있게 된다. 사람이 왜 기뻐하지 못하는가? 그 심령에 말씀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에 성경의 가르침이 사라지면 기쁨이 있을 수 없다.

예수님도 슬퍼하며 엠마오로 가고 있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부활한 나를 보라’ 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풀어주셨다. 구약 모든 성경이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두 제자는 자신들 속에서 마음에 뜨거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 뜨거움은 위로와 용기와 기쁨 등이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계속 선포되고 있는 교회는 복 있는 교회다.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교회는 힘 있는 교회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자 알고자 선포하고자 하는 열심으로 가득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이 풍성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부흥과 주를 기뻐함과 구원을 준다. 인자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시 85:6-8절.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주의 말씀을 들으므로 인자하신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을 기뻐하게 된다. 이 기쁨은 세상적인 기쁨과 다르다. 세상이 무너져도 사라질 수 없는 우리 안에 내장된 기쁨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기쁨이다.

그 기쁨을 시편은 이렇게 표현한다.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4:6,7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119:111“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시 119: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말씀을 증거하시는 주님이 나의 즐거움입니다.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니 나는 말씀하시는 주님을 즐거워합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고난 중에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롬 5:1-3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은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며 그 하나님께서 그 환난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시키고 만들어 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지하게 한다.

하박국 선지자도 보통 사람들처럼 그 나라가 겪게 될 고통 때문에 괴로워했다(합 3:16-18). 그런데도 모든 것이 다 없어도 나는 여전히 주님을 즐거워하겠다고 한다. 세속주의는 나의 기쁨이 목적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우리의 기쁨은 주님뿐이다고 말한다. 우리의 위로도 주님 한 분뿐이다. 그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나누는 기쁨이 있다. 그것은 주님을 아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복이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어지는 기쁨이다.

살전 5:16-17. “항상 (주님을) 기뻐하라. 범사에 (주님께) 감사하라. 쉬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 요리문답과 하나님을 즐거워함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과 그 답을 하나로 묶어서 볼 때,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려면 먼저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온다(롬 11:36) 이 “만물”속에 모든 권세, 능력, 선한 것, 아름다운 것, 지혜로운 것, 가치있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별히 진정한 기쁨과 힘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살아야 하며 그것을 위하여 태어났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이것이 또한 사람의 기쁨이요 복이요 영광이며 인생의 목적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존재의 이유는 인간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왜?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을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중심보다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인간의 유일한 생각과 바람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타락 후 인간은 하나님보다 자신과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뿐이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계신다. 예수 안에 사는 신자들은 모든 시간과 모든 활동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으로 하려는 자들이다.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만이 삶의 깊이와 넓이를 더욱 더하며 끝없는 기쁨과 복을 더해 준다. 요리문답의 순서처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가를 알려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인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 나의 주인이신 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다. 그래서 나는 큰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주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의미도 된다.”(렘 10:16, 박윤선 주석).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첫 기도가 하나님을“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이다. 이것처럼 큰 기쁨은 없다. 하나님을 우리(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교회는 큰 기쁨 가운데 주님께 기도할 수 있다.

 

결론 : 교회의 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한다(8:10). 교회의 힘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가 교회의 힘이시다(시 18:1). 그 주님을 기뻐하는 교회가 힘 있는 교회다. 회개와 용서가 있는 교회가 힘 있는 교회다. 하나님 말씀이 흥왕할 때 교회는 힘이 있었고 부흥과 개혁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