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지켜야 할 주일성수 신앙
< 김명혁 목사 ·한복협대표회장 >
기독교의 역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칩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을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구원함을 받은 여러분들과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 성수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앞으로 하늘에서는 구제 봉사 전도 선교 등 중요한 일들은 모두 사라지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영원토록 계속된다고 사도 요한이 증언했습니다(계 5:13; 7:12). 이것이 하늘에서 드려지는 영원한 안식일 예배 또는 영원한 주일 예배의 모습입니다.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만 11살 때 고향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였습니다. 이제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 성수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주일성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구약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분명하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출 20:8; 31:14; 35:2; 민15:35).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복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2:3).
안식일 성수의 명령은 구약시대에 그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을 준비하는 예표였습니다. 사실 구약의 거의 모든 제도는 신약 시대를 준비하는 예표들이었습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던 것은 십자가의 제사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신약의 교회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구약 시대에 잠깐 동안 주어진 제도가 아니라 대대로 영원히 지킬 제도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출 31:13).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완성자이시고 주인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그런데 주일성수를 무시하고 등한시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구약의 명령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주 5일 근무제도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 일요일 대신 금요일 오후나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도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를 알지 못하는 무식하고 무식한 사람들이고 무례하고 무례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를 거역하는 반역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들은 신약의 안식 후 첫 날인 주일날들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안식 후 첫 날인 주일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 다음 둘째 주일날 제자들에게 또 나타나셨습니다(마 28:1; 28:9; 요 20:19; 20:26).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실에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창조와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날을 새로운 안식과 예배의 날로 제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의심쟁이 도마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주일날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일날이었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찌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찌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이렇게 볼 때 구약과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복을 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복을 주신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하늘의 구원과 안식을 가리키는 예표입니다.
2. 주일성수에 대한 교회사의 가르침
기독교의 역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칩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모두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을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2세기경의 문서인 디다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주일은 특별한 날이므로 함께 모여 죄를 고백하고 떡을 떼며 감사를 드릴 것이다.”
이그나시우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는 그 날에 우리들의 생명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2세기의 변증가 져스틴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에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는데 이 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이 읽혀졌다. 일요일은 하나님이 어둠을 변케 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신 첫째 날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는 휴식할 것을 명했습니다. “모든 법관들과 도시의 시민들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영예스러운 날인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할 것이니라.”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년에 제정)가 주일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조금 길지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시간을 따로 구별하여 바쳐야 한다는 것은 자연 법칙에 속하는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가운데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묶는 적극적이고 영속적인 도덕적 계명을 주시므로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제정하셨다. 이 날이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까지는 일 주일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로부터는 일 주일의 첫날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르는데 이 날은 세상 끝날 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지키도록 된 것이다. 이 날에는 그들의 세속적 직업과 오락에 대한 일이나 말이나 생각으로부터 온 종일 쉬어야 할 뿐 아니라 공적 내지 사적 예배행사와 자선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우리 한국 장로교회가 따르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예배모범은 주일 성수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기념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니 미리 육신의 모든 사업을 정돈하고 속히 준비하여 성경에 가르친 대로 그 날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없게 하라. 이 날은 주일인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회집으로나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종일토록 거룩히 안식하고 위급한 일밖에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지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여기 ‘종일토록’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는데 요사이는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하고 오후 예배로 대치하는 교회들이 많은데 이것은 ‘종일토록’ 안식일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위배하는 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주일도 인간 중심적으로 가볍게 지키고 있습니다. 1920년대 한국교회에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김익두 목사님은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요 거룩한 날이 되어서 구약시대에는 일하는 사람은 다 때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지만 죄는 죄입니다.”
저는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사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즉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현대적 유행에 영합하며 주일 성수를 무시하는 목사들은 무서운 죄를 범하는 죄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3. 주일성수에 대한 간증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성수하기 위해서 고향과 가정을 떠나 만 11살 때 38선을 넘어서 혼자서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만 11살 때 하나님을 바로 믿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단 한 가지 이유와 목적 때문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를 북에 남겨두고, 고향과 아비 집을 떠나 혼자서 남쪽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주일날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수 없는 비판과 훈계와 처벌을 받았습니다. 월요일마다 벌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들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저는 한 번도 주일을 범한 일이 없었습니다. 결국 평양 제5인민학교를 5학년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중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38선을 넘어 혼자서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주일을 바로 지키기 위해서 남한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러면 가라고 하셨습니다.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그러면 너만이라도 가서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했고 나 없이는 못 산다고 하시면서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도 그러면 가라고 마음으로 우시면서 말씀했습니다.
1948년 8월 캄캄한 어느 날 밤 38선을 넘을 때 우리는 모두 국경을 경비하는 인민군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위협했습니다. 같이 오던 어른들은 모두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남쪽으로 가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저 혼자였는데 저는 서지 않고 그대로 남쪽을 향해서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언덕을 한참 달리다가 파 밭을 지나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며 3,40분 동안 달려서 남쪽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허물과 잘못을 모두 아시면서도 저에게 많은 복을 주신 이유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고향과 가족을 떠난 저의 주일 성수 신앙과 또 하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 저의 아버지의 순교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 마치는 말
주일 성수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 성수의 신앙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선배들이 가르치고 물려준 신앙의 유산입니다. 주일 성수의 신앙은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새벽 기도와 주일 예배대신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것은 세속화와 타락의 증거입니다. 주일 대신 토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고 귀신들린 사람들입니다.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저녁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절반만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속아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주일 성수의 특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주일을 범하므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 성수의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죽을 때까지 귀하게 지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