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그늘로 살아가기에”_고은주 사모

0
6

“교회의 그늘로 살아가기에”

< 고은주 사모 _ 동서울평화교회 >

“어머~~~~~어머~~~어머~~호호호호.”
“사모니임~~^^ 반가워요. 이게 얼마만이예요?”
“아요~~ㅎㅎ 더 이뽀지셨어요.” 
우리는 이렇게 손을 맞잡자 마자 오작교의 연인들처럼 마음 탁 터놓고 반기
며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르고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친형제 자매를 만난들 이리 반가울까? 같은 일을 하시는 남편과 살고, 같은 
길을 가고 같은 처지에 있어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
었다. 
‘어떻게 지냈어요?’라고 묻는 말 한마디에도 그동안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만 같고, 형님 같은 엄마 같은 대선배 사모님을 뵈면 어깨 토닥
이시는 그 손길만으로도 온 마음이 녹아내리며 금방이라도 뜻모를 설움에 주
르륵 눈물이 흘러 내릴것만 같다. 
21년전 아직 부모님의 그늘에 있어도 될 나이에 전도사의 아내가 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시작한 개척에 ‘사모님’이라는 호
칭에 몸 둘바를 모르
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와는 또 다른 부담감과 송구함으로 지금도 ‘사모
님’이라는 자리는 내게 여전히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몇십 년만의 폭설이 내리던 그날, 펑펑내리는 눈이 주님의 복된 선물이려니 
하면서 21년 만에 주님이 주신 새 교회당으로 이사를 하고, 2주간 꼬박 교회
의 이런 저런 일들로 지치고 힘들던 내게 사모세미나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눈에 보이는 이런 저런 일들로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손의 집’ 
사모님으로부터 사모세미나를 참석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모가 공식적으
로 외박과 출타가 정당한, 내게는 유일한 기회를 만난 것이다. 친정 나들이
도, 시댁 나들이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나들이는 더더욱 왠지 죄송한 마음으
로 그렇게 교회에만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기에 전체적인 교회 수
련회 외에는 4식구만의 여행 기억조차 전무한 그런 시절들을 보내왔다. 
‘세월이 지나면 달라질까? 나이가 들면 달라지겠지!’ 했지만 교회는 언제
나 나가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 등등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영적 전
쟁터이기에 잘되면 하나님의 은혜요 잘못되면 나의 부덕의 소
치로 알고 가
슴 졸이며 살아왔다. 교회의 그늘이 되고 목사님의 그늘이 되어 살아가는 것
이 사모의 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고충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모들이 사모세미나에 
오면 우리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함께 함으로 서로
를 격려하고 회복시킨다. 지치고 피곤한 몸의 휴식처로 주어진 기회라 생각
했기에 비록 운영진 목사님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세우신 일정표의 모든 순서
를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교회와 더 무서운 남편 목사님과 가정의 잡무로부
터 해방되어 쉼과 여유를 만끽하는 최선과 최고의 자리였다. 
없으면 큰일이고 있어도 빛도 나지 않는 사모들을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이 
전무한 교회에서 전천후로 모든 일을 감당하며 슈퍼 사모로 살아가는 참으
로 대단한 우리들이지 않은가.
스스로를 격려하며 위로하며 ‘주님만이 나를 아십니다’ 하며 유일하신 그
분만을 의지하고 내가 처한 형편이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주님의 손길과 개
입하심을 기대하며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는 주님…!! 
모든 이들의 목사님이지만 사모의 목사님은 아닌 교회에서 목자도 양도 아
닌 존재
감으로 사모를 원하는 교회에서 남편을 돕는 배필로 부르심을 받았으
나 모든 성도를 돕는 자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모로 존재하며, 가정에서
도 심지어 잠자는 시간까지도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로 가득 채워진 목사
님을 하늘같은 존재로 섬기며 때로는 어린 자녀를 보는 듯한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게 되는 우리 사모들과 함께 하는 것이 위로였고, 그 하늘같은 목사님
들의 섬김을 받으며 지낸 3박 4일은 감동의 시간이었다. 
귀한 찬양단과 함께 한 찬양과 기도의 시간들은 우리들만의 파라다이스에 
온 양 너무 행복하기만 했다.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