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의미(눅 2:8-14)_오영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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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의미(눅 2:8-14) 

< 오영원 목사, 산들교회 >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영광을 계시하는 예언된 메시야적 
성취의 순간이다. 이에 대해 누가는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고 선포하고 있다.

1. 베들레헴 출생의 의미

구약에서는 예루살렘이 “다윗의 도성”(삼하 5:7, 9)이었다. 베들레헴은 다
윗의 출생지였다(삼상 16장; 17:12; 20:6).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베
들레헴이 바로 다윗의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인 메시야적 성취와 결부되
어 있다는 점이다(눅 1:32). 
다윗이 베들레헴 출신의 목자였다는 점에서 목자들의 등장은 매우 적절한 것
이었다(삼상 16:17; 17:15). 목자들을 둘러싸고 있던 어두움은 하나님의 영
광의 광채에 의해 물러갔고(눅 1:78, 79; 출 16:7, 10), 목자들의 곁에는 주
의 사자가 서 있었다. 
목자들의 체험이 부분적으로 수태고지(눅 1:5-25, 26-38)들
을 반영하지만, 
현재적 지향성(눅 2:11), 영광의 나타남(눅 2:9), 천사들의 합창(눅 
2:13,14)에 의해서 한층 강화되어 나타난다. 
주의 사자가 좋은 소식과 기쁨을 전했다는 것은 시편 및 이사야서의 예언들
과 언어를 반영하고 있다(사 61:1; 9:3). 천사가 말한 내용은 어떤 개인이
나 집단을 위한 축복이 아니라 온 민족을 위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셨
다. 
이제 “오늘 날” 아기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 구원의 계획은 언약으로부
터 실제적인 구원의 성취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때 베들레헴에 태어난 아기
는 메시야 바로 그분이다(사 9:3,9). 

2. 선포된 메시야적 평화

천사들의 수태고지가 있은 후 하나님을 수행하는 천상의 존재들이 주의 사자
와 합류하여 그 사자가 말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로 인하여 
하늘에서는 영광이 되었다(사 48:11; 43:7 등).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서 그 택하신 백성에게 미치는 메시야적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세우
신 것이다. 
여기에서 “평화”는 철저한 구약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전쟁이 없
고, 인간의 내면적 안녕을 넘어 복리와 
번영, 안정과 조화를 기반으로 하는 
전체적 사회질서 및 세상 만물의 질서의 회복을 말한다. 
이 구약적 평화(사 9:5, 6; 52:7)는 메시야의 도래와 함께 이루어진다. 이 
“평화”는 구약의 예언자들의 예언의 성취로 메시야이신 아기 예수님의 베
들레헴 탄생하심으로부터 이루어졌던 것이다. 
영생하는 구원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평화가 곧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나눔, 섬김, 희생에 있다.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과 인간들과
의 관계, 인간들과 인간들, 인간들과 자연과의 관계의 순수한 원래상태로 회
복할 수 없으며 보존할 수 없다.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나라까지도 
그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평화, 평안이 있을 수 없다. 
이 평화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곧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고 기쁨
으로 믿음에 이르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이들만이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의미를 깨닫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 

3. 예언된 성육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세상 속에 오신 이 사건은 갑자기 
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이미 예정 가운데 작정하고 예비하
r
신 영원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창 3:15). 
이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구약성경에 계속하여 인간들에
게 계시하고 예언하신 그 말씀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사야
의 예언은 너무도 유명한 말씀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오시기 700
년 전에 정확하게 예언하였다. 
그 예언은 바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
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는 말씀이다.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이름
은 예수께서 이 세상으로 오시기 전에 가지셨던 영광의 이름들이다. 이날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간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마치는 말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예수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로 낮고 낮은 
자리로 오셨다. 하나님의 아드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이다. 이 아기 예
수를 가리켜 누가는 표적이라고 증언한다(눅 2:12). 
그 표적은 바
로 아기 예수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기뻐하심이 되
고, 그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는 것”(눅 2:14)을 가리킨
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표적” 곧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 즉 성육신의 의미를 깨닫고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라야 비
로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며 기쁨이 있고, 평화를 이루며 누릴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삶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