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을 그리며_김추성 교수

0
19

우리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을 그리며

김추성 교수_합동신학대학원 신약학, 정암신학연구소 소장

“박 목사님의 정신 충실히 잇고 있는가 되돌아 볼 때”

필자가 박윤선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총신대학 2학년 시절이었다. 필자는 
당시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던 때라 박 목사님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고 그
저 소문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박 목사님 오신 후 달라진 총신대학교 분위기

그런데 박 목사님이 총신에 오시고 나서 학교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
작했다. 조용하면서도 강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채플의 분위
기가 바뀌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이 은혜 받으려고 예배시간보다 일찍 
참석해서 기도하고 찬송하였다. 특히 박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날은 마치 부
흥회와 같은 은혜를 사모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직원들도 싱글벙글 웃으며 
박 목사님과 사진을 찍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었
다. 
박 목사님이 설교하시기 전에 종종 눈물을 닦으시던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
다.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설교는 내 마음에 깊은 감동
을 주었다. 학교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드린 채플에서는 11시부터 시작
된 예배가 오후 2-3시까지 회개 기도가 끊이지 않고 지속된 적도 있었다. 
그 분의 천둥 같은 메시지가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다: 
“기도에 생명을 바치라.” “죽기 내기로 공부하라.” “온 세상 사람이 성
경을 안 믿는다 해도 나는 성경을 믿겠다. 내가 성경을 안 믿는다 해도 나
는 성경을 믿겠다.” “네 손에 성경이 있지 않은가? 성경이 바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가장 큰 영향 끼치신 박 목사님

내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위인 중의 한 분이 바로 박윤선 목사님이
다. 내가 신약을 전공으로 택한 것도 박 목사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필자의 결혼식 하루 전날, 박 목사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래서 장인어른
과 함께 박 목사님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뵙고자 합동신학교를 방문하였
다. 그 분의 장례 모습은 정말로 천국 환송식과 같았다. 이 땅에서 달려갈 

길 다 달리고 생명을 다 바쳐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힘쓰고 승리하신 
위대한 삶을 보는 것 같았다. 
세월은 흘러 흘러 이제 부족한 사람이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교수로 섬
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더욱이 정암신학연구소장으
로 섬길 기회를 주셨다. 
정암신학연구소장을 맡으면서 나에게 계속 무거운 짐으로 남는 것이 있다. 
왜 우리학교에는 박윤선 목사님의 기념관 하나 없는가이다. 많은 분들이 그
렇게 박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기념관 하나 없는 것이 나
에게는 참으로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박 목사님은 우리 한국교회의 자랑이요, 우리 교단과 학교의 가장 귀한 유산
이 아닌가? 한 인간을 단순히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 한 세대가 지나가고 다른 세대가 오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
문이다. 

박 목사님 기념관 없는 것 안타까워

생전의 박 목사님과 함께 계셨던 분들은 안타깝게도 점점 눈에 띄지 않는
다. 한편 박 목사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학교에 오고 
있다. 이 새로운 세대에게 무엇인가 손으로 만져지고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남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필자 역시 틈틈이 학생들에게 제한된 경험이나마 내가 겪은 박 목사님에 대
해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저들에게 무언가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할 필
요가 있다. 
지난 여름, 여수에서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기념관을 방
문하고 병원들을 둘러보며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손 목사님의 자필 설
교, 애용하시던 성경, 쓰시던 유물들을 보며 그 분의 삶의 자취가 느껴져 더
욱 애착이 가게 되었다. 손 목사님이 아들을 잃고 쓴 아홉 가지 감사는 눈시
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렇다. 이제 우리 합신인은 더 늦기 전에 박 목사님의 체취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생전의 유물과 유품들을 모으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이루신 일
들을 기념하는 일을 속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로운 세대들에게와 
우리 학교를 사랑하며 방문하는 많은 성도들에게 박 목사님께서 그렇게 심혈
을 기울이고 가르치셨던 개혁주의 신학과 삶을 일깨우는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합신은 개혁주의 신학의 산실 되어야

마지막으로 우리는 박윤선 목사님을 기리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삶을 실천하며 그 정신을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 계승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
이다. 우리 가운데 제 2, 제 3의 박윤선 목사님이 나오기를 소원한다. 
지난해 3월 필자는 합신에 부임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제목이 있다. 
박윤선 목사님께 주셨던 영감의 갑절을 주시옵소서. 왜냐하면 무엇보다 두려
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하늘 같이 우러러 보던 박 목사님과 여러 교수님들이 계시던 학
교, 이제 그 분들은 하나 둘씩 학교를 떠나가고 이곳에 더 이상 계시지 않
기 때문이다. 이제는 후대 신학자들이 그 정신을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그 분들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
고 지금도 역시 늘 이 기도를 감히 드린다. “ 박 목사님께 주셨던 영감의 
갑절을 주옵소서. 지금은 더 큰 능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 기도를 우리가 더 많이 드렸으면 좋겠다. 후배 신학자들은 앞으로 
박 목사님의 주석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성경신학적으로 건전하고 학문적으
로 우수하며 새로운 세대의 목회자들에게 유익한 주석을 계속 많이 저술했으
면 좋겠다. 박 목사님의 업적을 
칭송하면서 박 목사님의 삶의 모습과는 유리
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
며 유명해 지는 것과 세력확장하기를 거부하는 개혁의 정신이 계속 이어졌으
면 좋겠다. 

개혁의 정신 계속 계승해 나가야

신학자는 목회자들을 존경하며 목회자들은 신학자와 모교를 아끼는 아름다
운 풍토가 계속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후대 칼빈주의자들이 얼
마나 칼빈에게 충실했는지 우리가 의문을 던질 수 있듯이 우리 교단과 학교
는 박 목사님의 신학 사상과 신앙을 얼마나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지 계속
해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