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20주기 기고문| 부친 정암을 기억하며… 합신과 교단의 관계_박성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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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20주기 기고문| 부친 정암을 기억하며…

합신과 교단의 관계 

박성은 집사/ 박성은신경내과 원장,미국 오랜지카운티 거주

“합신의 사명인 바른 복음 전하는 교단으로 남아야”

“정예화된 교역자 양성만이 합신존재 이유로 남아야”

얼마 전 인터넷을 뒤지다가 합신이 “신학교 랭킹에서 여러 국내 유수한 신
학교들을 제치고 가장 우수한 신학교로 꼽힌다”는 글을 접한 적이 있습니
다. 수 년 전에도 적지 않는 사람들이 “합신이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혹은 “한국 교계에서 합신에 거는 기대가 상당히 크
다”라고 하는 등 몇 몇 좋은 평판을 듣고 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런 말이 구석에서라도 나온다는 것은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되었
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은 겸손하게 무릎 꿇고 기도하며 진실하게 노력하는 자들을 높
이 들어 쓰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계속해서 
겸손하고 
더욱 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
고 그 동안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신 교수님들과 졸업생 목사님들, 그리고 묵
묵히 협조하신 이사님들을 비롯한 교단의 지도급 목사님들의 노고도 생각하
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결코 기독교 국가는 아니었지만 그간 우리는 생각하길 기독교의 영향
력이 상당한 수준일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오르내리는 
3.1운동 주동 33인의 반을 넘는 기독교인들,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한 보수
적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등 기념비적 과거를 구태여 들추지 않아도 그 동안
의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세계에서 제일 많은 수의 신학생을 가진 신학교
들이 있다는 사실이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보내는 선교국가라는 엄청
난 사실만으로도 여러 가지 자성과 비판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
에 적지 않은 뿌듯함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해 일어났던 아프간 사태와 그 외의 근년에 일어났던 몇 가지 
큰 사건들을 접하면서 뼈아프게 느끼는 사실은 한국이 그동안 우리가 알고 
기대하고 알고 있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 윤리적
인 
관점에서도 한국이라는 땅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서 기독교의 영향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윤리적 수준은 여러 권위 있는 검토에 따
르면 불신 동남아 나라들보다 특별히 나은 것도 아니며, 낯뜨거울 정도로 부
정부패에 연루되어 나오는 소위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허울을 붙인 교
회 직분자들의 수는 이미 도를 넘어 국민들의 대다수가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을 정도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개신교는 그 신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특
히 미래를 대변하는 한국 젊은 층들이 전반적으로 반기독교적이며, 무척이
나 냉소적임을 감지합니다. 교회에 대한 영적, 윤리적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총체적 위기라고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바로 코앞에 다가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복음을 외치는 강대상의 숫자를 늘린다고 복음전파가 제대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직자의 수가 많다고 한나라의 복음이 미치는 영향력이 클 것이
라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숫자에만 치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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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신학생 숫자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에 교단의 하수인 같았던 신학교가 한 일은 부실 교육을 통해서라도 경
쟁적으로 많은 교직자들을 배출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을 지금 우리가 그 
열매를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20년 전 작고하신 정암이 목에 피가 
맺히도록 ‘정예 교육을 지향하는 목회자 교육’을 가슴이 아릴 정도로 생각
나게 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엘리트 교육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
다. 
‘정예 교육’이라 말할 때 그것은 세상적인 기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
다. 종합적으로 검토하되 그 사람의 인격적 자질과 사명감까지 포함시켜야합
니다. 그렇지 않고 학연과 지연 등에 의해서 쉽게 입학을 시키고 쉽게 졸업
시키면 기독교는 결국 세상의 조롱거리나 될 뿐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영광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열정이 무조건 목회의 자
질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으
나 은사나 지적 준비와 인격적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런 분은 목사가 
될 것이 아니라 전도인으로 양성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될 것입니
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친이신 고 박윤선 목사님이 소천하시기 약 4년 전, 한국
에 나가서 가깝게 모시고 있었습니다. 합동신학교를 위해 안타까이 애쓰시
는 모습을 옆에서 4년 동안 지켜보아 왔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합동신학
교는 그 당시 한국 교회를 향해서 회개와 개혁을 외치고 새로워지게 하려는 
간절한 개혁의 소원 때문에 설립된 학교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합신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좁은 의미에서 이렇다 할 교리적 차이는 진정 없었으나 ‘분열주의 운동’이
라는 부정적인 질책을 받아 가면서도 복음의 영광을 위하여 어려운 길을 택
한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대량 생산보다는 정예 부대 양성”이 박윤선 목
사님의 교육관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졸업식 때 학생들과 일일이 악수
하면서 “하나가 천을 당하고, 만을 당하시오” 하던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처럼 “대량 생산보다는 정예 부대 양성”의 교육만이 한국 교회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과감하게 무감독 시험을 도입하는 등 추락한 교역
자들의 윤리성에 피나는 자기 개혁의 길을 추구했고, “공부하다가 죽자” 
“먼저 내
가 개혁되자”는 모토 아닌 모토로 머리 싸매고 노력하는 학생들
을 당시 부친 곁에서 보았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영성을 위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던 자기 성찰과 회
개를 동반한 ‘기도 생활’ 등등 정말 옆에서 볼 때도 각고의 노력이요 형극
의 길이었습니다. 고 박윤선 목사는 처음 기숙사를 지으려고 기획할 때, 서
울에서 한참 가야 했던 학교의 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처음 1년은 
무조건 기숙사에 거하면서 학생들이 기도 운동에 틀이 잡히기를 바라셨습니
다. 
그 외에도 물량 주의와, 사도성을 떠난 교회의 양태들(물론 목사가 사도직
의 연장선상에 있지 아니합니다만), 잘못된 교직주의와 종교적 권위주의, 신
학교 학사 행정의 교단의 불법적 간여와 양심과 학문의 자유를 억누름 등등 
여러 가지 잘못들을 시정하고 고쳐보려는 노력이 있어왔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풀타임(full-time) 사역자의 양
산이나 교회 숫자의 증가가 결단코 아닙니다. 지금 한국이 아니 세계가 필요
로 하는 것은 질적으로 ‘딱 부러지게’ 탁월한 신학교요, ‘딱 부러지게’ 
성실하고 영성이 충만한 교역자
들이요, 확실하게 불신 세계가 두려워하는 교
회입니다. 있으나 마나 한 신학교가 아니란 것이지요. 

신학교는 일반 전도자 양성소가 아니라고 정암과 네 분 교수들은 믿었기에, 
귀한 친구들을 잃으면서까지, 아직 다수주의로 행하는 다른 신학교들과 연합
을 보류했던 것이지요. 신학교는 교회의 리더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와 교회에서 존경하고 영성이 충만한 교역자가 뼈저
리게 필요한 것입니다. 
고 박윤선 목사님이 그 듣기도 거북한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항상 부르짖었
던 “양보다 질”, “인간적 지혜보다, 기도와 자기 개혁의 방법”, “인본
주의가 아닌 신본주의적 양심에 근거한 학사 행정”, “다수보다는 진리” 
등의 어귀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약에 교단이 신학교를 장악하게 되면 한국적 상황에서 양심적이고 합리적
인 학사 행정은 시간 문제이지 물 건너 간 것입니다. 여러 가지 학연, 혈
연, 지연 등을 아직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네의 상황은, 발생하는 정치
적 세력 행사 때문에 공정한 학사 행정은 쉽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하고 심지어는 교회의 리더가 된 
후에도 우리 속의 연약함은 죽
을 때까지 지니고 있을 찐데, 우리 주변에 덫을 많이 깔아 놓으면 놓을수록 
쉽게 걸려 넘어질 것이며,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도 학연과 지연에 걸려 넘
어지지 않을 사람 어디 있습니까? 
‘복음 전파의 편의’라는 허울을 내걸고,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일들과 깨끗
지 못한 일들을 자행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지금 교회를 맡으신 목사
님들은 아니 그리하실지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냉철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지요. 첫
째로 과거에 신학교가 교단아래 들어가서 얼마만큼의 복음에의 유익을 얻었
는지 혹은 얼마만큼 손해를 보았는지 고찰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교단이 직영함으로 결코 좌경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신학교를 보면, 1900년대 초기에 교단 때문
에 좌경된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나와서, 새 교단을 세웠지만(정통장로교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그 새 교단은 인준만 하고 정치적으로는 독
립된 신학교를 세웠고 아직 그 학교는 좌경되지 않았
습니다. 

사실 지금, 교단 직영으로 되어있는 미시간(michigan)의 칼빈(Calvin)신학교
는, 경제적으로는 전학생 장학금 등 많은 혜택을 받지만, 현재 교리적으로 
좌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칼빈신학교는 현재 성경 무오설에 조건을 내걸
고 있고(limited inerrancy), 교단은 총회에서 동성연애자들을 교직자로 세
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을 해마다 토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의 장로교
도 지난날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정한 주체가 평양 신학교가 아니고 총회였음
을 상기할 필요도 있습니다. 지난날 합신이 총신에서 나올 때를 기억해야 됩
니다. 

둘째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합신이 교단의 정치적 영향을 적게 받고 지나
면서 손해 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답은 이렇습니다. 지금 
이 만큼 합신이 발전해 나왔는데(교만은 금물입니다만), 그 동안 교단 밑에 
소속되지 않았던 사실이 신학교 발전과 교단 발전에 어떤 커다란 방해 요소
였는지 궁금합니다. 그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합신은 과거에 교권주의자들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학교에서 뛰쳐나와 새로 
시작하기로 하고 세운 학교입니다. 비양심적 학사운영
이 아니고, 물량주의
와 잘못된 권위주의가 좌지우지하여 온갖 부실교육으로 치닫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나와 세운 학교입니다. 
존경받지 못하는 자칭 지도자들에 의해 파선되는 학교에서 뛰쳐나온 교수들
과 학생들이 눈물로 세운 학교입니다. 신학교를 교단이 장악함으로 다시 그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겠습니까? 교단의 힘과 도움이 신학교 발전에 꼭 필요
한 것입니다만, 거기에는 일정한 거리와 독립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
다. 

이제까지 걸어온 합신의 행보와 그 열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
행하고 있는 서구의 신학교들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돌아보면서, 많은 기도
와 신중을 기한 결정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사실, 교리의 차이가 아닌 다음에야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나와서 하고 많
은 신학교 중 하나를 세워 고생하는 것입니까? 분열주의란 욕을 먹어가며 출
발한 직접적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오로지 처음 뜻을 지켜야 합신
의 개혁주의 신학에로의 진면목을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합신의 특이성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지금 시간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상 교회는 아직 온
전치 못하고 구원 얻은 우리 인간들도 아
직 부패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만일 교단 속에 신학교가 직속되면 
또 다시 정치적 문어발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되고, 신학교도 하나의 세력
의 장으로 형성되어 그것을 감투나 세력을 위한 잘못된 정치(politicks, 정
치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부패한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서로의 친분 관계, 학연관계, 지연관계 등을 
이유로 여러 가지 세력이 형성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학사행정 (academic affair)은 교수들과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고, 결
코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역자가 실력 없으면 거짓되게 된다”고 목에 피가 맺히도록 외로이 외치
던 부친 정암을 기억합니다. 정말이지, 신학교는 전도자 양성소가 아니고 전
도자들을 이끌 리더들을 키우는 곳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카나다의 리젼
트 칼리지(Regent College)나 미국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트리니티
(Trinity), 골든 칸웰(Golden Conwell) 같은 복음적이면서 학적으로도 수준 
높고, 그 연구 실적과 업적이 서
양제국의 학교들과 견줄 수 있는 선지학교
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가 그 동안의 양적 성장이 멎고, 이제 질적인 향상과 높
은 윤리성과 영성을 가진 리더십(leadership)을 요구하는 결정적인 시점에 
다달았다고 봅니다. 이제 한국에 세계 각국에서 오는 신학자들을 유치하고 
양성하고, 종말론적 시대를 복음화하기 위한 세계 선교의 신학적 기초를 세
워나가는 일을 맡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학교가 꼭 어떤 한 교단에 직속되어 지시를 받거나 그 영향
권 아래서 우지 좌지 되는 것보다 교단은 좀 더 큰 안목을 가지고 신학교의 
후원자 역할을 하며, 졸업생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다면 하나님
이 더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물론 중간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해서 반대하거나 다른 길로 나가야 했던 분
들도 없지 않아서 부친께서 가슴 아파하는 모습도 기억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마다 않고 묵묵히 정암의 곁을 지켜드렸던 네 교수님들(신복
윤, 윤영탁, 김명혁, 박형용)과 또한 지금은 작고하신 노진현, 장경재 목사
님들과 자기 아버지처럼 달게 순종하고 따라오신 안만수 목
사님 외 상당수
의 이사님 여러분들, 또한 그 분들의 헌신적인 설득과 영향력을 통해, 많은 
물질을 희사하신 최삼금 권사 외 많은 분들, 본인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한국교회의 개혁을 염원하면서 가진 것, 누릴 것 마다하고 희생
하신 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후 바톤을 성실하게 이어받아 피나는 노
력을 경주하시는 오덕교 총장님과 다음 세대 교수님들, 역시 합신에 옴으로
써 적지 않은 불이익도 감수하면서 초기에 내걸었던 개혁에의 기치를 함께 
붙들고 나아오고 있음을 본인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간 26-27년 간 배출된 학교의 열매인 적지 않은 졸업생 여러분들이 
배운 개혁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목회 현장에서 험하고 경사진 길을 걸어오
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분들은 정암을 비롯한 적지 않은 개혁주의 학자들이 깊이 느끼고 결
정한 개혁안들을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진 부분들도 없지는 않았겠으나 기도
로 동의하고 어렵게 이 자리까지 나아온 것이겠지요. 많은 분들이 무수한 밤
을 간절한 기도로 보내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으로 이 만큼이나마 이루
어진 것,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
면 결코 안 되겠지요. 

먼 미국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기도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특별한 
시점을 맞이하여 몇 글자 썼습니다. 외람되지 않았을까 두렵습니다. 지금 한
국 교회는 더 개혁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복음의 영광을 되찾아야 됩니다. 
신학교는 학적인 탁월함 위에, 영성과 윤리적 청렴을 가진, 그리고 복음전파
에 능한 교회의 리더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복음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고, 복음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날 무엇이 한국 교회를 어지럽게 했는지, 
무엇이 교회와 신학교를 어렵게 했고, 무엇이 복음의 영광을 이토록 초라하
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한국교회를 이 정도로 만들었는지 뼈저린 성찰이 필
요하다고 봅니다. 

약 30년 전, 80세 가까운 노구로 그를 아끼던 후배 교수님들과 동료 및 제
자 목사님들과 함께 그의 최후 8년 동안을 간절함과 눈물의 기도로 가시밭
을 걸어 가셨던 것을 상기합니다. 학교의 인가를 위해 얼굴이 새까맣게 타
서, 방에서 며칠을 나오지 않으시고 밤 새워 울며 기도하시던 부친의 모습
을 옆에서 지켜보았었습니다. 
이제 
민족 통일을 얼마 앞에 두지 않은 시점에서, 복음의 횃불이 시들어져 
가는 상황을 안타깝게 직시하면서 아무쪼록 말씀을 깊이 있게 알고, 기도와 
영성에 강하고, 윤리적으로 깨끗한 정도를 걷는 유능한 리더들이 합동신학교
를 통해 많이 배출되기를 날마다 기도드립니다. 지사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