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생명의 보금자리
이경엽_온수교회
“천억의 천억이나 되는 별 중 과연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별이 과연 없
을 것인가? 이를 밝혀내기 위해 인류가 온갖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생명
의 존재를 탐색하고 있다.”
“영성(靈性)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오
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광을 돌리는 인간에게만 주어졌다고 하는 그 사실
이 신비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얼마 안 되는 세간을 싣고 머나먼 서울로 올라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햇수
를 헤아려보니 어느덧 열 하고도 네 번이나 더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뜻이
있어 상경을 한 것이긴 해도 서울살이에 갑갑증이 날 때면 예전에 살던 곳
이 아니 그리울 도리가 없다.
고향은 아니어도 단칸방에 신접살림을 차려 두 애를 낳고 키운 그 곳에는 고
향 못지 않게 진득한 정이 배어들어 있어 돌아가고픈 생각이 마음 한 구석
에 똬리를 튼 채
떠날 줄을 모른다. 녹록치 않은 대도시에서의 삶과 씨름하
느라 뒤 한번 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온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어제인
듯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곳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 같기도 하고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여 잠시 고
개 숙여 생각에 잠겨들 때면 늘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시원
한 물과 바람이 반겨주던 이름 모를 계곡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초
롱거리던 수많은 별들로 가득한 여름의 밤하늘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다.
돗자리를 깔고 누어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아내와 함께 하염없이 바라보았
던 그 시절의 별밤하늘이 몸살이 나도록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토록 찬란했
던 밤하늘을 본 것이 언제였을까? 기어이 가슴 한 구석에 애틋한 그리움을
심어놓고야 말았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드넓게 펼쳐진 우주를 향해 마음을 빼앗
길 때는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호기심 많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인 모
양이다. 세상일은 까마득하게 사라지고 오로지 삶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신비한 물음들로 마음이 가득 차버리고야 만다. 결국 아무런 답도 얻지 못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옥신각신 하며 아내와 함께 별을 헤아리던 기억이 눈
에 선하다.
“참 아름답다. 그치?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저기 저게 북두칠성인
가 봐. 북두칠성 맞지? 얼마 떨어진 곳에 북극성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 맞아. 잘 봐, 북두칠성 일곱 개 별 중 끝에서 두개의 다섯 배쯤 거리
에 북극성이 있어. 저기 보이지? 저 밝은 별 말이야. 그리고 북극성으로부
터 얼마 더 가면 카시오페아 자리가 있지. 저 아래를 봐 ‘W’자 보이지?”
어느새 어린 마음으로 돌아간 아내의 질문에 알고 있는 몇 가지 설명을 해주
었더니 내가 무슨 대단한 지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모양인지 때
로는 모호한 물음을 던지곤 하였다.
‘우주는 끝이 있는 걸까? 별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는 걸까?’ 혹은 ‘다른
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하는 질문들은 아마도 근원을 알고 싶어하
는 모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물음이 아닐까 싶다.
보고 들은 알량한 지식 몇 가지를 가지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를 해보
긴 하나 오로지 침묵만이 정답임을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잘난 체
하고자 하는 사람의 본성이 어디 그렇던가, 책에
서 읽은 몇 가지 얄팍한 내
용으로 아내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해보지만 속 시원히 풀릴 수가 없다. 그
럴 때면 앞의 두 가지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생명의 유무에 대해서는 옥신각
신하는 일이 더러 생기기도 한다.
빅뱅과 블랙홀이라는 이론을 내세워 시간과 공간을 설명한 어느 박사의 저서
에서 우주에 끝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은하계에 천억 개정도 되는 별들이 있고 그러한
은하가 천억 개쯤 모여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는 천문학적인 계산에 의해서
별의 숫자도 어지간히 밝혀진 셈이다.
그러나 외계 생명의 존재 유무에 대한 궁금증은 과연 어떠한가? 지구 이외
에 다른 생명을 가진 별이 존재하고 있을 것인가 하는 데는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영화나 공상소설을 통해서 외계 생명체에
대한 추론을 펴보기도 하고 UFO라는 미확인 비행물체를 보았다는 수많은 목
격담들은 거의 종교적인 신념을 갖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인간의 문명 한
모퉁이를 꿰어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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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억의 천억이나 되는 별 중 과연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별이 과연 없을
것인가? 이를 밝혀내기 위해 인류가 온갖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생명의
존재를 탐색하고 있다. 오래 전에 우주로 보내어진 무인 우주선은 이미 태양
계를 벗어나 은하계를 헤집어 들어가고 있으며 우주에 관한 많은 새로운 정
보를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우주의 온갖 메시지를 수집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는 어마어마한 안테
나를 설치해놓고 미세한 신호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인간이 만든 모든 청각
센서를 동원하고 있다. 아마도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와는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수십 년 동안 이룩해놓은 장치들일 것
이다.
과학에 의해 밝혀진 대로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에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별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 별들은 알맞
은 온도, 습도, 수량 등 생물이 존재하기에 적합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에게 필요한 특별한 물질
이 있어 지구의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생
명이 탄
생했을 수도 있음은 추측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생명이 있다고 단정 할 수 있을까?
학자들에 의하면, 유기물을 다량으로 포함한 원시 해수의 표면에 강력한 번
개가 방전되어 이때의 열에 의해서 단순한 구조의 단백질이 합성되고, 이 유
기체가 우연히 번식 능력을 지니게 되어 바닷물로부터 유기물을 흡수하면서
자기 자신을 복제하기 시작한 것이 생명 탄생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러나‘우연(偶然)’이라는 말처럼 애매한 단어가 또 어디 있을까. 그것은
한없이 작은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
이 든다. 사람의 능력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에는 모두 ‘우연히’ 혹은
‘자연히’이라는 말로 얼버무려왔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은 결코 우연히 발생하거나 태어난 것이 아닐 것이기에 아무리 조건 좋
은 별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생명 탄생에 결정적인 무엇이 있지 않고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정적인 것이 뭔데?”
나의 설명에 조금은 수긍을 하는지 아내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못내
궁금한지 대답을 재촉하고야 만다.
“응, 그건
아마 말씀이 아닐까?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생명이 있으라’ 했더라면 분명히 그 어느 곳이라도
생명이 탄생하여 어떤 방법이나 형태로든 살아가고 있겠지. 그러나 아무리
조건이 좋고 적합한 곳이라도 창조주의 계획과 말씀이 없으면 불가능하리라
는 생각이 들어. 생명이 우연히 생겨나지 않은 이상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오묘한 솜씨가 없이는 그 어떤 미물 하나도 생겨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지.”
“그렇지만 다른 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을지 어떻게 알아. 그렇다면
거기에도 생명체가 있다고 봐야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봐야지. 근데… 과연 그럴까?”
“설마 지구한테만 그런 일이 생겼겠어? 너무 치우친 생각 아냐?”
“글쎄….”
대답이 궁색해지면 자꾸만 다른 궤변을 늘어놓아 자기의 말을 합리화시키려
고 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 모양이다. 결국은 속으로만 늘 품고 있던 생각을
아내에게 설명하고야 마는 것이다.
“예수님이 몇 분이지?”
“예수님? 그거야 당연히 한 분이겠지.”
“그렇지? 바로 그거야. 만일 외계에 우리와 같은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
다면, 하나님이 그곳을 그냥 버려두지는 않았을 거 아냐. 거기에도 예수님
을 보내야 했겠지. 만들어놓고 모른 척 하시겠어? 그리고 복음도 보내야 했
을 거고. 안 그래?”
“하지만 너무 비약적인 생각인 거 같아. 좀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까?”
“비약적인 생각? 이기적이라고? 하하,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질투
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걸 어떻게.”
결론 없는 대화는 늘 그런 식으로 끝이 모호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속
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오직 우리가 사는 지구에만 베풀어졌다
는 사실을 더 없이 크나큰 복으로 여기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이기심
이자 질투이다.
영성(靈性)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광을 돌리는 인간에게만 주어졌다고 하는 그 사실이 신
비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무척이나 이기적이요
구속된 존재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만일 우주의 다른 곳에도 영성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곳에도 또 다른 그
의 아드님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에 대
한 기록과 복음도
함께 전해 주셔야 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리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질투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다 할 증거를 말할 능력이 모자라기에 생각이라는 말 대신 느낌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크신 뜻을 어찌
알 수 있을까마는 왠지 마음에 지녀도 크게 꾸지람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기
심이요 질투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함께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며 별을 헤아려보곤 했던 티 없이 맑은 예
전의 밤하늘이 어제 본 듯 선명히 떠오른다. 또 다시 그런 별밤하늘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다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땅위에 생명의 보
금자리를 이루시고 그 위에 우리의 생을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있어
삶이 늘 복됨을 아니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