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2> | 성령 충만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_이광호 목사

0
22

긴/급/진/단<2>

성령 충만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

‘중생의 은혜’ 주신 하나님께서 ‘성령충만’케 하셔

이광호 목사/ 홍은개혁신학연구원, Ph.D

최근들어 부쩍 성령과 관련된 운동들이 늘고 있다. 외형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칫 잘못된 이단운동의 영향을 받게 될 소지도 많
다. 이에 ‘<1>성령의 내주’와 ‘<2>성령충만’에 대한 의미를 두 번에 걸
쳐 게재한다. 
지난호에 이어 이번호는‘<2>’성령충만’에 대한 의미를 점검한다. _편집자

1. 개별 성도의 성령 충만

개별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 충만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성령 충만
은 종교적 분위기에 좌우되는가? 아니면 개인의 종교적 심성에 기초하는가?
R. A. Torrey는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 성령의 인치심, 성령의 선물 또는 위
로부터 능력을 입히움 등을 모두 같은 영적 체험으로 간주하여 구별하지 않
고 성령세례라는 말로 통칭한다. 최갑종 또한 위와 같은 
다양한 표현을 성령
의 동일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서철원은 성령강림만을 성령세례로 이해하는가 하면 오순절 성령강
림 이후의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해서는 성령 충만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편 권성수는 성령 충만을 화끈한 방식의 특별 충만과 조용한 방식의 보통 
충만으로 구별했으며, 안영복은 성령 충만의 시작을 성령세례로 보고 성령 
충만에 대해서는 생활상의 성령 충만과 능력 충만으로 구별한다. 
김현진은 로이드 존스와 대천덕, 차영배 등의 견해들에 근거하여 성령세례
를 중생과 별개로 보는가 하면 은혜 상태의 칭의 단계에서 영광상태의 성화
단계로 들어가는 구원의 서정으로 이해한다. 그는 또한 성령세례를 성령 충
만의 시작으로 보며 성령 충만의 경우 성령의 능력과 관계되는 외적 순간적 
충만과 성령의 열매와 관계되는 내적 지속적 충만으로 구별한다. 

분명히 알아야할 점은 성령 충만은 개인의 종교적 성향에 따르는 것이 아니
라는 사실이다. 신앙의 스타일이 감성적(感性的)인 사람들이 이지적(理智的)
인 부류의 사람들 보다 성령 충만을 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조건을 가진 
것은 아니다. 
r
성령 충만은 중생한 성도가 세상에 대해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드러나게 된
다. 성령에 의해 거듭난 성도들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와 심판에 대해 
철저한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삶을 살
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심각하게 뉘우치며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범죄한 아담의 형상을 지니고 세상에 출생한 자연인들은 한결같이 전적으로 
악한 존재들이다. 따라서 인간들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악한 것일 수밖
에 없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어떤 선도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정신적인 판단능력이 결여된 성도들일 경우 전체 교회가 소유하는 교회적 성
령 충만에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중생한 성
도라면 그들 역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수 있게 된다. 즉 연령이 어린 태아
나 영아, 유아 및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성도들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다
른 장성한 성도들의 성령 충만한 삶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 가정에 태아, 영아, 유아, 혹은 정신지체 장애인이 있을 경우 
다른 성숙한 가족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참여하
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즉 연
약한 가족들은 건강하고 판단능력을 지닌 다른 가족들의 삶의 정서와 내용
에 포함되는 동일한 공동체적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 안의 연
약한 성도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성령의 충만한 삶을 성숙한 다른 가족
들과 공유하게 된다. 

1) 하나님의 형상의 기능회복

창세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
의 형상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즉 택자라 할지라도 원래 인간
이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의 기능을 전혀 인식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러나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서 기능회복을 하게 된다.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사에 따른 원래의 기능을 회복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순절 날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의 기능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활동할 수 있도록 도
와주신다. 그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보혜사’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중생
한 성도들
은 이제 사탄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된다. 
따라서 성령의 온전한 통치를 받게 된 성도는 범죄한 아담의 형상을 부인하
며 그로 인한 삶을 거부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들은 범죄한 아담의 형상의 습성을 포기하며 죄와 맞서 싸운다. 
그러나 이 세상 가운데 살 동안에는 항상 겉 사람과 속사람의 싸움으로 인
한 끊임없는 내적 갈등이 야기된다. 그런 가운데서 자기를 죽이고 주님의 말
씀에 따라 살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2) 성화와 직접 연관됨

성령의 내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는 성도의 중생과 연
관된다면 성령 충만은 성도의 성화와 연관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하신다면 그 영이 우리의 모든 삶과 행동을 지배하신다. 성령 충만은 하
나님께 순종하는 성도의 삶에 의해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의 자발적인 종교
적 노력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성화와 연관된 성령 충만한 삶은 윤리적 관점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때로 종교 감정적인 기쁨과 감사의 형태가 아니
라 분
노와 냉정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수님은 물론 모든 신앙의 선배들
이 그러했다.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완벽하게 성령으로 충만하셨던 예수님께서
는 악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진노하셨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
과 신약의 사도들 역시 진리와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에 대해 크게 분노하
셨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성화된 성령 충만의 결과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통해 항상 자신의 악하고 죄된 모습을 보
게 된다. 성숙한 성도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자신의 연약한 모
습을 분명히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
행되는 무서운 죄를 더욱 분명히 자각하게 된다. 
성화의 과정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죄를 더욱 깊이 자각함
으로써 내주 하시는 성령이 자신의 삶 속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의 자세와 성령 충만의 관계성을 올바르게 이
해해야만 한다. 

2. 교회적 성령 충만

1) 사도교회 시대의 특별한 은사들과 성령 충만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한
다. 사도교회 시대에는 
특별한 은사들과 더불어 교회 안에 성령이 충만했다. 그것은 외적인 종교적 
정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성령이 충만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종교적인 엄숙한 
분위기로 말미암는 것인가? 아니면 찬송가와 악기 소리들이 요란하게 나고 
기도소리가 크게 울리는 종교적 행사 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는가? 
사도시대 교회에 허락된 다양한 직분과 은사들은 기본적으로 성령의 사역이
다. 즉 성령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온전한 직분과 참된 은사들을 통해 이루
어졌다. 즉 오순절 날 강림하신 성령은 은사적 성령인 것이다. 
따라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 태어난 모든 성도들은 교회적 순종과 더불
어 거룩한 순결을 유지하려 애써야 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자
기 포기를 의미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의 투쟁을 동반했다. 교회 가
운데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다양한 은사들을 통해 성령 충만한 모습이 온
전히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2) 보편교회 시대의 성령 충만

보편교회 가운데 성령이 충만해야 하는 것은 종교적인 적극성을 띠는 것
과 
다르다. 외견상 건전해 보이고 기독교적 종교성이 농후해 보인다고 해서 그
것이 곧 성령 충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성령을 받고자 하는 종
교적 열망으로 인해 성령이 충만해지지는 않는다.
나아가 교인들의 종교적 심성을 자극하는 지도자들의 의도 또한 성령 충만
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반 교인들에게 종교적 만족감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
된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도리어 성령 충만함을 멸시할 우려마저 있다. 기독
교적인 종교 음악과 현란한 춤을 배경으로 한 집회들이라 해서 성령 충만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보편교회는 항상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상태를 보존하려 애써야 한
다.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사탄의 세력이 끊임없이 교회를 혼란케 할 것이
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뜻이 교회와 세상 가운데 드러나
는데 참여하는 삶을 동반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사역 이외의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을 순종하며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세속적 가치관들을 근절하는 가운데 천국에 대한 소
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3) 위험한 거짓 성령 충
만 

기독교 역사 가운데는 항상 위험한 거짓 성령 충만이 건전한 교회들을 위협
해 왔다. 신앙이 어리고 영적인 분별력이 약한 성도들은 기독교적인 종교 활
동을 마치 성령 충만 인양 오해했던 것이다. 나아가 그런 종교적 행위를 하
는 자들 또한 스스로 자기의 행위를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라 여기기도 했
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 가운데 상당수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한 사역이 아
니라 자신의 타락한 종교성에서 발생하는 종교 행위였을 따름이다. 
위험한 거짓 성령 충만 가운데는 윤리적 거짓 충만, 신비적 거짓 충만, 종교
적 거짓 충만 등이 있다. 윤리적 거짓 충만이란 윤리적인 선행을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인 양 성도들을 속이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와 사도교회 시대 다
수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적 활동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 양 오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간
섭이 아니라 사탄의 간섭을 받고 있는 자들이었다. 
신비적 거짓 충만이란 치유, 권능, 예언 등 신비한 종교적 활동을 하며 그것
이 마치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 양 선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에게 그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다수의 거짓 예수꾼들이 나타내는 이적들
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사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분명히 말씀하
셨다.
종교적 거짓 충만이란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기독교 활동들을 포함하고 있
다. 다수의 어린 교인들은 기독교 음악, 춤, 기도, 연보, 종교 활동 등이 성
령의 사역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활동 자체가 성령 충만의 결과일 수
는 없다.
우리는 성령 충만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종교적 활동들 가운데 참된 성령의 
열매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
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일반 윤리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진리
와 연관된 것들이다. 

3.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

1) 성령께서 오신 목적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으며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
조하셨다. 그것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셨으며 그가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셨다. 마지막 
유월절날 십자가 사건이 있
는 후 뒤따라온 오순절날 성령 하나님께서 이 땅
에 강림하셨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예루살렘에 모인 열두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여 모인 신
앙공동체 가운데 이루어졌다. 그가 오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거하
기 위함이었으며, 저들의 온전한 삶을 도우시기 위해서였다. 
악한 사탄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도움을 통해 세상 가운데 살아가
는 자기 자녀들을 끝까지 보호하시고자 하셨다. 

2) 성령의 내주와 성령 충만에 대한 이해

① 성령께서는 창세전에 선택하신 중생한 자기 백성들 안에 항상 내주하신
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잠재적으로 소유한 상태로 이 세상에 출생한 자
들이다. 그러나 저들이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은 죄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잠재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
지기는 했으나 완전히 상실된 그 기능을 십자가 사역을 통해 그들 가운데 온
전히 회복하셨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
도 안에 항상 내주하시면서 성도들
의 무리인 교회 가운데 거하신다. 그가 개
개인 성도들과 교회 가운데 내주하시는 것은 상시적은 활동이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참된 성도들과 교회는 성령의 사역이 충만
하게 이루어지도록 세상으로부터 생성된 자신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교회
는 말씀을 통한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 그의 사역이 이루어지
도록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도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
의 뜻이다.

② 성령 충만은 단순한 종교적 감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 윤리적인 활
동이나 교회 가운데 유행하는 음악이나 춤 등을 통해 성령 충만의 상태가 확
인될 수 없다. 나아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봉사나 기도, 연보생활 등이 성
령 충만한 삶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성령 충만과 직접적인 연관성
이 없다.
진정한 성령의 내주와 충만은 인간들이 승인할 사안이 아니다. 인간들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중생의 은혜를 통해 그 
사역을 이룩하시게 된다. 교회 가운데 존재하는 신앙 연령이 어린 성도들이
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성도들의 경우 그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바는 성령의 내주와 성령 충만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며 
종교적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
닌 자기 자녀들에게 항상 내주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형상을 잠재적으로 지
니고 있으나 그 기능을 상실당한 택한 백성들을 불러 중생케 하심으로써 새
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된 그들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③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애써야 
한다.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 자
기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결코 스스로 할 수 있
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좇아 이루어가
야 한다. 그것은 분주한 종교적 활동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세상을 거부하는 성도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마치는 말

현대 기독교 가운데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난무한 실정이다. 성령 하나님
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성령 충만을 자랑

하고 있다. 교회 안의 중생하지 못한 종교인들 가운데는 온화하고 성실하며 
관대한 성품을 지닌 훌륭한 윤리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성도들
을 속이는 종교적인 가면을 쓰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와 성숙
한 성도들은 불신자들의 기독교적 종교 활동을 말씀과 성령을 통해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한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의 종교적인 겉모양을 보고 성령 충만을 쉽게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성숙한 교회와 성도들은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항상 
그것을 분별하기 위해 민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종교적 거짓 성령 충만
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서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는 항상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그들 가
운데 참된 성령 충만이 존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