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특강|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교회_이종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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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 특강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교회

이종연 목사_진명교회,아틀란타 바이블칼리지 교수

지금 이 시대에 마땅히 교회가 할 것이 무엇인가를 직시해나가지 않고서 우
리가 하루 밥 세끼만 먹고 저녁 되면 자고 또 아침에 눈뜨면 맡겨진 일이라
고 한다면, 멍멍이가 밥먹고 사는 거랑 다를 게 무엇입니까? 아무 의미가 없
습니다. 그런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다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우리 마음 속부터 시작하신 성령님의 일이 말씀의 운동력이 꿈틀거려
야 되는데 이게 발생하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그런만큼 개인의 구원과 개인
의 믿음의 결과에 자만하고 만족해선 강력한 영항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시 말하면 골로새 1장 24절에서 바울이 말씀했듯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라는 자세를 견지해서 교회를 향한 고난을 육체 가운데 드러내지 않고
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가운데 있는 고난이 십자가 아닙니까? 십자
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발생할 리가 없
습니다.

교회에게 성령 부으사 은사 주심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사 성부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성부님께로부터 
받아서 교회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님의 일이 없었던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주님께서 능력을 우리에게 일하사 하늘의 은사를 성령님의 일
로 말미암아 받게하시고 어떤 일들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끝까지 대적으로부
터 보호하신다는 것을 성령님을 부어주심을 통해서 나타났음을 확인하고 나
가야 합니다. 
그런만큼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과연 어떻게 되는 건지 이것에 대해서도 앞
으로 상고해야 되겠지만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며 보호하신다는 것
이 무엇인가 잘 살펴야 합니다. 겨울이 되고 연료 준비했으니 ‘하나님이 보
호하셨다’한다면 그 말은 끝도 없는 겁니다. 그런 정도의 심정, 안위하는 
마음은 세상 사람들도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와 그리스도의 영광 계시
그러면 주님께서 보여주신다는 상태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일에 다 
수반되
는 깨달음의 결론이란 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현실에서 힘입어 나가
면 나갈 수록 그리스도의 영광이 교회 가운데 찬란하게 세상을 향해서 발휘
됩니다. 요한복음에도 나오고 복음서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도 물론 부활하신 후도 포함이 되겠지만 중보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그리스도
의 영광을 교회가 보도록 하셨고 기도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보면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을 우리 마음에 비췄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빛, 
그리스도의 사귐이 어디로부터 시작되며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 나갈 것인가 하는 큰 방법, 큰 원천을 우리에게 제공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에 대한 빛을 
받기 위해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정상의 사귐, 바른 사귐을 통해서 성
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부단히 이르는 교회로 나타나야지만 영광스러운 그
리스도의 몸된 교회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그런만큼 성부에 대한 지식 그리고 삼위일체 진리가 무엇이냐를 깨닫기 위해
서는 그리스도의 
양성,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한 인격으로서 
행사하시나’를 통하지 않으면 삼위일체 진리는 요원합니다. 그러니 예수님
에 대해서 잘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삼위일체”란 말이 성경에 안나온다
고 부인하지 않습니까? 이단입니다 그것은! 

바른사귐으로 신지식 구비하는 교회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신비한 몸, 신비한 인격에 대해서 깨달아나가지 않을 
때 이상한 교회가 됩니다. 다른 것이 신비인 양 신비를 추구하는 교회로 나
가기도 하고 예수님의 인성을 자기네랑 똑같은 것으로 여겨 합리주의로 인본
주의 교회들을 세워가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바라볼 수 있습
니다. 
예수님의 신성 특히 부활하신 후에 영광의 상태에서 어떻게 다뤄나가시나에 
대해서는 별로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마음의 움직임들이 없는 시대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회가 이 모양이고 교회가 이 모양들입니다! 그런만큼 우리가 주
의하면서 과연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신비한 비밀이라는 복음의 내용을 얼마
만큼 우리 마음 가운데 확실하게 알고 깨달아나가며 그것을 성령님께서 어떻
게 우리를 통해서 써나가시고 있나 늘 살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걸 살필 만한 능력이 없으면 능력 있도록 배워서 깨달아야 하고, 있다면 
그것을 알고 있는 만큼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 예수님
도 영광을 위해서 죽었는데 우리가 못 죽을 게 뭐가 있습니까? 죽으면 사는 
건데! 간단한 진리인데도 이것을 우리가 도외시하고서 어찌 하나님 영광에 
대한 기쁨을 하나님 영광에 참여함에 대한 소망이 있다고 말씀할 수 있습니
까?

그리스도를 살리신 능력이 하나님 능력의 표준
구약성경을 보면 출애굽을 대표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한 말씀들이 많이 나
옵니다. 신약에선 그것에 걸맞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이 아닌가 생
각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가항력 능력으로 구출해내시고 이끌
어가시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의 사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능력이 예수님에게만 끝난 것이 아니고 참되
게 믿는이들에게 동일한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
하셨지만 그분 자신보다 더 큰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단한 겁니다 이것
은. 우리가 예수님 정도의 일을 해서 어찌 오늘 예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n있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것보다 큰 일을 목도할 만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
나는 교회가 돼야만 합니다. 
바울이 한 말이지만 하나님 나라가 말에 있는 게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능
력! 성령님의 나타남에 있단 말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잘 생각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능력의 표준이 뭐냐 할 때 예수님을 다시살린 것, 영
화롭게 한 이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여기에 대적할 만한 세상의 어떤 힘들
이 없습니다 두려울 것도 없고.

양성의 신비로 교회와 함께 하심 
그런데 조금 문제되는 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 인성은 분명히 하늘에 하나
님의 우편에 계시고 아직 두 번째 나타나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세상 끝날까
지 함께 하실까? 입니다. 이것도 가만 생각하면 어려운 말씀입니다. 분명히 
함께 하신다는 말 속에는 인성으로도 함께 하신다는 것이지 꼭 예수님께서 
신성으로만 함께 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몸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
론 이것은 또 성찬의 진리랑 관련해서 생각되는 특별한 부분이 있지만 그리
스도께서 신이시며 인간으로서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늘이라는 곳은 무엇을 
말하고, 하나님의 우편은 무엇을 말하
는가? 하이델베르흐 요리문답 48번째 문답을 보면 거기 예수님의 신, 인성
에 대한 가르침이 짧게 나와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무한하고 없는 곳
이 없다. 즉 편재한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선 신성으로 예수님
의 인성 외부와 내부 가운데 함께 계시면서 한 인격으로 연합해서 영원히 거
하신다고 짧으면서도 멋진 고백을 가르칩니다. 이러한 원리로 부활하셨을지
라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진리가 깨달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보혜사를 보낸다, 다른 보혜사
를 보낸다, 그 신을 보낸다는 말씀은 중요합니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를 누
가 세워갑니까? 그 신께서 세워나가십니다. 다른 말로 성령 하나님께서 세워
나가신다고 말씀한 것이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세워나가신다는 겁니다. 그러
면서 교회의 머리로서만 그리스도를 알아선 안되고 만물의 머리, 만물을 새
롭게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교회를 통해서 세상 만방으로 흘러 넘쳐야 당연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
이런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의 신비한 연합이라고 할까요 그 교리를 
잘 많
이 생각해나가는 교회가 되어야지만 튼튼한 교회가 되고 정상으로 영광을 나
타내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 또한 신인이신 그리스도
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입으신 것에 대해서 잘 
숙고하는 교회가 돼야하고 그것에 맞게 교회가 날마다 새로운 교회를 표방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모세의 교회라든가 사도 당시 정도의 교회 수준은 오늘 교회로 마땅
하지 않고 종교 개혁가들이 있었던 그 당시 교회 수준으로는 지금 세상을 
단 한 발자국도 일초도 살아갈 자격이 없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마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으니 주께 맡겨야 하고 주의 신을 근심
시키거나 소멸함이 없이 충만한 상태에서 그분의 신을 좇아 강력한 하늘의 
일에 참여해야 마땅합니다.

중보자의 인격 위에 부여된 하나님의 보상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의 높아지심과 신성의 연합의 관계를 볼 때 신성은 높
아짐이나 낮아짐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높아지셨
습니까? 높아지셨다 할 때 이것은 인격이 높아지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성은 가감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낮아지신 상태에 있다는 것에 
대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에 대한 응답으로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
니 낮아지심의 상태를 잘 알도록 하려고 높아지심을 알려주시기 위한 일입니
다. 
조금 설명해본다면 예수님의 인성,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하늘로 올라가셨
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높아진 위치, 높아지심 이런 말을 쓰고 또 예수님께
서 중보자로서 한 인격을 가지신 그분 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의 보상이
라고 할까요 하나님께로부터 상급으로서 높아지심 이런 것으로 그리스도께
서 높아지셨다고 가르치십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중보 삼직
그런만큼 교회에 대한 이해도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분을 대
하셨나 또한 그분이 어떻게 변화됐나 깨달음을 통해서 교회도 그리스도를 뒤
따라가는 입장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를 상대하시겠는가 하는 진
리를 숙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중보직을 살펴볼지라도 예표로 여러 가지 기관들
을 세워서 그림자로 교회가 그 시대에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셨지만, 신약교
회는 예표인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 삼직
을 실제로 실현시켰습니다. 그런 면
에서 우리 각자가 선지자와 사도는 아닐지라도 분명히 중요한 의무들을 책임
감들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양성이라든
가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시고 높아지신 두 상태를 잘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
다.

그리스도의 양성과 두 상태는 이단 구별의 시금석
이것에 대해서 부단히 정상으로 알아가지 않으면 이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
다! 많은 이단들이 있지만 네스토리우스(Nestorius)라든가 유티케스
(Utyches),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단들이 예수님에 대한 오해로 생겼음
을 볼 때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 교회는 물론 예수님의 인성도 지지부진하게 알려주지만 특별히 예수님
의 신성, 부활하신 후에 영화로우신 상태에 대해서 별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
에 그 방면에 많은 약화가 우려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돗데기 시장
같이 늘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 내지는 하나님 또는 교회를 자기 수준
에 놓고 무슨 장난감같이 여기는 때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하고 함부로 농담하는데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
에까지 인성에 대한 오류로 말미암아 발생한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가 무슨 자기 집 안방입니까? 심심풀이로 들락날락거리고. 대단히 유치하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를 구속하시고 구속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저주 
가운데서 구속하신 결과를 현실로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신성의 발
휘가 어떻게 필요한가에 대해서 깨달음이 없고 그것도 직감하지 못하니 예수
님을 헛되이 여기는 것이고 업신여기고 살아보겠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양성에 동등하게 경배해야
그러니 예수님도 경고했지만 성령님을 훼방하는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
씀이 무서운 얘기입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런 식으로 말씀 안하십니다. 그런
만큼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섬김도 신으로서 그
리스도를 섬긴다면 마땅하겠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영광과 경배의 자
세가 늘 수반돼나가야 합니다. 
괜히 사람이랑 사귀는 정도의 습관을 가지고 그런 자세로 예수님께 예배를 
드려보겠다구요? 인간 친구나 인간의 사귐도 점점 고급스러워야 되는데 하물
며 예수님에 대한 대접이, 예수님에 대한 경배가 과연 지금 어떤 상태에 놓
여있는지를 잘 반성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어찌 예수님을 한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 
더러움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씻기를 원하는 것인데 그런데 대한 이
렇다 할 의식이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것이 어찌 교회에 속한 지체
입니까, 영광스런 교회입니까?

능력있게 참여하는 교회
하나님 나라는 능력에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리스도께서 지금 통치하시는 
것이 온 우주를 다스려나간다는 것으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
는 세상 전반의 흐름에 대해서 분명히 개혁을 단행할 만한 마음을 가져야 되
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역사관이라고 할까요 세상 돌아감에 대해
서 민감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특히 지난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
고 있는 이 사회가 지금 어떤 모양으로 나타났나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해
내는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물들어버립니다. 다른 사람이 자가용 사면 나도 
사야 합니까? 다른 사람이 집 가지고 돈벌이한다면 나도 해야 됩니까? 다 하
나님의 영광을 걸고 교회를 세운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키운다더라 나도 그
렇게 키워야지! 
과거 
어떤 결과로 지금 현실이 됐는지 성경으로 확신했습니까? 그런 것도 없
이 자꾸만 세상 사람들이 보통 하는 식에 그냥 끌려간다는 건 그것으로 말미
암아 교회가 큰 위기 가운데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서 우리가 고난도 
받고 깊은 고민 가운데 빠지기도 하고 뭔가 문제 의식을 가져야지만 발전이 
있고 개혁이 단행됩니다. 로마교회에서는 개인으로 착한 사람이 되고 개인으
로 선한 사업해서 천당간다는데 이런 식으로 성경에 어디서 가르칩니까?

교회가 앉아있는 현실과 영역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현실을 성경 말씀은 가르치기를 에베소 2장 6절에 보
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
에 앉히셨다” 에베소에서 1장에서 성부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시고 하늘 자
기 오른 편에 앉혔다는 말씀이랑 똑같이 말합니다. 이것도 다 과거형으로 써
서 교회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늘에 앉아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하늘에 앉아있으면 그것에 걸맞는 당연한 향기가 나타나고 부활하신 그
리스도의 능력을 분명히 이 세상 가운데서 행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지금 내가 앉아있는 건지 아닌
지 그것부터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그 다음 골로새서 1장 13절에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 그 다
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것을 볼 때 우리 영역이 아드님의 나라, 하늘 나라가 우리 일터입니다. 세상
에서 내 할 본분 다했다고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받질 않습니다! 
하늘 나라를 드러내는 거룩한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다면 그 하늘 나라의 뜻
이 이 땅에서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를 주께 부단히 구하면서 나가야 합
니다! 그것을 구하려면 구할 만한 문제를 발견해야 하고 구할 만한 힘이 있
어야만 그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다 할 하늘 나라의 일을 생각함도 없이 또한 그 일이 이 땅에 이 때에 
나타나야 될 것이라는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주기도문 백 번 
천 번 하면 그것이 뭐겠어요? 무당이 염불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이런 것을 볼 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영적으로 임재하셔서 날마다 우리에
게 더욱 가까이 나오시나 또한 우리로 하여금 가까이 나오도록 촉구하시나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현현 앞
에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었다는 말씀들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그런데 오늘은 너무 자유가 왜곡되어 모든 형식이 망가지다 보니 그리스도
의 영광 앞에 가까이 나간다면 마땅히 두려움이 생길텐데 영광 앞에서 이렇
다 할 마음의 움직임도 없습니다. 영광인지 아닌지 이것도 발견이 안되니 말
입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찬찬히 생각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지만 찬송드리는 행위 또한 우리 삶의 자세에서 이방인들이 
두려워 떨어 “이 백성은 큰 복을 가지고 있는 백성이구나 네가 큰 나라구
나” 하는 칭호를 듣는 것이 마땅한데 “이거 예수쟁이 때문에 교회 못나가
겠다, 예수쟁인 짠돌이더라” 이런 말들이 얼마나 많이 지금 오가는지 모르
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부활하신 영광스런 예수님의 몸으로서 우리 자세와 신분을 
잘 주의하지 않으면 예수 믿는 사람 같이 엉망진창이 없습니다. 유리한 것
은 삼키고 불리한 건 예수님한테 다 돌려버립니다. 핑계대고 순 자기 편리한
대로 세상을 경영하는 것이 대개 이른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
다. 지금까지 만나 본 결과 다 얼마나 빤질빤질하고 머리들을 
잘 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미도 없어요. 잘못된 것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가 성령님의 일을 힘입어 개교회주의 또한 지교회주의를 탈피해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자부한다면 과연 이 시대에 교회의 바른 사명이 무엇이겠는가
를 점점 깨달아나가야 합니다. 영역주권의 원칙에서 살펴볼지라도 인류 사회
를, 만물을 새롭게하신 그리스도의 뒤를 좇아 어떻게 부단히 새롭게 해 나가
야 될 것인가? 
우리 앞엔 날마다 거짓의 아비가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을 만한 교활
한 큰 힘을 가지고 반 교회적으로 반 신국적으로 늘 다가서는 속이는 세력
에 대해서, 힘으로 엄포를 주는 세력에 대해서 그 도전에 대한 대처 능력이 
있으며 그것을 깨부시면서 나가는가 하는 전투하는 자세가 있는지 살펴야 합
니다.